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7 2017-12-01   4787

[동향1] 치매 정책의 방향과 사회복지학의 과제

치매정책의 방향과 사회복지학의 과제

이현주 |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우리사회는 기존 예상보다 1년 빠른 2017년 8월, 고령사회가 되었고, 현재 노인인구와 동일한 규모인 725만 명의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3년 후인 2020년에 노인인구로 진입한다. 유례없는 인구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부는 2017년 9월 18일 ‘치매국가책임제’를 공표했다. 우리사회는 그 어떤 사회문제에 비해 치매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는 여전히 개인과 가족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간병실직, 간병살인, 동반자살 등 치매로 인해 가족들이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가정이 붕괴되며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뉴스기사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하면서 치매의 고통을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치매에 대한 국가 정책이 한층 더 강화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치매 정책의 방향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 전에,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치매라는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복지학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다.

치매정책의 원칙과 치매국가책임제

OECD 국가들의 치매 정책이 갖는 공통의 원칙은 시설화(institutionalization)를 지연시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돌봄제공자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보편적이고 바람직한 치매 정책의 원칙이다(Moise et al., 2004). 최근에 OECD(2015)가 제시한 치매정책의 기본 방향은 치매를 가진 사람과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 치매는 진행되는 질병이므로 치매정책은 각 진행단계별 욕구에 맞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를 돌봄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조망해보면, 주요 국가들의 돌봄 정책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예방 중심의 지역사회 보호와 재가서비스 우선의 원칙이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법도 그 목적(제1조)은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과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이고, 기본원칙(제3조)으로 노인 등이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정에서 장기요양을 받는 재가급여를 우선적으로 제공하여야 하며, 국가정책방향(제5조)은 대상자의 자립을 지원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원칙은 치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람직한 치매정책의 원칙은 첫째, 시설화 지연을 위한 지역사회서비스 우선의 원칙, 둘째, 치매 진행단계별 욕구에 맞는 질 높은 서비스 제공, 셋째, 예방적 접근 강화, 넷째, 치매를 가진 사람의 삶의 질 향상이라 할 수 있다.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으로 치매관리 인프라가 대대적으로 확충되고, 경제적 지원이 대폭 강화되며, 경증 치매노인도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된다. 획기적인 지원정책을 담은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앞둔 지금,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치매국가책임제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 정책인지, 왜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왜 부양부담을 낮춰야 하는지,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치매정책의 원칙이 구현될 수 있는 기제를 갖추고 있는지, 정책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치매노인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좋은 시설에서 생활하면 가족의 부담은 낮아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정책이 추구하는 바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치매정책의 원칙 가운데 시설화를 지연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요구되는지, 그리고 이 시점에서 사회복지학이 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보자.

치매정책의 방향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으로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한 경증의 치매노인도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체계로 진입하게 된다. 치매돌봄에 대한 가족과 지역사회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지원이 대폭 확대되면서 경증의 치매노인까지 시설로 보내지는 시설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높다(이만우, 2017).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전달체계는 치매관리법에 의한 치매정책 수행기관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한 장기요양서비스 기관들로 구분된다(그림 1-1). 이원화된 두 제도를 잇는 실질적 서비스나 정책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제도 간 연계는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서비스 분절은 장기요양서비스 체계 내에서도 나타난다. 의료와 돌봄서비스 공급기관 모두 민간이 대다수이고 경쟁에 의한 시장메커니즘 하에 놓여있기 때문에 대상자의 욕구에 따른 기관 간 서비스 흐름은 제도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석재은, 2015).

무엇보다 사례관리가 부재하기 때문에, 서비스 선택과 이동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된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치매노인과 가족에게 종합병원에서 데이케어센터까지 모든 서비스 제공기관이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으며, 진행단계에 따라 적합한 서비스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는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맞춤형 사례관리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그림 1-2). 그런데 만약 연계모델에 입각하여 서비스 연결까지만 담당한다면 탈시설화라는 사례관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초기진입 시점에서 적합한 기관으로 연결을 하더라도, 민간에 의한 경쟁체제 하에서 또 다시 서비스 흐름은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입원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그림 1-3>과 같이 치매의 초기진입이 한 곳으로 이루어지고 지역사회 네트워크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지역사회 허브기관이 있어야 한다. 다학제적 팀에 의한 초기평가, 개별화된 돌봄계획수립(individual care plan) 및 사례관리가 수행되어야 한다. 즉 연계를 넘어, 서비스 조정(coordination)을 통해 치매진행단계에 따른 최적의 서비스가 막힘없이 제공되어야 지역사회 생활은 연장될 수 있다. 치매노인이 지역사회, 시설, 병원 등을 욕구에 따라 이동할 때, 대상자의 상황에 따라 사례관리 내용과 제공 강도는 달라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도 필요하다. 치매의 경우 등급이 낮다고 해서 서비스 욕구도 낮은 것이 아니다. 등급과 돌봄 강도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초기 치매일 때 오히려 적극적인 인지치료와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경증의 치매여도 행동심리증상이 심하면 돌봄 강도는 높아진다. 가족이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사례관리 전문가가 치매 단계와 대상자 욕구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은 치매안심센터의 주요 역할이 될 것이다.

