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8 2018-05-01   1300

[기획1] 사회 등진 자본주의, 사회재생산 접은 친밀성

사회 등진 자본주의, 사회재생산 접은 친밀성1) 

장경섭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른바 초저출산 추세에 관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위기 담론을 거의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당장 정책대상인 젊은 세대들은 어떤 심정적 반응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관련 정책수단들에 대해 온라인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냉소적 반응들은 웬만해서 국가에 의해 시민들의 집합적 의견으로서 공식화되지 않지만, 요지부동인 저출산율은 국가의 위기의식에 대해 청년들은 적어도 애국주의적 혼인과 출산으로 답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낸다. 아마 비판적 여성주의자들에게는 최근 국가의 출산지원 정책으로 조선시대에 충․효․열(忠孝烈)의 모범적 실천을 보상했던 ‘정표(旌表)제’에 출산을 더해 이제 충․효․열․산(忠孝烈産)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사실, 정부의 기술관료들(technocrats), 인구․경제 관련 전문학자들, 그리고 언론매체들이 합작해서 투사시키는 미래 인구절벽 한국의 경제․사회․국가적 난국은 청년들로 하여금 집단적 공포감을 갖게 만들고, 이에 따른 위험회피(risk aversion) 심리가 현재의 저출산 추세를 더욱 심화시키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2)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위험을 운 좋게 모면할지, 예컨대 공적 연금기금이 바닥나기 전에 죽을 수 있을지 정도를 계산하며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그들 자녀의 혼인과 출산에 대해 부모로서 적극적 의견 개진이나 압력 행사를 하기가 급속히 어려워진 현실이 엄존하다. 

 

장기간의 초저출산에 따라 미래의 노동, 소비, 납세, 병역 자원이 심각한 부족 상태에 이를 가능성은 분명히 국가․사회적 차원의 우려거리이지만, 당장 목전의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다. 고학력 및 강한 노동의지를 가진 청년들이 구조적 취업난에 집단적으로 봉착해 있고, 급격하게 기대수명이 길어진 노인들의 대다수가 그동안 축적한 삶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쉽게 달라질 것으로 어느 누구도 전망하지 못한다. 특히 청년 취업난은 궁극적으로 혼인과 출산의 현실적 불가능성을 초래해 현재의 경제위기와 미래의 인구위기를 연결시키는 문제이다. 청년세대와 노년세대에서 동시에 공급되는 새로운 인적자원을 전혀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재의 경제․사회 체제가 과연 미래에는 근본적으로 거듭나서 지금과는 반대로 노동인구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이 전개될까. 

 

현재적 관점에서의 미래 걱정이 모순적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은 직종(occupation), 혹은 사회학적 개념으로서 계급(class) 유지의 문제이다. 기록이 존재하는 대부분의 역사 동안 한국인들은 농민, 특히 가족농으로서 존재해왔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인류사적 기록이 될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이제 전통적 성격의 농촌과 농민은 그야말로 소멸이 우려된다. 이 과정에서 급속히 증가한 도시 노동계급 인구는 지난 세기말 국가 외환위기를 거치며 가속화된 탈산업화 및 산업세계화(생산기반 해외 이전) 과정을 거치며 주류 경제체제로부터 갖가지 방식으로 축출되었고, 여기에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기치 하에 디지털 기술과 자동공정에 의한 인간노동 대체와 배제를 국가적으로 촉진시킬 기세이다. 현존하는 한국인들은 그렇다 치고, 미래에 태어날 한국인들이 농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면 다른 어떤 직업이나 산업을 통해 사회․경제적 역할 혹은 계급적 지위를 확립할 수 있을까. 현 정부가 야심차게 대대적 육성을 선언한 이른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가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사회․경제적 존재성을 보편적으로 확립시켜줄 수 있을까. 아니면 모두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이른바 보편적 “기본소득”(basic income)에 의거해 살아가는 신복지국가나 노동이 보편적 권리로 확립되어 모두가 공무원적 신분을 가질 수 있는 신사회주의 체제가 확립될 것인가. 

