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상속세 폐지로 왕조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한국의 재벌

한국의 재벌은 지난 5월 전경련을 통하여 상속세 폐지를 작정하고 공론화하기 시작하였다. 삼성가의 탈법적인 경영권 세습과 현대가의 정몽구 회장의 구속으로 싸늘해진 국민들의 시선을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러했겠느냐’ 식으로 모든 원인을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돌렸다. 나아가 경영권을 아들에게 승계하여 주지 못하면 현대와 삼성 등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주장으로 마음 약한 국민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다. (주1: 이 문제는 해당 기업의 이사회나 소유주가 결정할 문제라 이 원고에서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아니함.) 말이 좋아 승계이지 아들에게 물려준다면 세습이라 불러야 정확한 의미가 될 것이다.

재벌들의 상속세 폐지 공론화와 워렌 버핏의 아름다운 기부

이런 와중에 세계 2번째 부자인 워렌 버핏의 기부 소식은 우리나라 재벌들의 상속세 인하 내지 폐지 요구에 찬물을 끼얹었다. 적어도 아름다운 기부가 줄기차게 언론에 소개되는 요즈음은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또 하나 반가운 사실은 일부 부유층으로부터 강한 로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화당의 유산세 영구 폐지 시도를 미국 갑부들은 지난 6월 8일 미국 상원에서 저지시킨 바 있다. 이러한 여세가 이어져 공화당은 수정 법안을 만드는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으며 미국 갑부들은 수정 법안까지 저지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갑부들은 ‘부자가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망한다’고 하는데, 한국의 갑부들은 경영권까지 아들에게 세습시키기 위하여 끝없는 사욕을 부리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폐지 주장은 경영권 세습과도 연계되어 있어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만큼 중대한 과제이다.

그간 조세학계에서는 상속세를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를 따라 유산세 과세방식에서 취득세 과세방식으로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검토하여 왔다. (주2: 취득과세형 상속세 전환에 관한 연구 / 한국조세연구원, 주요 선진국의 상속・증여과세 개폐 동향과 우리의 중단기 과제 / 최명근)

상속세의 폐지는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부가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즉 아버지가 1억원에 산 주식을 자식에게 물려 줄 때 그 가격이 100억원이 되었다고 하면 그간의 이득 99억원을 소득세로 과세하여야 타인과의 과세형평이 맞는다. 물론 여기에는 상속으로 거액을 불로소득으로 얻는 것에 대한 세금은 논외로 한 것이다.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와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모두 고려하여 보면 상속세 최고 세율 50%는 소득세율 최고세율 38.5%에 비교하여 볼 때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상속세 폐지 요구는 변칙상속의 방법이 차단당하자 다급해진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세 폐지를 갑자기 주장하는 것은 재벌들이 변칙으로 상속세 회피를 모색하다 현대자동차 사건으로 변칙적인 방법이 원천적으로 차단당하자 다급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공화당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상속세 제도는 사망자로부터 재산이 이전되는 특권에 대한 세금으로 연방정부가 부과하는 유산세(Estate Tax)와 재산의 무상 취득에 대한 세금으로 주정부가 부과하는 상속세(Inheritance Tax)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일부인 유산세를 폐지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갑부와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 언제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은 자본이득세를 완전하게 과세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처럼 치명적인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미국의 경우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최소한 자본이득세를 과세하여야 하는데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주식 양도차익, 골동품 양도차익 등에 대하여 제대로 과세하지 않고 있으므로 미국의 경우를 당장 따라하기 어렵다. 재벌들이 미국의 경우를 상정하였다면 세제전문가들은 아마도 갑갑한 마음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는 워낙 민감한 것이어서 정부나 정치권에서 줄곧 반대해 왔고, 지금 과세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언제 제대로 과세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취득세 과세방식으로 전환은 재벌들의 상속재산 규모가 워낙 커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세율인하는 독일이나 일본 등 주요국들의 세율보다 우리나라가 그리 높지 않으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재벌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업세습에 대한 모종의 특혜를 달라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업세습에 있어 특혜가 필요한 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보자. 결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상속세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기업세습에 대해 모종의 특혜를 달라는 것으로 이해