초기 치매에서 말기에 이르는 치매진행과정에 따른 다양한 지역사회 서비스, Aging in Place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의 주거시설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간 역할 재정립, 그리고 이 서비스들을 잇는 사례관리가 제대로 작동될 때 탈시설화는 가능하다.

사회복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17년 12월부터 전국적으로 252개의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되기 시작하며, 발표대로 진행된다면 약 5,000여명의 인력이 요구된다. 사회복지 교육체계에서 치매전문가를 어떻게 교육하고 훈련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사회복지사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기관 곳곳에 배치되어 실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미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치매노인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복지 교육체계에서 치매에 대한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정규교육과정에서 치매에 대해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인지치료 등 비약물적 치료를 실시해야 하고 시설에서는 숱하게 임종을 맞이한다. 사회복지학은 이들에게 무엇을 제공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단지 경험과 개인적인 노력에 의존하게 해서는 안된다.

사회복지학에서 치매 교육 및 훈련과 가장 밀접하게 이미 준비된 시스템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보건복지부 자격증이 부여되는 정신건강전문요원 수련과정이고, 또 하나는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의 의료사회복지사 수련과정이다. 정신병리가 인간의 인지, 정서,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교육, 개인상담과 집단치료 및 이에 대한 수퍼비젼 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치매 교육과 훈련이 용이하다. 그러나 현재는 노인정신건강에 대한 몇 시간의 이론교육만 이루어지고 있고, 치매에 대한 실제적인 교육과 훈련은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정신건강수련과정 및 의료사회복지사 수련과정에 치매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치매안심병원이나 치매안심센터는 치매교육과 훈련의 좋은 장이 될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지역사회 주요 돌봄서비스 제공자이다. 사회복지학 교육 시스템에서 치매와 돌봄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 더 논의되어야 한다.

사회복지학은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노인의 치매예방에 집중해야 한다. 치매를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지만, 위험요인을 관리함으로써 치매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치매의 수정 가능한 7대 위험요인은 학력, 흡연, 운동부족, 우울증, 중년의 비만, 고혈압, 당뇨이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병의 절반은 이러한 수정 가능한 위험요인에 기인한다(Barnes & Yaff, 2011).

생애초기의 교육 뿐 아니라 평생 동안의 교육 기회 강화, 금연과 신체적 활동 촉진, 우울증 및 중년기 고혈압, 비만, 당뇨 등의 증상 관리를 목표로 하는 공중보건 캠페인이 중요하다. 뇌에 알츠하이머병의 병리가 시작되는 시점이 임상적 증상이 탐지되기 수년에서 수십 년 전인 40대부터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중년기부터의 관리가 필요하다.

보다 보편적인 치매예방사업을 위해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치매국가책임제에서는 노인복지관에서 치매예방을 위해 인지활동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건강한 노인의 접근성이 높은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에서 인지자극이나 인지활동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인지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지저하 및 치매의 위험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여러 위험요인들을 동시에 관리하는 접근이다. 인지훈련과 신체활동 및 사회적 활동을 결합한 효과적 예방프로그램을 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치매를 가지고도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을 지원하고 주거환경개선을 지원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집에서 더 이상 생활할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시설이나 가정과 같은 소규모 요양시설들이 지역사회에서 이들을 뒷받침해주여야 한다. 이를 통해 치매노인의 AIP도 실현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급성기 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치료를 받은 후에는 다시 지역사회나 시설로 돌아오는 서비스의 흐름이 이어져야 한다. 제도적으로 서비스 흐름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례관리는 서비스 통합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적이고 유일한 서비스이다. 치매를 가지고도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존엄성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은 보다 나은 치매 정책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는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앞두고 있다. 좋은 의도의 정책이다. 하지만 아직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면 방향을 점검하고 내용을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치매 정책이 견지해야 할 주요 원칙들이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치매안심센터가 또 하나의 구멍가게가 되지 않아야 한다. 치매안심센터는 사례관리를 통해 시설화 지연이라는 치매정책의 주요한 원칙을 구현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회복지학이 기여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논의해야 한다. 교육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며, 관련 학회와 협회 간 협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사회복지학에서 치매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1) 이 글은 2017년 한국노인복지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기획주제로 발표된 “치매의 고통, 책임 있는 돌봄을 말하다”의 일부분을 수정한 것임. 


<참고문헌>

김상우·이채정(2014). 치매관리사업의 현황과 개선과제. 서울: 국회예산정책처.

석재은(2015).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 7년, 한국 장기요양정책 패러다임의 성찰과 전환. 한국사회보장학회 정기학술발표논문집. 보건복지부(2017). 치매국가책임제 보도자료. 

이만우(2017).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의 문제점 및 보완과제. 이슈와 논점, 1349호. 

Barnes, D. E. & Yaff, K. (2011). The projected effect of risk factor reduction on Alzheimer’s disease prevalence. Lancet Neurology, 10(9), 819-828. 

Moise, P., Schwarzinger, M., Um, M. Y., & the Dementia Experts’ Group. (2004). OECD Health Working Papers No. 13. Dementia Care in 9 OECD Countries: A Comparative Analysis. Paris, OECD, Paris.

OECD (2015). Addressing Dementia: The OECD Response. OECD Health Policy Studies, OECD,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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