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12-01   791

[기획4] 좀 놀아본 당신에게 난민아동의 권리를 말하다

좀 놀아본 당신에게, 난민아동의 권리를 말하다

유대규 |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사업부

단순하고 쉬운 진실

동물들도 어릴 때는 놀기만 한다. 심지어 축산업을 위해 길러지는 소, 돼지, 양 등의 경우에도 어린 가축은 그저 놀게 둔다.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동물이든 인간이든 어릴 때는 노는 게 먹는 것만큼이나 본능이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 7,337명을 대상으로 ‘한국 아동의 삶의 질’을 조사했다.1) 아이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은 부모와 같이 놀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또 연령이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낮아졌는데, 이는 학습 스트레스는 증가하는 반면 놀이시간은 감소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보다 경제수준은 낮지만 놀 시간이 더 많은 나라의 아이들이 한국의 아이들보다 대체로 행복했다.

난민아동의 권리를 얘기해야 하는데 자꾸 딴소리다. 어쨌든 단순하고 쉬운 진실. 아이들은 잘 놀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것. 아이들에게 있어 행복 추구의 권리는 놀 권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행복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1

먼 나라에서 제 발로 찾아 온 일면식도 없는 아이가 잘 놀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행복추구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고, 헌법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니 난민아동이 행복감을 느끼게 할 의무가 내게 없다’고 생각하던 나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사실 아주 상관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상 무관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가입해 있는 유엔총회에서 1989년 11월 20일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r Right of the Child)’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협약은 총 54개의 조항으로 돼 있다. 몇몇 조항만 열거해도 내 원고에 주어진 분량을 채우고도 넘칠 듯 하니 얼른 나열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한 개만 적겠다. 첫 머리에 해당하는, 제2조 1항의 내용이다.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 내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법정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인종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장애,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

이후의 조항들에 의하면 모든 아동에게 보장해야 할 권리는 크게 네 가지다. 생존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발달할 권리, 참여할 권리다. 각각의 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생존, 보호, 발달, 참여라는 단어에서 당신이 처음 떠올린 그 이미지가 맞다. 이제 아무개 아동이 노는 모습을 상상해 달라. 골목 어귀의 작은 공터에 등이 좁은 한 아이가 쪼그려 앉아있다. 손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와 나뭇가지가 들려있다. 나뭇가지로 흙을 파고 그 속에 돌멩이를 묻었다 파냈다 한다. 다다다다 뛰는 발소리가 들리고 쪼그린 등을 툭 치는 다른 작은 손이 나타난다. 친구의 손에는 흰 탁구공이 들려있다. 둘은 이제 기다란 나뭇가지로 탁구공을 밀며 이리저리 공터 위를 누빈다. 아빠 신발을 신고 나와 자꾸만 절뚝대던 친구는 결국 신을 벗어던지고 맨 발로 뛰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금세 이마에 달라붙고 정수리에 김이 피어오른다. 뺨이 붉어진 아이는 잠바를 벗고 양팔을 걷어 올린다. 둥근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두 아이의 웃음소리는 커져간다. 붉게 물드는 하늘에 울린다.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보장된 권리는 무엇인가?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네 권리 중 어디에 해당하겠는가? 골목길과 노을 진 하늘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좀 놀아 본 어린 당신을 오랜만에 기억해 보시라. 노는 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어떻게들 놀고 있는지

논리 비약이 있긴 해도, 대한민국 영토 내에 발 붙이고 있는 아동이라면 그게 누구든 잘 놀게 할 일말의 의무가 대한민국 국민인 당신에게 있다. 이제 난민아동이 어떻게 놀고 사는지 본 대로 말하겠다.