‘현재 올림픽 대표팀 금메달리스트의 아들로 다시 올림픽대표팀을 꾸릴 수 있느냐’는 워렌 버핏의 의미심장한 말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2006년 5월 스탠포드 대학의 닉 브룸과 런던대학의 존 리넨이 공동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중견기업 732개를 대상으로 경영성과를 측정하여 발표한 논문, ‘기업과 국가간 경영관행 측정’, 에서 내린 흥미로운 두 가지 결론 중의 하나는 ‘경영권을 장자에게 세습(primo geniture)’하는 기업에서 불건전한 경영관행이 보다 많이 저질러지고, 이로 인하여 이들 기업의 경영성과가 엉망으로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보다 관대한 상속공제를 유지하고 있고, 장자 상속을 선호하는 노르만계법 전통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 기업에서 경영권을 장자에게 세습하는 관행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기업의 경영성과는 미국과 독일기업에 비해 훨씬 뒤지고 있으므로 경영권의 장자세습이 영국과 프랑스 쇠퇴의 가장 큰 원인중의 하나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이 논문은 2006년 3월 15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에 크게 소개되었다.

실례로 영국의 기업상속공제(Business Relief)를 살펴보면, ① 사업이나 사업과 관련된 지분의 경우 100%, ② 비상장주식의 경우 100%, ③ 상장주식의 지배주주의 주식(의결권의 50%이상 소유한 경우를 말한다)의 경우 50%, ④ 사망자의 사업 또는 사망자가 지배한 사업에 사용된 토지, 건물 기계의 경우 50%를 인정하고 있어 매우 관대한 것을 알 수 있다.

관대한 상속세로 장자상속의 관행을 유지한 영국과 프랑스 기업은 이미 경쟁력 상실

랜디스나 챈들러와 같은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20세기 초반 영국과 프랑스기업이 쇠퇴하고 미국과 독일기업의 성장한 이유에 대하여 전자그룹은 가족경영의 관행을 고집한 반면 후자그룹은 전문경영인을 채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1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이 주장이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고 논문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주3: Measuring and Explaining Management Practices Across Firms and Countries, May 2006 / Nick Bloom and John Van Reenen)

이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 4일 ‘소유경영 기업의 경영실적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2003년 11월 10일 ‘비즈니스위크지’에 소개된 S&P500 기업의 분석결과를 인용하였다. 그러나 이 잡지에서 가족기업으로 소개된 177개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창업자가 경영에 관여하는 회사가 대부분이고 2세나 3세가 경영하는 회사는 별로 없다. 오히려 창업자의 2세나 3세가 경영하는 회사가 왜 적은지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미국과 같이 기업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이 이렇게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은 미국의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기업을 세습시키지 않는 관행이 오히려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능력을 인정받으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니까.

미국 가족기업의 경영성과가 낫다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

이 잡지가 사용한 가족기업의 분류기준을 보면 창업자나 그 후손이 최고경영진이거나, 이사회 멤버이거나 또는 최대주주인 경우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분류기준으로 선발된 가족기업이라도 우리나라처럼 황제와 같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미국의 가족기업이라고 우리나라 재벌이 경영하는 기업집단과 동일시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족기업으로 소개된 기업들도 유사한 특징들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통신장비업체 에릭슨과 가전업체 일렉트로눅스 등 세계적인 기업 11개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의 경우에도 실질적으로는 공익재단에서 지주회사 그리고 자회사로 이어지는 구조로 지배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발렌베리 가문의 개인재산은 불과 수백억원을 넘지 않는다. 발렌베리 가문의 재산은 이미 재단으로 넘겨져 있고 지주회사 역시 공개된 기업이다. 따라서 경영권의 확보는 실질적으로 지분보다는 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자회사의 경영은 독립적 전문경영인 체제이며 자회사의 경영권 승계는 해당 자회사의 이사회에서 결정하며 발렌베리 가문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발렌베리를 실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은 실권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다. 이들은 자회사의 CEO를 거친 후 지주회사의 이사로서 이사회에서 활동하게 되며 다른 자회사들의 이사회에도 참여한다. 발렌베리의 후계자 역시 이들과 똑같이 이사회에 참석하여 많은 시간으로 보내며 자회사를 올바로 경영하고자 노력한다. (주 4: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가의 신화 / 장승규)

