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14-11-19   736

[이슈&논쟁] 1년 만에 또 같은 싸움… 박근혜 정부의 노림수

1년 만에 또 같은 싸움… 박근혜 정부의 노림수

무상보육-급식 논란… 지난해에 이어 편 가르기 방식 이용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니 이야기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서, 결국에는 공론장의 시민들로 하여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게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이야기다.

 

소위 보편복지의 범주에 들어가는 많은 제도들 중 ‘돈 문제’가 핵심에서 비껴난 것들은 거의 없겠지만, 그 중 특히 돈 쓰는 것이 가장 중심에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노인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금지원을 그 내용으로 하는 정책인 기초연금의 경우 얼마만큼의 돈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의 문제가 정책과 제도의 핵심이다.

 

그러나 보육 문제는 기초연금 문제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영유아보육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하는 사회복지서비스라는 점에서 단순한 재원 확보 및 조달방식의 문제를 넘어선다. 즉 보육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책임이 단순히 보육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육의 문제와 관련해 공공의 책임과 역할을 논할 때는 단순히 보육비용을 누가 지출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 ‘누구나 믿고 맡길 수 있는 양질의 보육서비스 제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는 점을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면시행 3년차 무상보육은 왜 표류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정체성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도입한 무상보육 정책이 전면시행 3년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제는 안정적인 제도의 운용을 위한 세밀한 조율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지만 정작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정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태로 표류하고 있다.

 

0~5세 무상보육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제도의 시행과정을 돌이켜보면 시행 초기부터 해마다 몸살을 앓아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무상보육제도 전면도입 첫 해였던 지난해에는 지방자치단체의 과도한 복지비분담의 원인이 되고 있는 기준보조율(서울 20% : 지방 50%)의 현실화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갈등을 빚으면서 소위 ‘보육대란’에 대한 우려를 키운 바 있다. 그러더니, 2015년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올해 말에 들어서는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보육지원 예산을 교육지방자치단체, 즉 교육청에 떠넘김으로써 또 다시 지루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작년과 똑같은 싸움을 선수만 바꿔가면서 2년째 계속하고 있는 꼴이다.

 

박근혜 정부의 보육정책은 역설적으로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보육의 문제를 돈의 문제로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보육을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고, 보육관련 다양한 문제해결의 핵심에 돈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정책주체로서의 정부가 그 돈의 문제를 직접 책임지려하지 않고 상대 선수를 바꿔가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그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도로 정치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상대만 바꿔 1년만에 재기한 싸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현재의 무상보육 관련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교육부가 신청한 누리과정 예산 2조 2000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2015년 예산편성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다.

 

이에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9월 18일 성명을 내어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지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전쟁’ 2라운드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상대는 바뀌었다.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1라운드)들에서 각 시도교육감(2라운드)으로 말이다.

 

본질을 벗어난 갈등의 양상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 선언을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고도로 계산된 홍준표의 ‘돌출선언’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교육감들에게 무상급식 예산을 활용하여 무상보육 예산을 마련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난데없이 무상급식 예산과 무상보육 예산이 서로 대립하게 되는 이른바 제로썸(zero sum) 게임의 논리가 적용되어 나타난 것이다. 급기야 무상보육의 문제를 보육의 당사자인 영유아들과 급식의 당사자인 초중등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복지정책 운용 관련 박근혜 정부의 일관성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보편적 복지의 시행과 관련하여 더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내부의 균열과 갈등을 유도함으로써 그 목소리가 알아서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대립할 문제 아냐

보육의 예를 놓고 보자. 지난 2013년의 ‘보육대란’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편 가르고,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도 균열을 내는 편 가르기 방식이었다. 이번 2015년 무상보육 예산 관련 갈등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무상보육 관련 예산안 편성을 둘러싸고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외면한 채, 복지부와 교육부, 혹은 중앙정부와 교육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갈등이 문제의 본질인 양 호도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다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사이에 근거 없는 대립 틀(frame)을 만들어서 영유아와 초중등학생, 영유아 부모와 초중등부모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덧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보육에 대한 공공 책임성의 강화와 이를 위한 복지재원의 확보방안 마련이라는, 보육정책 공론장의 본질적인 주제와 관련한 논의는 질식당하고 있다. 공론장이 질식당하는 와중에 이들 본질적인 문제의식들이 시민의 머릿속에서도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증세 없는 보편복지’의 실현이라는 형식논리모순을 공약으로 내던지고 출발한 박근혜 정부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매우 치밀하게 고안한 신의 한 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상보육이 되었든, 무상급식이 되었든 두 가지 모두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돌봄 및 교육에 대한 공공 책임의 실현’이라는 동일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대립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공공 책임의 실현은 이들 정책이 원활하게 운용되는데 필수적인 재정확보방안의 마련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증세 없는 보편복지’ 실현은 허구적 논리

대기업에 대한 특혜성 세금감면 철회를 통한 세수확보가 되었든, 사회복지세의 도입이 되었든, 혹은 다른 방식의 보편적 증세가 되었든, 그도 아니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기반 확대가 되었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복지재정 마련 방안에 대한 논의가 다시 보육 및 보편복지 공론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공공보육시설의 확대, 보육교사 신분 안정화 및 처우 개선,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체계의 개선, 보육프로그램의 선진화 등 “영유아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 양육”하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가 바로 그 기반 위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의 허구적인 대립, 절대적인 복지재정 확보방안 부재의 문제를 마치 중앙과 지방, 정부와 교육청과의 대립인양 호도하는 소모적인 논쟁, 그리고 ‘증세 없는 보편복지’ 실현이라는 허구적인 논리는 지금 당장 거두어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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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 본 기고문은 2014. 11. 19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글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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