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06-01   362

[동향2] 어버이연합 그리고 평화복지국가

어버이연합 그리고 평화복지국가

 

이기찬 l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들어가며

 

‘어버이연합 게이트’도 벌써 잊혀지고 있다. 이미 예고되어 있던 조선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고 4.13 총선 뒤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조사가 시작되면서 지상파 뉴스나 주요 일간지 지면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미 거리로 나앉고 있는 거제, 통영, 울산 지역의 수만 명의 하청노동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옥시레킷벤키저 등에서 제조,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수백 명의 사망 및 생존 피해자를 생각해보면 우선순위에서 충분히 밀릴 만도 하고 잊혀질 만도 하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부끄럽고 서글픈 현실이다. 

 

‘평화복지국가’를 소개하는 글에서 이렇게 다소 어지럽게 어버이연합 게이트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 정치적(청와대) – 경제적(전국경제인연합회) – 사회적(노인 및 탈북자라는 취약계층) 스캔들이 이곳 대한민국에 평화복지국가의 건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이 사건을 간단히 되짚어보자. 지난 4월 11일 주간지 <시사저널>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 집회 회계 장부를 단독으로 입수하여 특종보도를 했다. 세월호참사 반대 집회에 노인들을 일당을 주고 동원했다는 내용이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동원된 이들의 상당수가 탈북자들이고 특정 탈북자단체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4월 19일 JTBC <뉴스룸>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한 기독교 선교단체를 통해서 2014년 8월부터 12월까지 1억 2천만 원을 어버이연합에 지원했다는 내용을 보도한다. 이어서 바로 다음날인 4월 20일 <시사저널>은 또다시 단독 특종보도를 한다. 이 집회의 최종 배후에는 바로 청와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취재에 응한 어버이연합 핵심인사는 세월호 반대 집회로부터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지지 집회까지 주요 집회를 지시한 인사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목했다.

 

‘게이트’라고 명명된 이 추문은 사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헌법에도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가 정치권력에 의해서 오용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정치세력이 바로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청와대였다. 게다가 경제권력을 대표하는 재벌대기업을 구성원으로 하는 전경련까지 공범으로 참여했다. 언론도 한 몫 했다. 소위 ‘기계적 중립’을 내세워 어버이연합의 집회 소식을 전하며, 대다수 시민들의 의견을 ‘한편’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론을 왜곡한 것이다. 

 

어버이연합은 2009년 10월 6일 현충원 앞 김대중 대통령 파묘 퍼포먼스, 2011년 11월 10일 노무현 대통령 관 퍼포먼스를 비롯해 욕설, 폭행 등 저열함과 천박함을 넘어 패륜적인 방식으로 시위를 해왔다. 이런 극단적 시위 및 ‘맞불 집회’는 평범한 시민들이 건강하고 성숙한 집회에 참여하는 것에 주저하게 만들었다. 시민들의 정치사회적 의사표현을 위축시키는 것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무엇이 이 ‘어버이’들을 그리고 ‘탈북자’들을 이런 극단적이고 폭력적 ‘시위’ 또는 ‘알바’에 참여하게 만들었을까? 팔순 중반을 넘긴 어버이연합 회원 곽아무개씨의 경우,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출입하고 시위에 참석하는 것이 분명히 ‘알바’는 아니다. “그는 … 부인과 딸 내외 그리고 손자와 함께 서울의 한 중형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그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다. “좌파는 빨갱이고 이들을 없애지 않으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 나와야 그나마 숨통이 트여”, <한겨레21> 801호(2010.03.10.)) 여기에 소통, 다양성 인정, 상호 존중, 배려, 관용 등 평화의 가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좌파, 빨갱이는 대화의 상대가 아닌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알바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이번 폭로를 통해 탈북자를 동원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어버이연합 산하 탈북어버이연합의 김미화 대표는 알바비로 2만 원을 받은 것을 인정했다. 4월 21일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열린 ‘왜곡보도’ 규탄 집회에서 그는 “우리 어머니들이 점심도 안 먹고 집회에 참가했다가 집에 가면서 2만원 받아서 김밥 한 줄 사먹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빨갱이들 거짓말” 시사저널 몰려간 어버이연합, <미디어오늘> 2016.04.21.)

 

10여 년 전 남한에 들어온 한 탈북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에서 놀면 뭐하겠어.” (보수집회 동원 탈북 할아버지 “하루 2만원이 어디야” <한겨레> 2016.04.25.) 해당 기사에서는 사회복지 종사자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탈북자들이 하나원이라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에서 나와 남한 지역사회에 ‘정착’할 때, 임대아파트를 배정받고 정착지원금(1인 기준 총액 700만원)을 받기는 하지만 이 돈은 브로커에게 건네지거나 가재도구 구입으로 금새 없어지게 된다. 20~30대 젊은 탈북자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마당에 60~70대 고령의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들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살 수 없다. 1인 가족이든 4인 가족이든 마찬가지다. 결국 살기 위해 그들은 단돈 2만원이라도 벌 수 있는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이를 마다할리 없다. 