경영권의 세습은 혈통보다 능력이 우선시 되는 것이 모범적 가족기업의 사례

가족기업의 모범으로 알려진 도요타자동차의 경우에도 도요타 가문이 주식의 15%를 소유하고 있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과 도요타 가문의 출신이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전문경영인은 우리나라 재벌의 전문경영인처럼 인사권과 투자결정권이 없는 얼굴마담인 경우가 아니라 실제로 전권을 맡는다. 오랫동안 도요타자동차의 전문경영인으로서 도요타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오쿠다 히로시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서열 2위인 부사장을 전보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는 99년 도요타 가문의 장손인 아키오 부장을 임원으로 승진시키면서 “아무리 도요타 패밀리라고 해도 능력이 모자라면 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도요타 일가니까 임원까지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실력이 따라야 합니다.”라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였다. (주 5: 이코노미스트 2006. 7. 11)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기업의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하여 상속세에 있어 특별한 혜택을 달라는 것은 타당하지가 않다. 경영권은 경영 능력이 있으면 세습되는 것이지 상속세에 특혜를 집어넣어 자동적으로 경영권이 세습되도록 할 수 없다. 기업경쟁력이 가장 높은 일본과 독일 그리고 미국의 상속세에 그런 고려가 있는지 검토해 보면 그 점은 분명해 진다.

미국, 일본 그리고 독일 등 기업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엄격한 상속세의 골격을 유지

일본의 경우 기업상속에 대하여 아주 간단한 상속공제(Special tax treatment for special business assets)만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비상장기업의 주식에 대하여 1억 엔을 한도로 상속세 과세가액을 10% 차감하도록 허용하는 정도이다. (주 6: An Outline of Japanes Tax System (2005) /일본대장성)

독일은 기업상속의 경우 상속인이 상속받은 재산을 5년 이상 보유할 경우 상속세 과세가액을 40% 차감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조치는 농장이나 산림 그리고 지분 25%이상을 가진 기업의 주식 상속에 적용된다. 그리고 승인을 받는 경우에 최대 10년간 상속세 납부를 이연할 수 있다. (주 7: http://www.germany.info)

미국의 경우 유산세를 폐지하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지만 유산세를 자본이득세로 대체하려는 미국 공화당의 시도는 국민의 57%가 반대하며 찬성하는 유권자는 불과 23%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유권자들에게 상속세 폐지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나자 반대하는 비율이 68%로 높아졌다고 미국 갑부들은 소개하고 있다. (주 8: ‘Rsponsible Wealth’의 홈페이지)

독일이 영국처럼 관대하지 않지만 기업상속에 대한 고려를 두는 것이나 미국의 공화당이 유산세를 폐지하려는 것은 주로 농장이나 조그만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고려이다. 독일의 경우 상장된 대기업에 개인 1인이 지분 25%이상을 소유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고, 미국은 공화당이 유산세 폐지 법안의 도입 필요성으로 역설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세율이 높다는데 상속세의 불만이 있는데 이것은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몇몇 나라에서 이 점을 착안하여 자본이득에 대하여 소득세를 과세하고 대신 상속세를 폐지하는 경우가 있다. 캐나다,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이 폐지한 나라이다. 상속세를 폐지한 이유는 주변국의 부유층을 자국으로 끌어 들이기 위함이다. 우리가 상속세를 폐지한다고 우리나라로 근거지를 옮겨올 부호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추세에 미국만 논쟁중일 뿐 일본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동참하지 않아 모든 나라가 검토하는 대세로 인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상속세 폐지가 실시될 경우 상속인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아 조세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상속세에 불만이 있다 해도 그 근거는 희박

