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소득 세금 YES, 불법소득 세금 NO?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과세, 왜 필요한가?

[기획특집] 세금으로 본 정치비자금 사건 ②

과세해야 한다는 데 의견일치

정치인들이 수수한 불법정치자금에 대해 빠짐없이 과세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에 각계 전문가들도 동조하고 나섰다. 지난 13일 시민방송 <황상익의 쟁점토론 '난장'>에 출연한 조세 및 법률 전문가들은 불법정치자금에 대해서 국세청이 철저하게 과세해야 한다는 데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따라서 지금까지 과세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거듭 밝히고 있는 국세청 입장에선 향후 반대 논리를 전개하는 데 그 입지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권력형 불법고액거래는 비과세?’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토론에서 이전오 변호사는 불법정치자금 문제가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과세를 통해 처벌의 강도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합법적인 정치자금에 증여세를 비과세하고 있는데, 이는 바꿔 말하면 합법적이지 않은 돈에는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뜻”이라며,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불법정치자금 수수 관행을 깨는 데 엄정한 과세가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불법정치자금 수수자에 대한 검찰조사 과정에서 위법성이 드러날 경우 검찰이 이를 국세청에 통보, 국세청이 구체적으로 과세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형사적 처벌과 세법 차원의 처벌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균 세무사 역시 이 변호사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세무조사 관련 규정에 검찰이 정치자금 수수의 불법성을 통보하는 즉시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명시함으로써, 검찰과 국세청의 공조를 통한 불법정치자금 수수 관행 척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최영태 회계사는 “한국사회에서 불법정치자금을 받는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 그렇다면 불법을 저지르면 저지를수록 더 잘 살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 아닌가”라고 꼬집고, “성실한 사람이 땀흘려 번 돈엔 과세하면서, 불로소득에 가까운 뇌물에는 왜 과세하지 못한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며 불법적 이득에 과세하지 않는 과세당국을 비판했다.

최 소장은 또한 정치인 등이 받은 돈이 불법자금으로 판명날 경우 몰수·추징을 하게 되는데, 과세까지 하는 것은 이중처벌일 수 있다는 반론 또한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최 소장은 “어떤 사람이 자신이 얻은 금전적 이득이 차후에 불법으로 판명날 것을 예상해서 소득신고를 안 해도 되는가. 소득이 발생했으면 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고, 그게 불법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차후의 문제”라며, 소득이 있기 때문에 과세한다는 세법적 논리와 형사처벌의 일부일 뿐인 몰수·추징은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명백히 했다.

불법정치비자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수수한 불법정치자금에 합당한 세금을 물림으로써 정치자금을 둘러싼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SK비자금과 관련된 최근의 정국상황 때문이다.

현재 SK그룹 외에 삼성, 현대자동차도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다가, LG그룹에까지 그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매 선거마다 터져 나오는 정치비자금 사건에 국민들은 면역이 될 법하지만, 여전히 그 액수와 전달방법 등에 충격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불법정치자금을 통한 정치인과 기업의 추악한 뒷거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건 당연하다.

올해만 해도 나라종금 퇴출저지 사건, 굿모닝시티 사건, 현대비자금 사건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연루된 대형 비리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이 대가성 여부를 사이에 두고 정치자금과 뇌물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곡예를 벌이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불법적으로 받은 돈에 대한 형사적 징벌의 하나인 몰수·추징도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에나 가능하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기업회계 투명성 확보, 돈세탁방지법강화, 정치자금법 개정 등을 통해 부패척결의 그물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그러나 해당 정치인이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밝혀져 사법처리 된다 하더라도, 그뿐이다. 형사처벌을 받고서도 보석 등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과 다름없는 정치활동을 하는 게 너무나 보편적인 한국사회 풍토에서, 사법처리 여부가 해당 정치인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에 미치는 타격은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 “정치인들의 비리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정치인 자체를 없애는 것뿐”이라는 말까지 들리는 지금,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권력형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회지도층=탈법자유층?

올 들어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지난 4월 21일과 7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국세청에 탈세제보를 했다. 소위 ‘세풍’ 사건 당시 불법적인 금품을 수수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그리고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에 연루되어 돈을 받은 정치인들에 대한 과세요구가 그것이다.

이는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이전과는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탈세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정치인들이 수수한 불법적인 돈 또한 소득이기 때문에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의 대원칙에 충실할 뿐 아니라, ‘권력형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탈세범’임을 부각시켜 당사자 및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적 책임도 묻지 못하고, 수수한 금품마저 고스란히 돈을 받은 사람의 재산이 되는 상황에서, 불법소득에 대한 세금징수는 징벌로서의 기능 또한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다고 참여연대는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풍’ 사건으로 금품을 수수한 한나라당 의원과 언론인들의 경우다. 이는 참여연대가 국세청에 탈세제보한 첫 번째 사례기도 하다. 지난 4월 8일 서울지방검찰청 발표에 의하면,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석희 당시 국세청 차장이 세무조사 등을 압박수단으로 삼아 23개 기업으로부터 166억3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했고, 이 중 일부금액을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교부받아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들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형법상 5년인 공소시효가 만료돼 검찰수사 결과 혐의가 입증됐음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받은 돈은 결과적으로 수증자 개인의 재산이 돼버린 것이다. 정치자금이 정치인 개인의 치부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의 단적인 예다.

그러나 세법을 적용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분명 위법한 방법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증여세 또는 소득세 부과 사유에 해당한다. 세법상의 공소시효에 해당하는 제척기간(10년,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15년) 또한 만료되지 않은 상태여서 참여연대는 국세청에 이들의 탈세사실을 제보한 것이다.

나라종금 사건이나 굿모닝시티 사건 등에서 보듯 해당 정치인들이 국회의원 신분임을 이용, 국회회기 중 불체포 특권을 내세워 검찰소환에 불응할 경우 사법처리 절차는 답보상태에 빠지게 된다. 참여연대는 이런 경우에도 해당 정치인이 수수한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국세청이 탈세로 접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적 이득에 과세 없이 조세정의도 없다

참여연대가 지난 6월 2일부터 7월 8일까지 약 한 달간 국세심판원의 심판례를 조사한 결과, 국세심판원이 이 기간 동안 심사한 건수는 총 184건이었다. 이 중 취소판정이 27건, 경정 34건, 재조사 1건으로, 국세청의 과세정도에 대한 납세자들의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진 경우는 모두 62건으로 전체의 33.5%에 달했다. 즉 일반 납세자를 대상으로 한 국세청의 과세판정 중 1/3에 해당하는 경우가 과도한 세금부과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납세자가 일반인일 때만 그렇다. 권력층을 대상으로 할 땐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현재 정부는 국민들이 땀흘려 번 근로소득에 대해 꼬박꼬박 세금을 징수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취한 불법정치자금, 뇌물 등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검찰수사 및 언론보도로 탈세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져도, 국세청은 과세를 위한 조사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불법적으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이 오히려 세무상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불법적 이득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금품수수 능력도, 탈세 능력도 없는 서민들만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민들의 상식을 뿌리째 뒤흔드는 것으로, 조세정의를 확립해야 할 국가가 조세정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소득이 있으면 과세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모든 기업과 모든 정치인의 이름이 비자금 수사 리스트에 한번씩 다 오르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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