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과 경영권도 구별하지 못하는 전경련의 전근대적 의식

전경련의 상속세인하 주장은 공평과세와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것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12일에 열린 세미나에서 ‘기업 관련 상속세 제도의 해외사례 검토 및 시사점’이라는 발표 자료를 통하여 과도한 상속세의 부담이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다며 상속세 인하 문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그러나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소장: 최영태 회계사)는 현재 상속세 납부 비율이 1%에도 이르지 못하는 현실과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상위 계층으로의 부의 편중현상을 고려하였을 때 전경련의 주장은 조세형평성을 훼손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 판단한다.

또한 재벌 2세, 3세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상속세에 대한 특혜를 주는 것은 전경련이 그토록 주장했던 시장경제원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특히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립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절차 없이 2ㆍ3세에게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면, 이는 그 기업(집단)과 국민경제에게는 물론 2ㆍ3세 개인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세제하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지 않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4년에 상속세를 한 푼 이라도 낸 사람은 불과 1,808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부모 사망 등 상속요인이 발생한 사람 258,021명 중에서 단지 0.7%인 1,808명만 상속세를 납부했고, 나머지 대다수(99.3%, 256,213명)는 과세기준 미달로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4년 기준 전체 상속 재산가액 15조원 중 불과 6%인 9천5백억 원만 상속세로 징수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상속세를 더 줄여 달라는 전경련의 주장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또한 지난 4월 6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38개 재벌 총수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보고서’를 통하여 자산2조원 이상의 38개 민간재벌 250개 계열사 중 70개사에서 ‘회사기회의 편취’ 또는 ‘부당주식거래’ 등의 불법ㆍ편법적인 주식거래가 횡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주식거래의 대부분은 재벌 2ㆍ3세 등에게 불법ㆍ편법적으로 부와 경영권을 이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몰아주기거래’를 통한 부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현행 조세 제도의 맹점으로 인해 한 푼 과세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한 나라의 연간 상속세 과세액이 1조원이 채 안되는 상황에서, 그리고 상당수의 재벌그룹이 그간 상속세를 제대로 낸 경우가 거의 없고 부당한 부의 대물림이 방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속세 부담을 덜어달라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국민적 공감대도 얻을 수 없는 주장이다.

특히 경영권 상속을 용이하게 하고 경영권 안정을 위하여 상속세제개편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재산권과 경영권을 구별하지 못하는 전경련의 후진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권은 법이 정한 세금을 내면 당연히 2ㆍ3세에게 상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반면 경영권은 주주와 이해당사자 등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므로, 또 다른 위임절차 없이 자식에게 ‘상속’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상속’의 문제가 아니라 주주의 위임 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지배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재벌총수의 평균 5% 지분만으로는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듯이, 설사 상속세를 폐지하여 이를 고스란히 2ㆍ3세에게 물려준다고 한들 5% 지분만으로는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경련의 주장처럼 상속세제가 개편되어 아무런 제약 없이 지분의 양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경영능력마저 대물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행운이 어떠한 검증절차 없이 계속하여 특정 기업집단의 경영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시장경제의 원리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주주 및 여타 이해당자자로부터의 신뢰 확보와 경쟁을 통한 경영능력의 검증이라는 본질을 도외시한 채, 재벌총수와 2ㆍ3세와의 관계만으로 경영권 승계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전경련의 전근대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전경련은 또한 완전포괄주의 과세로 전환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경제활동의 예측가능성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재벌의 편법상속을 위해 다시 법을 개악하자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참여연대는 지난 2000년부터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전환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 지난 2003년 12월에 공평과세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따라 완전포괄주의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것은 법에 열거된 사항 이외에도, 실질적인 부의 이전이 발생한다면 상속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공평과세의 대전제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상속증여세의 세율 인하를 논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완전포괄주의가 자리 잡혀 부의 부당한 대물림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할 때이다.

또한 전경련은 상속세제 관련 국제적 동향을 소개하면서 상속세를 완화하는 것이 마치 국제적 조류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으나 이를 마치 보편적인 논리인양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더군다나 상속 세제를 완화하려는 이들 국가들의 경우는 이미 소유 구조가 분산된 경제 환경 하에서 일부 경쟁력을 갖춘 중소규모의 특화된 영역의 가족기업을 육성하여 국민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수 일가가 순환출자를 통해 여러 사업 분야의 대규모 계열 기업들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시사점은 대단히 적다. 오히려 이들 나라는 자본이득 과세제도가 정비되어 있어 상속세를 완화하더라도 부의 부당한 대물림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자본이득 과세제도가 제대로 실시할 인프라조차도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과세제도가 온전한 선진국과는 달리 아직도 소득과 재산에 대한 그물망 같은 세금제도와 행정이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세금 한 푼 없이 만들어진 비자금과 변칙증여재산에 대해 최종적으로 검증하는 제도이자 부의 무상이전에 대한 사회적 부담의 성격인 상속세를 전경련의 주장대로 저율로 과세하게 된다면 이는 부정한 돈에 정부와 우리 국민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전경련의 상속세인하 주장은 과세형평성을 추구하는 조세제도의 근간을 해치는 것임은 물론 사회정의 차원에서도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재벌들의 기업경영과 지배구조의 투명화가 달성되고 재벌의 성실납세가 검증되어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이 없게 되는 등 사회적으로 재벌과 자산가들이 존경받는 상황이 된다면, 지금처럼 궁색하게 자신들만의 세금인 상속세의 인하를 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게 될 것이다.

조세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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