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09-10   671

광복 60년의 회고: 남북 모두의 들에 봄은 오는가

인간에게 환갑 나이는 귀에 순종하는(耳順), 다시 말하여 자신의 말하기보다 남의 말에 적극적인 경청을 하게 되는 성숙한 나이이다. 금년 8월 15일은 1945년 광복 이후 강산이 6차례나 바뀌는 격동의 세월을 거쳐 이순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더구나 남북 대표단이 함께 모여 8ㆍ15 민족대축전을 성대히 벌여 북핵 해결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의 희망을 보게 된다.

60년을 거치는 동안 우리 남한 사회의 변화를 보면 실로 놀랍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렇게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인구는 1945년 1,613만여 명에서 2005년 4,829만여 명으로 약 3배 가까이 늘어났고, 국내총생산(GDP)은 520배, 외환보유액은 1300배, 수출 규모는 9200배나 늘어났다. 그리고 1인당 GNI는 53년에 67달러(2000원)에 불과했는데, 지난해 1인당 소득은 1만4천불(1,621만원)이 넘었다. 당시 67달러를 소비자물가 변동(213배)을 감안해 2004년 가치로 환산하면 42만6000원인데, 이는 현재 약 10일간의 소득에 불과하다. 60년 동안 한국전쟁, IMF 외환 위기 등 전 국가적으로 어려운 환난을 겪기도 했지만, ‘하면 된다’는 투지와 열정은 우리 경제를 이제 당당히 세계 11위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소비자 물가는 약 11만배(연평균 상승률 1.3%)가 늘어났다. 특히 서울시내 버스요금은 1945년 0.16원(圓)에서 2005년 800원으로 500만배가 올랐고, 서울과 부산 기차요금(최우등석 기준)은 113원(圓)에서 6만2700원으로 55만배나 올랐다. 휘발유 가격은 ℓ당 24원(圓)에서 올해 6월 기준 1332.5원으로 5만5천배, 쌀(80㎏)은 286.5원(圓)에서 15만8천원으로 55만2천배 가까이 뛰었다. 소주 가격은 비교적 적게 올랐는데, 1945년 10.4원에서 올해 901원으로 8만6635배가 올랐다.

해방 당시 통계자료가 없는 자장면 값과 대학 납입금 등을 보면, 공식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지금부터 30년 전인 1975년에 비하여 자장면은 141원에서 3222원으로 22.9배, 대학 납입금은 11만7천원에서 264만2천원으로 약 22.6배가 인상되어 같은 기간 중 소비자물가지수(약 8배)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서울지역 땅값도 1975년 이후 30년간 여타 필수품과 비슷한 수준인 29배로 상승했다.

광복 이후 60년이 흐르는 동안 사라져 갔거나 사라지고 있는 직업도 많다. 60~70년대 인가가 높았던 비행기 항법사는 80년대 들어 컴퓨터 관성항법장치(INS, GPS)가 도입되면서 이 직종은 항공사 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70~80년대 많은 추억을 남겼던 버스 안내양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인간이 철제 농기구로 농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였던 대장장이, ‘뚫어’를 외치며 다녔던 굴뚝 청소원, 손으로 옷감을 짜던 직조공이나 의복 염색공, 타자수리공도 밀려나고 있다. 이밖에 주산이 전자계산기에 밀려 명색만 유지하고 있고, 서민 골목금융의 상징이던 전당포, 달러 암거래 환전상들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 됐다.

이렇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돌이켜 볼 때, 하루 끼니 걱정으로 한숨 쉬어야했던 보릿고개를 훌쩍 넘어선 것만은 분명하다. 버려지는 쓰레기 양이라든가 살을 빼고자 눈물겹도록 애쓰는 모습들을 볼 때 이제 돈 버는 주요 목적이 생계보다는 여행, 레저 등 문화생활을 통한 삶의 질, 소위 웰빙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스페인, 캐나다, 인도의 뒤를 이어 세계 11위가 된 것은 이를 확실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소득 불균형에 의한 빈부격차 문제, 산업간 또는 기업간 양극화 문제는 우리 경제와 사회발전의 측면에서 또 다른 심각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허허벌판에서 맨주먹으로 일궈낸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눈부시지만, 우리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공동체 사회로의 발전이 결코 아님은 우리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큰 짐으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하여 국가 전체의 부는 굉장히 증가하였지만 일한 대가에 대한 소득이 골고루 나눠지지 않는 소득 불평등 정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득불평등도는 공식통계에 잡히기 시작한 1970년대에 악화되는 추세를 보이다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는 감소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소득 불평등도는 악화되는 추세로 반전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이전 시기와는 반대로 학력별 임금격차가 확대되어 소득 불평등도의 악화를 초래하였고 외환위기는 이러한 추세를 증폭시킨데 기인한다. 이와 함께 기술 변화로 인한 고숙련 인력의 수요 확대가 임금격차 확대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됨으로써 소득 불평등도의 악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급속한 노인인구의 증가, 이혼 등을 통한 여성가구주 가구의 증가, 단독가구의 증가 등 인구학적 변화는 또한 소득 불평등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여성가구주 가구, 노인가구주 가구가 경제적 취약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사회의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는 적어도 빈곤을 증대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향후에 그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들은 여성의 경제활동에 따른 탁아 및 보육서비스가 중요한 사회복지정책 과제로 등장하게 되고,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사회복지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아직도 우리 사회는 소득격차를 조정하는 능력이 상당히 미흡함을 알 수 있다. 우선 사회보장 지출이 부족하며, 자영업자 소득파악의 어려움에 따른 세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자연상태’의 소득격차가 그대로 빈부 간 격차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자영자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상태에서 간접세 위주의 조세정책을 펼치고 있으므로 조세정책을 통한 분배효과 제고에는 일정한 한계가 지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을 통해 그 효과를 보완해야 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단의 조처가 강구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한반도에서 남북 협력체제로의 급격한 변화는 정치ㆍ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복지 분야에 있어서도 교류가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이며, 특히 탈북자 복지문제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제 광복 60년을 맞아 통일을 위한 체제수렴 차원의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고, 이는 남한사회에서 만이라도 먼저 사회복지정책을 통한 절대적, 상대적 빈곤의 해소 노력을 통한 사회통합이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을 말해 준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은 매 50년마다 1년을 완전한 휴식기간으로 지키며, 노예를 해방시키고 상속받은 재산을 회복시켜 주었듯이, 이제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빈부, 경제산업, 지역간 양극화 현상에 대한 치유를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광복은 아닐 것이다.

이제 ‘빼앗긴 들’이 아닌 우리 ‘남북 모두의 들’에 참다운 봄이 오게 해야 한다.

조흥식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