 

평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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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복지국가로 돌아와 보자. 평화복지국가는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전망해 보면서 도출된 담론이자 모델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한반도의 분단 현실에서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그리고 평화복지국가 연구의 방향은 한반도에 복지국가가 건설되려면 분단체제의 해체, 즉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분단, 휴전, 북한과는 상관없이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현실을 고려하면서 복지정책을 도입, 실현시켜 복지수준을 높이고 서구형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면 되지 않나? 복지와 평화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복지는 근대국가가 만들어지고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즉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국가가 시민들에게 제공한 것 아닌가? 그리고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투쟁하여 얻어낸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것을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0년 12월 29일 어버이연합은 서울시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시위의 이유는 짐작하듯이 바로 친환경 무상급식 반대였다. 그날은 서울시의회에서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을 민주당 시의원들의 주도로 통과시키는 날이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은 조례안 통과에 반대하며 일부는 시의회 입구를 봉쇄한 경찰들과 대치했고, 일부는 시의회 건물 안으로 진입해 의장실 앞에서 시의회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어버이연합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극우보수단체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에 반대했다. 무상급식 공교육살리기 학부모연합이라는 단체도 그날 어버이연합과 함께 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동물들 여물 주듯이 똑같은 음식을 먹이는 강제급식”이라고 맹비난했다. “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나,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말살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시예산안 통과… 서해뱃길 752억 원 ↓, 무상급식 695억 원 ↑”, <오마이뉴스> 2010.12.30.)

 

복지,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선택의 문제

 

복지는 ‘경제적 조건’과 ‘재정적 뒷받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복지사회,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후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6년이나 지났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2010년 친환경 무상급식이 사회적 논쟁이 되었을 때, 보수우파의 반대 ‘논리’를 기억할 것이다. 무상급식은 사회주의 포퓰리즘 정책이고, 무상급식을 주장하거나 찬성하는 이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은 당시 이명박 정부나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 정치인들로부터, 그리고 보수적 언론도 이들의 말을 인용하며 또는 자신들의 논조로 직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즈음부터 거리에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 즉 어린 시민 모두에게 골고루 좋은 밥을 먹이는 것조차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아주 구체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이든 시민’이 ‘나이 어린 시민’에게 밥을 주지 말자고 외치는 풍경이 시내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사회. 그리고 그 ‘나이든 시민’이 그렇게 거리로 나아가 외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입속에 넣을 밥값을 벌기 위해서인 사회. 그리고 정치와 경제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는 자들이 그렇게 ‘나이든 시민’을 푼돈을 주고 동원해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하고 심지어 물리적 폭행을 가하게 만드는 정치. 

 

이런 갈등과 대결, 증오와 저주의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복지를 이룰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복지라는 단어의 앞뒤로, ‘사회-’와 ‘-국가’라는 단어가 늘 붙어서 따라다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복지는 사회적 합의고 시민들이 참여해 국가로 하여금 실시하도록 해야 하는 아주 실질적인 약속이자 정책이다. 

 

평화, 골고루 밥을 나누어 먹는다

 

평화는 오래전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이야기되어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한자 뜻풀이를 매우 좋아한다. 평화(平和)는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平) 밥(禾)을 나누어 먹는다(口)로 풀이된다. 때문에 ‘평화’와 ‘복지’는 전혀 다른 개념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 ‘어버이’들의 지나온 삶의 경험으로부터도 평화복지국가의 필요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현재, 70대를 넘기신 분이라면 해방전후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직접 겪었고, 60대라도 전쟁 직후에 태어나 전쟁이 남기고 간 폐허와 상처들,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더 지독하고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독재를 몸소 체험했다. 항상 과거는 아름답게 채색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난 한 시절 눈부신 경제성장이 있었기에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전쟁과 가난, 독재와 폭력은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와 적대적 삶의 태도를 남겼다.

 

평화와 복지, 함께 가야

 

평화복지국가는 이런 역사적, 정치경제적 조건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구체적 문제, 즉 사회문화와 관계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고 시민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평화와 복지는 어떻게 보면 ‘두 마리의 토끼’이다. 다 잡으려다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고 놓칠 위험이 크다. 그럼에도 이 어려운 토끼몰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평화와 복지, 경계를 넘어 – 평화복지국가의 정치적 조건과 주체를 찾아(이매진, 2014)
평화복지국가 – 분단과 전쟁을 넘어 새로운 복지국가를 상상하다(이매진, 2013)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이매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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