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6 2016-08-01   2606

[기획주제2] 정신건강복지법의 탄생

정신건강복지법의 탄생

 

전준희 l 화성시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정신보건법이 통과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이라는 긴 이름의 법으로 통과되었다. 19대 국회는 회기의 막바지에 이르러 정신보건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5월 19일이었다.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던 정신보건법 개정과정

 

필자가 정신보건법에 대한 전면개정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2016년 5월 초였으니 법이 통과되기 10일도 남겨놓지 않은 때였다. 그것도 보건복지부 담당부서의 공식적인 문서나 정부의 공식적인 정보공간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닌 사적인 경로를 통해서 알게 된 점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부분이었다. 법안의 개정과정에 대한 공개가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전문가들은 “설마 이렇게 논의도 없이 (법안이) 통과가 되겠느냐?”고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법안 개정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는 5월 19일에 무너졌다. 이번 개정은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20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법안의 전면적인 개정으로는 처음이어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개정과정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이후 하위법령 개정과정에서 당사자 단체와 이익단체들의 의심의 눈길과 적극적인(?) 관심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담은 변화

 

과정이야 어쨌든 법안은 통과가 되었고 2017년 5월부터 시행된다. 2016년 연말까지 정신건강복지법 하위법령의 개정작업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2017년 상반기동안 정부기관의 검토가 있은 후 대통령의 재가를 얻으면 시행령이 공포될 것이다. 이번 법은 과정상의 오점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담겨있다는 평가가 있다. 

 

강제입원제도의 개선

그 첫 번째는 강제입원제도의 개선이다. 이번 법개정의 가장 변화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전히 강제입원 조항(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이 진행 중이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 중에는 어떤 형태로의 강제입원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곳도 있다. 즉 강제입원 개선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들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강제입원 제도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모든 강제입원에 대한 입원적합성심사 및 진단입원을 도입하고 2명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에 의한 입원 결정, 기초심판위원회의 결정내용의 다양화, 시군구청장이 보호의무자가 되는 규정을 엄격화와 행정입원의 현실화가 바로 해법의 내용들이다.  

 

차별해소와 복지서비스 근거 마련 및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
두 번째 큰 변화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해소 및 복지서비스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동안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 제15조에 의해 장애인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 법안으로 정신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의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의 범주를 좁혀서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로 규정하여 기존의 경증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치료를 받아서 직업상 불이익을 받던 것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전 국민에 대한 정신건강증진사업의 근거를 마련하여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역사상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정신건강정책 추진

 

현행 총 6장 59조였던 정신보건법은 이제 총 8장 89조로 더 내용이 많아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법의 내용이 더 풍부해지고 다양한 영역이 포함되게 되었다. 이미 정부는 2016년 2월에 ‘국민정신건강종합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어 4월에는 과거 국립서울병원을 국립정신건강센터로 확장 오픈하여 국가 정신건강정책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이는 정신건강을 위한 강력한 정책과 실행체계를 구축한 조치로 19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래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정신건강정책 추진을 위한 준비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우려를 가질 수 밖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건강증진을 법에서는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지만 정신건강증진에 대한 충분한 논의과정도 없이 ‘정신보건’에서 ‘정신건강증진’으로 이름만 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4년에 제출되었던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서부터 ‘정신건강증진’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러한 강조는 중증정신질환자 중심에서 일반국민들의 정신건강으로 확장하는 정책적 변화를 반영한 조치였다.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올해 발표된 ‘국민정신건강종합대책’에도 일반국민들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들이 담겨져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음건강주치의’ 제도인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상근배치하여 국민들이 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울증과 같은 경증의 정신질환은 동네 내과와 같은 의원에서도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점 등이다. 

 

정신건강증진에 대한 이해부족

 

그동안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우리 정부의 정책을 생각해볼 때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의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정부가 드디어 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신건강증진정책이라면 방향은 조금 어긋난 느낌이다. WHO가 규정한 정신건강의 정의는 ‘한 개인이, 자신은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대처할 수 있고 생산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일할 수 있으며,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고 있는 안녕(well-being)상태’, 결과적으로 정신 건강의 증진이나 복지를 포함한 건강의 증진은 건강 분야에서의 프로젝트라기보다 정치적 사회적 프로젝트인 것이다(Mittelmark, 2003). 즉 정신건강증진은 질병이 없는 상태의 개선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개념이다. 실업률을 낮추고, 학교 교육을 확대시키고, 낙인(stigma)과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일하는 것이 정신건강증진이다. 1) 정신이 건강하다는 것은 단순히 우울증의 없음, 조현병환자가 적음을 의미하기 보다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행복할 수 있는 상태, 조현병을 가지고도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관계가 있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정부의 정신보건에서 정신건강증진으로의 변화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책의 철학적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법을 개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정신건강증진이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으나 법안에서는 사실상 정신건강증진에 대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재활에서의 회복패러다임과 당사자운동의 대두, 레질리언스(resilience, 자기효능감), 마을운동과 공동체 회복과 같은 흐름들은 공중보건에서의 정신건강증진과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5년에 건강증진법이 만들어지고 건강증진사업을 수행하면서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건강증진을 단순히 건강행태 개선으로만 이해하면서 금연, 구강 절주, 운동, 영양과 같은 건강행태개선사업인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지금 정신건강증진을 이해하는 우리의 법이 그러하다.  