골목길에서

외국인이 많이 사는 조용한 동네였다. 어둑해진 골목 초입에 어린 아이 세 명이 슬리퍼를 신고 한 쪽 다리로 깽깽이 뛰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 중 가장 마르고 키 큰 아이가 본인을 에이미라고 소개했다. 뭐하고 있느냐 물으니 동생들과 땅따먹기를 하는 중이라 했다. 저녁은 먹었느냐 물으니 일하러 간 엄마가 10시에 돌아와 그 때 먹는다고 했다. 배고프지 않으냐 물으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사탕을 꺼내 건네며 이거 드실래요 했다.

하교 후 아빠와 폐차장에서

아이 여섯을 데리고 한국에 피난 온 부부를 만나러 갔다. 토요일 오후였다. 엄마와 다섯 아이가 집에 있고, 아빠와 큰아들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했다. 잠시 후 옷에 검댕을 잔뜩 묻힌 큰아들이 웃으며 들어왔다. 초등학교 5학년인데 몸집이 나보다 크고 아기처럼 웃는 아이였다. 힘들지 않으냐 물으니 아버지가 허리디스크라 제가 도와야 돈 벌 수 있어요 했다. 이 말을 하는데 또 헤실헤실 웃는다. 손을 잡아보니 작고 통통했다. 요즘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 물으니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싶다 했다.

엄마와 출입국사무소에서

엄마는 생후 8개월의 제임스와 출입국사무소에 가는 길이라 했다. 체류연장심사를 위해 3개월에 한 번씩 간다고 했다. 나는 엄마와 제임스를 따라갔다. 은행처럼 길게 창구가 늘어서 있었다. 사람이 많은데도 신기하게 고요했고 형광등이 무척 밝았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제임스가 칭얼거렸다. 엄마는 우유를 물리고 제임스와 눈을 한 번 맞추고는 다시 창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엄마 차례가 되고, 잠시 내 품으로 옮겨 온 제임스는 불편한지 얼굴을 찡그렸다. 엄마는 10분도 채 안 돼 돌아와 일이 잘 안됐다고 했고,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를 발견한 제임스가 팔다리를 버둥대며 활짝 웃었다.

아파도 집에서

아이는 날 때부터 기형이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는 줄 모르고 엄마는 혼자 자기나라를 탈출했다. 아기를 낳던 날도 곧바로 돌아와 미군부대 옆에서 머리 땋는 일을 계속했지만 아기 수술비는커녕 분유 값도 모자랐다. 보험적용이 되는 수술이지만 보험이 없는 이 집에는 20배가 넘는 금액이 청구되었다. 난민신청서를 접수하고 1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 심사 중이라 했다. 그 동안에는 돈을 아무리 많이 낸다 해도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의사는 1년 내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집에 초대해 줬으니 선물을 주고 싶다고, 무엇이 받고 싶은지 물었더니 미역을 사달라고 했다. 옆집에서 미역국 끓이는 법을 알려줬는데, 맛있어서 그것만 먹는다고 했다.

마음만 어린이집에서

화창한 봄날이었다. 아이는 아까부터 창틀에 몸을 기대고 길가를 내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느냐고 묻자 어린이집 차를 기다린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가느냐고 묻자 이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왜 누구랑 싸웠느냐고 묻자 아이는 잠시 주저하다 말했다. 그건 아니고,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저녁마다 동생들과 계란을 먹을 수 있거든요(어린이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난민아동은 보육비 지원이 없어 월평균 35만원의 원비를 내야만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다. 아마 어린이집에 내는 원비를 아껴 식비를 늘린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수학 과목과 함께, 미용사를 꿈꾸며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닌다는 아이는 쏟아질 듯 눈이 크고 조용했다. 2년을 기다린 끝에 최근 난민신청이 불허 처분된 집이었다. 아이는 차와 달게 절인 대추를 내와 내 앞에 놓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나를 올려다봤다. 금식 기간이라 12시간 넘게 굶었을 터였다. 요즘 학교 다니는 게 어떠냐고 묻자 그럭저럭 괜찮은데 수학이 어렵다고 했다. 장래희망이 있느냐고 묻자 미용사가 되고 싶단다. 뭘 만지고 꾸미는 게 좋아 짝꿍과 연습하고 있다는 얘기를 또렷한 한국어로 말하면서 내내 무표정이던 아이의 입고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머리를 쓰다듬고 꼭 껴안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있는데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대추가 맛없어요? 왜 한 개도 안 먹어요?