상속세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중의 핵심은 높은 상속세로 인하여 벌어들인 소득을 다 소진해 버린다는 것이고 따라서 저축을 유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1월 31일 미국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상속하는 가족기업의 3~4%만 상속세를 내며, 이마저도 대부분 상속세를 낼만한 충분한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여서 저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어떤 경제학적 이론이나 어떤 실증적인 증거를 찾아 볼 수 없다는 결론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주 9: Report for Congress, Estate and Gift Taxes, January 31, 2003 / Jane G. Gravelle and Steven Maquire)

한국 재벌이 포괄주의 상속세를 비판하는 것 (주 10: 기업관련 상속세 제도의 해외사례 검토 및 시사점, 2006. 5. 12 / 전경련) 은 아직도 세금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세습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미련이 남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03년 포괄주의 입법 논쟁에서 주요국들이 포괄적으로 과세하고 있음이 이미 드러났다. 상속세를 내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하면 사실 포괄주의는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는 제도이다. 왜냐하면 포괄주의는 변칙 상속과 증여를 막기 위한 제도일 뿐이니까. 또 한국 재벌은 기업상속세의 경우 경영권프리미엄에 대하여 과세를 하므로 최대 상속세가 30% 할증되어 최고 세율이 65%에 이르러 오히려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 (주 11: 기업관련 상속세 제도의 해외사례 검토 및 시사점, 2006. 5. 12 / 전경련)하고 있다.

이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왜냐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주식의 가치를 평가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하는 요소일 뿐이다. 인수・합병의 교과서에도 주식가치를 계산할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에 속하는 상식이다. 이 문제를 주장하려면 우선 인수・합병의 기본적인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먼저 주장하는 편이 나을 법하다.

1세기 전에 부적합한 모형으로 판명난 영국이나 프랑스의 상속세 모형을 기초로 상속세의 틀을 다시 짤 수는 없어

이제 우리는 한국재벌들의 상속세 폐지 요구가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튀어나왔으며, 그러다보니 이미 1세기 전에 부적합한 것으로 판명된 영국이나 프랑스의 모형을 주장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다급하다 해도 부적합한 모형을 마치 금과옥조인 양 떠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주요국의 갑부를 유치하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도입된 기타 나라들의 상속세 폐지나 농장이나 중소기업을 위한 기업상속공제도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독일의 움직임을 더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언가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허둥대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자본이득세의 과세를 정상화하는 첫 걸음을 뗄 필요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대기업도 창업1세대 시절에는 경영 능력으로 대기업을 일굴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회장이라도 거대 그룹에 투자할 만한 재력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였으므로 국가가 나서서 국민이 예금한 돈을 사업자금으로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기업지배는 순환출자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열어주어 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상 국가나 국민이 경영능력을 믿고 사업을 위탁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였다. 그러나 2세로 경영권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상속세제도가 불비하여 가족이 쉽게 승계하였고 유교적 전통과 맞물리면서 마치 가족기업인 것처럼 인식이 굳어진 것뿐이다. 이제 창업주의 3세로 상속되는 시점에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 없이 경영권을 장자가 자동적으로 세습하는 제도를 계속하는 것보다 창업초기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필자의 원고가 너무 재벌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그렇지 않은 분들에 대한 조치가 부족하므로 마지막에 짧게 추가하고자 한다. 상속세를 낼 정도의 부자라면 상속세를 내고 난 후 남는 재산도 매우 클 것이므로 상속세가 높다는 불평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본다. 다만 경영권의 세습과정에서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은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의 장자 상속이 거의 모든 우리나라 기업의 특징인 이 시점에 상속세를 완화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상속세가 부의 집중과 공평과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족의 물적 기초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타 소장,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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