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의 블랙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참여연대-한겨레 공동기획] 조세 큰틀 바꾸자- 기고, 간이과세를 세액공제제도로 전환해야

지금 정부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재정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에 직면하여 중장기 세제개편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특정 부문 소득에 비과세·면세 등 혜택이 고착화된 세제와 관행을 없애 소득 간 과세 형평성을 확보하고, 일반 국민의 세 부담 증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조세개혁 작업에 있어서 간이과세 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간이과세 제도는 영세사업자의 세금 계산을 간편하게 하기 위하여 연 매출 4800만원 미만의 사업자를 대상으로 부가가치세를 1~3% 정도의 낮은 세율로 납부하게 하는 것이다. 본래 매출액(소득이 아니다)이 월 400만원 정도인 ‘영세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특례는, 물가와 소요경비를 고려할 때 웬만해선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전체 자영업자의 과반수가 적용받고 있다.

이 제도의 더 큰 문제는 간이과세자 자신에 그치지 않고 일반사업자, 심지어 대기업에까지 거래질서에 영향을 주어 사업자 전반의 과세 투명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사실이다. 세법이 간이과세자에게 세금계산서 발행을 금지시키고 그것을 받는 것도 강제하지 않아, 외형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거래당사자들은 오히려 세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거래를 해도 흔적이 없는 지금의 간이과세 제도는 조세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처럼 간이과세 제도는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어 전체 사업자의 과반수가 적용받고, 대부분이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등 세금을 내지 않게 되고, 과세 인프라 구축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를 유지하고는 조세개혁 작업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영세해도 소비자가 부담하는 부가가치세조차 제대로 과세되지 않는 간이과세 제도 대신에 선의의 영세사업자의 세 부담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세액공제 제도를 도입하고, 영세사업자들도 세금계산서 등 거래 자료의 수수와 제출을 간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업자의 거래와 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획기적인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은 더욱 서둘러야 한다. 구멍가게에서 과자 하나 팔아도 세무조사 없이 거래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확인·검증되는 장치가 작동하면 어떤 제도도 부작용 없이 효율적이게 된다. 이렇게만 되면 재정수요가 확충되고 과세 형평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자영업자들 스스로도 불성실 납세자라는 평가와 탈세 유혹에서 벗어나 어엿한 경제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구재이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부소장,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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