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12-01   755

[복지칼럼] 국민 행복을 위한 인정(recognition)과 재분배(redistribution)

국민 행복을 위한 인정(recognition)과 재분배(redistribution)

 

은민수 고려대학교(세종) 공공정책대학 초빙교수

 

최근 우연히 눈에 들어온 「2020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 수준은 전체 153개국 중 61위로 나타났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 수준에 비추어 매우 저조한 성적이다. 그나마 최근까지는 2018년 57위, 2019년 54위 등 50위권을 유지했으나 올해 60위권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물론 경제수준이 행복에 항상 절대적이고 자동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10위권 내의 국가들은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등 경제강국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복지강국들이다. 영국(13위), 독일(17위), 미국(18위), 일본(62위)의 성적으로 보면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까지는 국민들의 행복수준을 끌어올리지만 그 이후에는 경제외적인 요인들이 보다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해방 이후 짧은 시간 내에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무한경쟁을 거듭해온 한국의 경우 이러한 결과는 값비싼 대가이자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시작된 코로나19는 한국의 행복 수준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치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 편으로 분리시키는 정치(two nation politics)처럼 코로나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국민들과 반대로 불안정하고 기본적 자원을 갖추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 사이에 ‘코로나 균열’(corona cleavage)을 형성시키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취업 준비생 등 불리한 경제적 여건에 놓여 있는 국민들은 전염병 자체의 위협보다도 생계의 위협이 더욱 두려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의 취업과 실업의 걱정, 사업과 폐업의 우려가 더욱 클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계층들을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탈출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전 국민 고용보험, 실업부조, 기본소득 등을 중심으로 백가쟁명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코로나 이후의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대안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철학과 내용으로 채워져야만 한다는 점이다. 주로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특성상 일정한 재분배라는 단순방정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기존의 위기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갈등들이 전개될 것이므로 이에 적합한 복합방정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정식에는 ‘불평등의 조정’ 외에 사회 구성원 간 ‘차이의 인정’을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서구와 달리 ‘분배 정의’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우리의 여건에서 ‘차이의 인정’까지 고려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분배’와 ‘인정’을 둘러싼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와의 논쟁에서 낸시 프레이저는 현대사회 갈등의 두 축이 문화적 차원에서의 무시와 경제적 차원에서의 불평등에 존재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불평등한 분배와 무시의 문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서울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근로 세대와 은퇴 세대 등의 갈등구조에서 분배와 인정의 문제는 결코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불평등이 무시를 낳았고, 무시는 불평등을 야기하였다. 따라서 여성, 지역, 비정규직, 저학력자, 은퇴 세대 등에 대한 합당한 인정 없이는 경제적 분배를 기대하기 어렵고, 반대로 경제적 분배 없이는 정당한 인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예컨대 성차별에 대한 사회운동은 사회문화적 인정과 경제적 분배 모두와 연관된 사안이며, 노동운동 역시 경제적 분배와 사회문화적 인정, 양자 모두와 연관되어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의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분배 정의’와 ‘상호 인정’의 문제를 통합해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배가 고픈데 행복하기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한국의 사회 구성원들이 차별없이 기본적인 물질적 자원을 분배받아야 한다. 그러나 빵만 가지고 행복할 수는 없으므로 무시받지 않고 동등하게 사회적 인정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낸시 프레이저가 제시하는 방식은 이른바 분배와 인정 차원의 동시적 통합적 해결을 모색하는 이른바 <교차-시정방식>이다. 즉, 무시를 시정하기 위해 분배적 수단을 이용하고, 불평등한 분배를 시정하기 위해 인정과 관련된 수단을 사용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여성의 수입이 증가하는 경우 여성에 대한 무시는 감소할 것이며, 비정규직들의 노동을 인정한다면 그들의 경제상태는 개선될 것이다. 또한 빈곤층에 대한 충분한 복지가 제공된다면 그들에 대한 낙인과 무시의 정서도 완화될 것이며 장애인에 대한 인정 분위기는 그들의 취업과 소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가 다양성과 차이의 무시라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음은 여러 통계와 자료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재 목적이 정말 대한민국의 구성원인 국민들의 행복에 있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그동안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고민해볼 때이다. 부모 잘 만나 좋은 배경을 갖게 되면, 유명 대학에 들어가 좋은 학벌을 갖추면,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여유 등 모든 걸 얻게 되고, 반대일 경우에는 사회적 무시와 경제적 고통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온갖 다시 도전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승자독식/패자전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편견과 무시의 자리에 상호존중과 인정이, 불평등과 불공정의 자리에 평등과 공정이, 불신과 분노의 자리에 신뢰와 관용이 들어서야 한다. 이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모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실천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지금이 혁신하기에 딱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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