 

정신질환범주의 축소로 인한 이중낙인 우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논쟁이 덜되고 있는 부분은 정신질환자 범주의 축소에 대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가벼운 정신질환만을 가지고도 정신질환자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법안을 개정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것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경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정부의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가 이러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OECD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권고했던 ‘경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한 정책적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경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서비스도 정신건강복지법의 정신건강증진의 장을 통해서 접근해 나갈 예정인 듯하다. 정신건강에 대한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정신질환자의 범주를 축소함으로 인해 발생될 여지가 있는 이중낙인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현병, 양극성정동장애 등 중증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진짜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이다. 개정법에서 말하는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에 해당되므로 낙인은 물론 사회적 차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물론 정책이 어떤 나쁜 의도를 갖고 정신질환자 범주를 축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책의 결과가 중증정신질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분리가 결국 낙인이 되고 차별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사회적 대책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중증정신질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는 물로 직업적, 환경적 조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통해 얼마나 충족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정신보건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이번 법이 기존법과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정신보건센터 혹은 정신건강증진센터(2014년부터), 정신건강복지센터(개정법)가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명칭이 변경될 정신건강증진센터는 우리나라 정신건강정책의 대표 전달체계이다. 특히 공공성이 아주 강한 기관으로 20여 년간 국가의 정신건강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관이다. 그러나 근거가 없어서 예산, 인력, 서비스 기획 등 다양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전달체계가 성장하여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인해 정신건강증진센터의 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신장애인이 병원에서 퇴원하여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사회복귀시설이 참으로 중요하다. 사회복귀시설은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 있으나 정신건강증진센터의 경우엔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에 설치,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서비스를 제공받기를 원하지만 법적인 혜택과 서비스가 다른 장애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건강증진센터의 중증정신질환자 관련된 서비스를 식당으로 비유하자면 한식, 중식, 양식 등 모든 메뉴를 구비하고 있는 식당이지만 막상 손님이 해당 메뉴를 주문하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가져오는 식당 같은 곳이다. 예를 들면 1명의 사례관리자가 만나야 하는 대상자가 50명이 넘는 곳이 태반이어서 고작 한 달이면 두 번 이상 가정방문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거기에 고용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담당직원의 잦은 이직이 발생하는 곳이니 서비스의 연속성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최근 5~6년 동안 자살예방, 재난정신건강 등 사업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으로 인해서 그나마 제공하던 서비스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6년 3월에 서울시 26개 정신건강증진센터 실무자들로 구성된 ‘정신보건노조’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산하로 결성이 되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종사자에 대한 고용불안정 해소, 과도한 업무량 해결, 정책형성과정에서의 소외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고 있다. 이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신장애인을 위한 보건과 복지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시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개정법의 하위법령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정신질환자를 정의하면서 중독문제를 고려할만한 근거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국의 50여개의 중독센터(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대한 법적인 근거를 개정법에서는 만들고 있지 못하다. 19대 국회에서 중독법이 제정될 움직임이 있었으나 무산되었었다. 이제 20대 국회에서 중독법을 기대해야 할지 아니면 개정법의 하위법령에서 다뤄져야 할지 50개 기관은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 

 

공휴일 제외한 3일은 비인권적

 

개정 정신보건법에서 정신질환자의 입원에 대한 여러 개정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응급입원이 기존 72시간에서 3일로 바뀐 점이다. 상당히 의외였던 변화였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 3일은 공휴일을 제외한 기간이라고 한다. 72시간은 평일로는 3일이지만 공휴일을 제외한 3일이라는 시간은 상당히 긴 기간이 될 수 있다. 토요일, 일요일을 포함한 응급입원은 대부분 5일이상의 입원이 될 것이며 연휴가 길어지면 응급입원으로 일주일 이상 입원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행정적인 조치, 응급입원 후 동의입원, 행정입원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3일의 기간이 짧다는 지적이 있는 것인데 이는 입원이 된 사람의 입장에서 고려된 것이 아니라 입원을 시킨 사람들의 입장이 반영된 조치이기 때문이다. 인권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점 역시 하위법령 개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이다. 

 

개정안 하위법령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이제 올 10월말이면 정신건강복지법의 하위법령도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전면개정된 이 법은 향후 수 년 동안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이웃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법은 개정되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춥기만 하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최근의 불거지고 있는 의료급여와 의료보험환자의 차별적 의료서비스 실태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국민정신건강종합대책에 의해 예상되는 한국판 탈원화(deinstitutionalization) 2)는  우리나라의 세계 최고수준의 입원병상 수를 줄여줄 것은 분명하지만 갈 곳 없는 정신질환자를 양산해 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정신질환자가 안전하게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로써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 여전히 열악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수도권 일부지역에만 편중되어 있는 사회복귀시설(정신재활시설)이 대안노릇을 해야 한다.  

 

정부는 일반국민들의 정신건강부터 정신장애인의 재활까지 법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을 균형 있게 풀어가길 바란다. 개정법이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우리나라는 ‘살아볼만한 나라’라고 생각되는 향후 10년이 되길 개정법에 기대해 본다.

 

1) Promotin mental health(2005)/WHO/Helen Herrman Shekhar Saxena  Rob Moodie
2) 6개월 이상 장기입원환자에 대한 의료수가상 불이익을 줌으로써 정신질환자의 퇴원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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