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3-06-19   1461

[시론] ‘형평기념탑’과 진주의료원

[시론]

‘형평기념탑’과 진주의료원

 

경상대 정모 교수에게 진주에 가겠다고 약속한 지 벌써 5~6년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진주에 가겠다고 한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곳에 있는 ‘형평기념탑’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형평기념탑’은 조선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의 신분해방과 인간 존엄의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 활동(1923~1935)을 기념하기 위해 뜻있는 이들이 정성을 모아 1996년 세계인권선언일(12월10일)에 진주에 건립한 탑이다.

 

‘형평운동’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천재 작가 중의 한 명이었던 조명희의 단편소설 <낙동강>에도 등장한다. 백정을 조롱하는 장꾼들과 형평사원들간의 싸움이 일어나자 주인공 박성운과 그의 동료들은 백정 편을 들며 이렇게 외친다. “백정이나 우리나 다 같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형평사원을 … 한 형제요, 동무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그는 소작농, 백정, 여성 등 약자들의 편에 서서 악독한 일본 지주와 싸우다 결국 죽지만 그의 꿈은 형평사원의 딸인 로사의 ‘폭발탄’ 같은 꿈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형평운동’의 시발점이자 핵심지역인 진주가 최근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이유는 정반대이다. 103년 전통의 공공의료기관이었던 진주의료원에 대해 홍준표 도지사가 갈 곳 없는 아픈 환자들을 내쫓고, 폐쇄 명령을 내리고, 경남도의회 새누리당 의원들이 10분 만에 토론도 없이 해산조례를 날치기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가장 열심히 공평한 세상을 꿈꾸었던 진주가, 그리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그곳에 자리잡았던 마지막 안식처가 왜 이리 되어버렸을까?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공공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홍준표 지사와 행정부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경남도의회 의원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방의료원을 지역거점병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집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이를 저버리는 대통령과 도무지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무능한 보건복지부 장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무릇 절망은 포기하는 자의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의료원을 활성화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게 해야 한다. 국민이 무서운 줄 알게 해야 한다. 우선 지방자치법 제169조, 172조에 따라 진영 복지부 장관은 홍준표 도지사의 위법한 폐원 결정에 대해 시정명령을 발부하고 폐원 처분을 취소해야 하며, 경상남도 의회의 진주의료원 해산조례에 대한 장관의 재의 요구에 불응 의사를 밝힌 홍 지사에 대해 조례 취소 제소 및 집행정지신청을 법원에 제기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보장위원회를 소집해 조정권을 행사하는 등 법령에서 정한 중앙정부의 권한과 책임을 다하여 진주의료원을 정상화해야 한다.

 

 

형평기념탑에 부끄럽지 않은 진주를 함께 만들자. 진주에 다시 ‘공평’이 자리 잡게 하는 일, 그것은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에 바쁜 정치가와 음침한 골방에서 여론조작을 일삼는 이들에게 맡겨 놓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진주가 움직이고, ‘돈보다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지금보다 백배는 더 힘들었을 일제강점기에 자기 몸을 바쳐 헌신했던 박성운과 로사의 꿈을 잇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형평기념탑을 세우며 간직하고자 했던 소중한 다짐에 동의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愛情)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라. …(중략)… 멸시와 천대에 시달리던 백정들과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 분들이 힘을 모아 펼친 형평운동은 수천년에 걸친 신분 차별의 고질을 없애려는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금자탑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인간 존엄을 누리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사회를 만들자(‘형평기념탑’ 건립 기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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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사회의학,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본 기고문은 2013. 6. 14 경향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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