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재정개혁센터 칼럼(ta) 2004-01-07   1504

[기고] 국세청 독립, 아직 멀었다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 검증까지 거친 외부 발탁 국세청장이 세정을 지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의 바램인 ‘국세청의 독립’까지 가기에는 여러 장애물들이 산재해 있다. 이 주장을 검증하기 위하여 부득이 검찰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경우 대선자금수사나 굿모닝시티 그리고 SK분식회계 등 참여정부 초기에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 권력의 실세나 재벌 총수 등을 가리지 않고 기소하는 참신한 면을 보이고 있다. 검찰 조직의 개선을 위하여 상명하달식 규정을 삭제하고, 인사에 있어 연공서열을 파괴하였다. 그 결과 독립된 검찰이 검찰권을 남용할 수 있으므로 적절히 견제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까지 진전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터져나온 대형비리사건들을 두고 국세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수백억 원의 비자금이 조성되고, 그 자금이 불법으로 뿌려지는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음에도 “과세하기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하여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고?

지난 1월 5일, 국세청장에게 “직접 불법대선자금을 과세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용섭 청장은 “현실적으로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주는 자금은 대가성이 없는 경우를 상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빠져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나라종금사건과 세풍사건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사실에도 없는 ‘대가성’까지 만들어서 ‘과세할 수 없음’을 스스로 합리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잘 봐달라고 하는 것에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잘 봐달라는 것에는 왜 과세한단 말인가.

‘불법정치자금에 과세 가능‘ 입증한 기존 판례와 관련 법규가 틀렸다고 밝혀봐라

세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국세청장이라면 사견으로 업무를 집행해서는 안 된다. 국세청장은 그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해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증여세 과세는 가능’함을 입증한 대법원 판례와 관련 조항인 정치자금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의 규정이 잘못되었다는 것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불법정치자금을 증여세로 과세할 수 있음”은 이미 1999년 김현철 사건 때 대법원에서 확정한 바 있다. 불법 정치자금을 증여세로 보아 조세포탈죄를 적용한다면 수사기관이 불법정치자금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적용이 용이한 조사포탈죄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항변이 있었다. 즉 자의적인 법 운용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항변들에 대해 당시 대법원은 “알선수재죄와 조세포탈죄는 각각 구성요건을 달리하는 것”이라며 “불법 정치자금에 대하여 조세포탈죄를 적용할 수 있음”을 확정했다. 이러한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혀야 국세청의 현재 입장이 정당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국세청장은 ‘정치자금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의 규정이 사문화된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정치자금법은 제 27조에서 ‘이 법에 의하여 정치자금을 납입 또는 기부한’ 경우에는 소득세와 증여세를 면제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조세특례제한법은 제76조에서 ‘내국인이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정당에 기부한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불법정치자금을 과세할 수 없다면 상기 규정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닌가.

국세청도 제 역할을 해야 불법정치자금 문제 해결된다

불법정치자금에 대하여 증여세를 과세한다면 검찰의 처벌과 더불어 이중처벌이 되므로 관용을 베풀 수도 있다는 온정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땀 흘려 힘들게 번 돈에 대해서는 칼 같이 과세하면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번 돈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조세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불법정치자금의 문제를 검찰에만 맡겨 놓아서는 해결이 어렵다. 정치자금법은 공소시효가 너무 짧아 빠져나가기 쉽고, 그 다음은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서 시간을 끌면 알선수재죄를 적용하기 어려워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불법정치자금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따라서 구성요건이 비교적 쉬운 조세관련법으로 과세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국세청의 독립이란 것이 무엇인가? 권력 실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법과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국세청은 과세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으면 양심에 따라 떳떳하게 말해 보길 바란다. “대법원의 판결과 정치자금법 그리고 조세특례제한법의 관련규정이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세정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최영태 조세개혁센터 소장,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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