그 아이의 행복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2

“약한 사람은 도와야지, 그게 도리니까.” 라는 말은 NGO에서 일하는 나에게조차 별 힘이 없다. 볕을 잘 받은 잎은 윤이 나고 초록빛을 띤다, 잘 논 아이들은 새 시대의 양분이 된다, 잘 키운 난민아동은 우리 후손에게 좋은 글로벌 이웃이 돼 줄 것이다, 같은 말은 너무 뻔하고 와 닿지 않는다. 뭐든 지금 여기, 당장 나한테 득이 되어야 하고 싶어진다.

난민아동이 잘 노는 게 나한테 무슨 득이 될까?

신호등 없는 왕복 4차선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달려오던 차가 먼저 정지선에 멈춰 섰다.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고 시무룩해져 문을 나서려는데 반대편에서 막 들어오려던 사람이 문을 잡고 기다린다.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눈을 맞추며 방긋 거린다. 호의. 아무 뜻도 없는, 행위자에게는 기억날 거리도 못되는 단순한 호의다. 그런데 아침부터 이런 일을 당한 당신은 그 날을 어떻게 느끼기 시작할까?

한 편 제 의사와 상관없이 오해받거나 강제당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보면 내 일도 아닌데 기분이 별로다. 몸집 큰 사람 둘이서 몸집이 작은 사람 한 명을 때리는 장면을 보면 앞뒤 사정은 몰라도 왠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영화에서 친구를 도우려던 아이가 친구 물건을 훔친 것으로 오해받아 선생님께 혼나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짐 한가득 들고 휘청거리며 기차역 계단을 내려가는 할머니를 보면 불안하고 조급해진다. 바닷가 백사장에 엎드린 세 살 쿠르디의 젖은 몸을 보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

안 그런가?

애석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타인에게 무관심할 재능이 없다. 나아가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아무 상관없는 기사를 보며 열분을 토한다. 한숨을 쉰다. 그러다 타인의 작은 호의에도 쉽게 감탄한다. 모르는 아기나 강아지를 보면서 저항할 겨를도 없이 귀여움을 느낀다. 아직 이 세상은 밝은 곳이어요,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주변에 슬픈 타인을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안녕을 위해. 그게 나의 안녕감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다시, 난민아동이 잘 노는 게 나한테 무슨 득이 될까? 평범한 인간인 내 경우에는 그야 당연히, 기분 좋기 위해서다. 피부색도 눈동자 색도 생김새도 다른 그 조그만 아이가 웃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된다. 쉽게 나의 죄를 용서한다. 한 아이의 삶에서 중요한 어느 한 순간에 내가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해보라. 건널목에 선 한 아이일 수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진 한 아이일 수도, 지하철 내 앞에 선 목발 짚은 한 아이일 수도 있다. 나는 안녕해진다.

부모의 선택으로 이곳에 왔을 것이다.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도중에 기차를 타거나, 또는 많이 걸었을 것이다. 아이는 놀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와중에 돌로 공기놀이를 하거나 나뭇가지로 칼싸움을 했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심각한 표정의 부모님 눈치를 살피느라 노는데 온 마음을 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부색도 생김새도 다른 무표정한 어른들의 건조한 시선을 아이는 수없이 피했을 것이다. 색도 냄새도 다른 환경에서, 먹는 것 만큼이나 노는 게 본능인 몇몇 시간에, 아이는 온 권리를 침해당했다.

난민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팔랑대는 나뭇잎 하나에도 숨넘어가게 웃는 한 아이를 지금보다 조금 더 잘 놀게 하는 일이, 더 무거운 일도 척척 해내는 당신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1) 세이브더칠드런(2015). 지표를 통해 본 한국 아동의 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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