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1-10-31   682

[시론] ‘영리병원’, 응답하라, 박·문·안!

‘영리병원’, 응답하라, 박·문·안!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임기 종료를 불과 몇 달 앞둔 10월29일, 보건복지부는 ‘영리병원’(영리법인병원) 허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관보에 게재했다. 드디어 한국 보건의료 체계에 ‘합법적인 영리병원’의 물꼬를 튼 것이다.

무엇보다 허무하다. 수십만의 촛불, 수많은 시민단체와 민주당을 비롯한 정당들이 설립 불가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정국의 혼란을 틈타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 중요 결정을 국민건강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보건복지부가 이렇게 슬그머니 추진한 것이다. 그것도 시행규칙이라는 꼼수를 통해 말이다.

‘영리병원’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시시비비를 차치하고도 이 결정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첫째, 방식의 문제다. 한국 보건의료 체계의 성격을 공공성에서 영리로 전환시킬 커다란 정책을 국회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일개 시행규칙을 통해 허용한 것이 그렇다. 정권 말기 재벌과 의기투합한 ‘윗분’이 “국회 통과가 어려우니 시행규칙으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는, 항간에 떠돌던 루머가 사실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는 명백히 법치주의에 대한 농락이다. 둘째, 시기의 문제다.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는 정권이 대선 정국의 어수선함과 국회 마비 시기를 틈타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명백한 권한남용이다.

그러나 반성이 없을 수 없다. 다른 데 한눈파느라 이런 날치기를 저지하지 못한 진보적 학자와 시민단체들, 권력에 줄서느라 정신이 없어 당신들의 입법 권한을 이렇게 농락하는 행정 관료의 횡포를 견제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은 반성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이참에 왜 허구한 날 보건복지부의 수장 자리를 경제 관료에게 빼앗기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 많은 보건복지부 관료 중에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외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보건복지 전공자로서 자괴감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

이번 결정은 지금의 보건복지부가 국민의 건강이 아니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처로 전락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국민건강 포기상’, ‘국민건강보험 파탄상’, ‘삼성 장학생상’ 수상자로 선정했겠는가. 정책실명제는 이래서 필요한 것이다. 이번 결정에 책임을 진 지식경제부·보건복지부의 과장급 이상 책임자의 이름을 밝혀야 한다. 그들이 퇴직 후 어느 대자본의 품에 안기는지 두 눈 뜨고 지켜보자.

의료인들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환자를 치료하고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벼락을 맞았다. 촛불시민들도 다시금 분노할 일이다. 4대강 곳곳에서 누수가 이뤄지고, 악취로 물고기들이 죽어가는데도, 바로 그들이 우리가 한눈파는 정권 말기에 철도·가스·의료 민영화를 이렇듯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영리병원’ 강행에 맞서 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저지 법안을 올리겠다고 한다. ‘의료 민영화’란 판도라 상자를 연 이의 반성이 눈물겹지만 만시지탄이다. 더욱이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이것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대선 후보들뿐이다.

잘되었다. 쭉정이를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영리병원, 철도·가스 민영화를 찬성하거나 이에 침묵하면서 복지국가 운운하는 후보는 쭉정이다. 하여 세 후보에게 묻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신영전 l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본 시론은 2012. 10. 31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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