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10-01   253

[편집인의 글] 복지동향 216호(2016년 10월호)

불평등은 인간을 모독하는 치명적 질병이다

 

                                                       이숙진ㅣ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태어나 이런 더위는 처음이었다. 한손엔 전기료 폭탄의 실리와 다른 한손엔 온실가스 대응책이라는 명분을 쥐고 에어컨 켜기를 손에 꼽을 정도로 조심조심하며 한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맞이한 한가위, 시금치 한 단에 7천 원, 배추 한포기에 1만 원이란다. 에어컨이라는 기술문명과 한가위 민족 명절 음식을 차려내는 우리의 일상은 절대적 빈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굶주림과 기아에 허덕이지 않는데 왜 우리는 풍요롭다고 느끼지 않으며, 노후를 걱정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1등과 최고만을 향해 질주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소수만이 잘 사는 사회가 되어가는 까닭일 것이다. 소수가 차지하는 부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다수인 우리 모두는 점점 더 작아지고 적어지면서 건널 수 없는 일상의 격차를 느끼는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저계급론’은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이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 노력과는 무관하게 어찌할 수 없이 세대간 불평등이 세습되는 사회,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는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가에 의해 좌우될 뿐,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폐쇄된 절망의 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일상을 뒤덮고 있는 불평등은 임금 불평등, 교육 불평등, 건강 불평등, 주거 불평등, 자산 불평등, 정보 불평등, 젠더 불평등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불평등을 인류 최악의 치명적인 질병이라고 언급했던 사람들은 불평등이 개인을 모독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했다. 불평등의 수레바퀴에 빠지게 되면 개개인은 무력감과 소외감에 시달리며 희망보다는 절망을, 삶보다는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나쁜 병이다. 병에 걸린 미래가 없는 사회,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이런 사회를 남겨줄 수는 없기에 이 병이 더 심해지기전에 벌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불평등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알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기획주제로 마련된 글들은 9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이후의 한국의 소득불평등 추이, 개천에서 용은 차치하고 이무기도 나지 않는 교육 불평등 현실,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불평등 현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불평등 심화는 일하는 근로자 개개인의 임금 불평등에서 매우 심각하게 나타난다. 노동시장에서의 임금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임금소득의 지니계수가 높을수록 그 사회의 불평등은 심각하다. 임금 불평등이 심각하더라도 재분배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면 불평등 정도는 완화될 수 있다. 조세제도와 사회보험 분담금을 통한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국가정책을 통해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임금 불평등 지니계수는 높지만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낮아서 시장에서의 불평등을 조세제도 등을 통해 완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다. 덕분에 우리의 복지재정과 증세논의의 현주소도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주목할 점은 한국의 주요 데이터들이 2000년대 말 이후 근로소득의 불평등도가 감소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 단위의 임금 불평등이 완화 추세인지 독자로서 궁금할 부분일 것 같다. 소득 1분위와 10분위의 사교육비 지출이 18배 차이가 나고, 사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대학 진학과 취업의 불평등, 그리고 세대간 소득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된다는 논의는 새삼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의 과감한 전환을 요구한다. 과외금지가 풀린 이후 계층 이동이 둔화되었다는 경험적 증거는 더 이상 사교육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국가 복지가 강할수록 자산과 가족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산 불평등이 적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대어 복지재정의 확대와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의 여망을 다져보아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불평등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차제에 성장 중심주의, 시장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재생산, 돌봄, 공동체를 키워드로 평등사회의 대안체계를 고민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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