<경제프리즘> 왜 그들만 공정한 과세를 포기하는가

여야가 심하게 대치한 상황인 2004년 12월 29일. 국회는 본 회의를 열어 몇 개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그 중 하나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다. 거의 매년 개정하는 법률이어서 새해를 맞으며 개정된다는 것이 새로울 건 없지만, 이번 개정안에 아주 이상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국민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불법정치자금에 대하여는 그 기부받은 자가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한다’라는 내용의 76조 3항과 그와 관련된 부칙 11조가 그것이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니 잘 개정된 것 아니냐 라고 보여질 수 있고, 정부나 국회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위 법조문이 신설되기까지 경위를 살펴보자.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를 해야한다는 지적은 참여연대가 2003년 봄부터 제기한 내용이다. 세금이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률에 정해진 대로 공평하게 납부하여야 하는 것이고, 우리 법이 적법한 정치자금에 관해서만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으므로 정치자금법에 의하지 않은 불법정치자금에 대하여는 당연히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 지적은 재작년 대선자금 수사가 발표되면서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당이 받은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도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었다. 모든 학자들과 전문가들도 당연하다는 의견이었으며 정치권에 대한 잘못된 비과세 관행은 고쳐져야 하다는 입장이었다. 법률가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도 현행법상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과세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가산금 등을 제외하더라도 민주당(또는 열린우리당)이 내야하는 세금은 52억원, 한나라당이 내야하는 세금은 무려 407억원이나 된다. 세금이 국가재정을 위한 돈이기에 이처럼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거두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돈은 결국 다른 성실한 납세자로부터 더 거두어 갈 것이다.

궁지에 몰린 재경부가 내놓은 안이 조특법 76조 3항이다. 과세 여부가 애매하니까 분명히 입법을 해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의 해석과 관련해 애매한 것은 없었다. 애매하다고 억지 주장한 재경부와 국세청이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마련된 개정안이기에 그다지 환영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과세관청 스스로 앞으로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과세를 하기 힘들다는 억지 주장을 하지 못하게 할 입법이어서 거기까지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부칙 11조까지 신설된 것이다. 조특법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적 경과규정으로 ‘이 법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라는 부칙 1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다시 부칙 11조를 두어 ‘76조의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후 기부하는 분부터 적용한다’라는 내용을 새삼스럽게 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개정 법률이 시행되기 전까지 당연히 거두어야 할 세금에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면 일반적 경과규정을 두는 것 외에 다시 부칙 11조를 둬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도 슬그머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심지어 국회 재경위 조세법안심사소위에서 위 부칙 규정을 삭제하기로 어렵게 합의를 해 놓고도, 재경위에서 그 합의를 번복하고 다시 위 부칙 규정을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마땅히 내야할 세금 459억원을 누가 함부로 깎아주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국민들이 재경부, 국세청 관료 및 국회의원들에게 그런 권한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심지어 불법대선자금에 대해 국고에 환수하겠다고 국민들 앞에 약속까지 해 놓고, 그 약속조차 전혀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리고도 성실히 납세를 하는 국민들에게 다시 더 많은 세금을 내 달라고 손을 벌리고, 세무조사라는 칼을 들이밀 것 아닌가? 문을 부수고 들어가 돈을 훔치는 것만 도둑질일까?

세금은 누가 내지 않으면 누군가 더 내야하는 것이기에 언제나 공평하고 공정해야 한다. 나라 곳간을 헐어 가는 사람들. 자신의 임의대로 과세하지 않는 과세관청으로부터 곳간을 지켜내기 위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새해엔 나라 곳간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을 국민 모두가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박용대 (조세개혁센터 실행위원, 변호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