 

현재와 미래의 온갖 암울한 진단과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초저출산 및 이에 관한 일차적 원인으로서 혼인체제 교란, 즉 만혼, 비혼, 이혼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국제 학계의 일반적인 분석모형으로는 제대로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급진적인 것이다. 또한 한국 노인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익숙해진 국가적 “경제기적” 담론 속에서 당연시되다시피 한 농가 인구의 급감과 농촌공동체의 쇠락 역시 그 속도와 강도가 사회과학계의 일반적인 설명방식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인구 고용대란과 관련해서 (적정한) 일자리 부족 실태와는 별개로 생산노동자 지위에 관해 세대를 가로지르며 보편화된 이탈이나 거부 태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묘연하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체계적 설명을 위한 연구에서, 필자는 한국의 경제․사회적 기본질서를 가족자유주의(familial liberalism)로 개념․이론화하고, 이 기본질서가 국가 주도의 산업자본주의 체제 및 한국인들의 생활세계 원리와 전략에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분석하고, 이 관계를 바탕으로 후기개발자본주의(post-developmental capitalism)적 상황에서 인구, 가족, 계급에 걸친 급진적인 사회재생산 위기가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했다.3) 이처럼 보편화된 사회재생산 위기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수많은 자본주의 사회들이 공유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비상한 양태와 정도는 고유한 설명의 틀을 요구한다. 필자의 연구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어떤 경험적 사실들을 발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관련 자료들과 경험연구 결과들을 종합적으로 재해석하고 나아가 새로운 관점과 개념 등 인식론적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가족은 단순히 사생활(private life)을 영위하는 공간이나 관계가 아니라 (개발)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본적이고, 더러는 배타적이기까지 한 책임, 권리, 자유의 정치경제적 단위(political economic unit)이다.4) 경제적으로는 대다수 대기업들의 가족중심적 소유․경영 체제에서부터 농업의 가족경영과 도시 자영업자들의 가족노동체제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경제질서의 제도적 틀을 규정한다. 나아가 한국인들의 인생과 일상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관심사라 할 수 있는 교육, 주거(부동산), 나아가 취업과 혼인도 가족 차원의 기획, 결정, 지원이 당연시된다. 노약자, 장애인 등에 대한 이른바 돌봄 노동을 가족이 전담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심지어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도 가족이 밤․낮으로 곁에서 간호 보조를 하도록 요구받는다. 

 

이처럼 광범위한 가족의 역할은 흔히 사회적 자원이나 가치를 선취하거나 기본적 생존 조건을 확보․유지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으며, 전통 등에 기초한 문화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적응적으로 생성된 ‘상황적 구성물’(situational construct)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국가는 이러한 경제․사회적 가족중심성을 공식 체제이념으로 고양시키지는 않지만 수많은 정책들의 전제조건으로 가족의 다종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요구하거나 당연시한다. 그리고 대다수 시민들은 한편으로 이러한 국가의 입장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수용에 따른 곤란과 불만의 표출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가족에 정치경제적 단위로서의 성격이 보편화되어 있음으로써 한국인들의 가족관계와 가정생활은 국가경제 등에 대두되는 거시적 혼란이나 위기에 매우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반응한다. 한국인들은 전략적 생존을 위해 가족 구성․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정․재조정해 왔으며, 거시적 생존환경의 격변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는 한국인들의 가족 구성과 관계의 격변으로 즉각 이어져 왔다.5) 한국인들의 이러한 대응은 일차적으로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국가가 주도한 경제․사회적 변화에 긴밀히 조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애국적은 아닌지 몰라도 최소한 ‘종국(從國)적’이었다. 예컨대, 극도로 남성 중심적인 경제․사회 체제에 맞춰진 남아선호(선택) 출산이 상당 기간 출산 성비 왜곡을 야기했으며, 최근 이른바 “경제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분류되는 비혼, 별거, (“가족동반”) 자살이 급증한 것 등 한국인들의 가족 관련 행태의 급변과 이에 수반된 인구구조의 급격한 교란 이면에는 국가의 정치경제적 책임성이 노정되어 있다. (물론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에 시행된 가족계획 사업은 아예 국가가 직접적으로 시민들의 애국적 사회행위를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민들의 또다른 애국을 요구하는 국가의 관행적인 저출산 담론과 정책은 모순 그 자체이다.  

 

21세기 한국은 거시적 생존환경의 격변을 넘어 소멸로 치닫고 있지나 않은지 하는 불안이 사회 전반을 엄습하고 있다. 모든 것을 국가경제의 급속한 개발에 걸고 국가가 사회를 동원․통제했던 수십 년의 시대가 그 물적 결과물인 경제력의 대부분을 소수 대기업집단(재벌)이 독점하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또 이른바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재벌과 일부 정치세력이 유착해 추진한 부주의하고 성급한 해외금융 의존적 경제팽창 정책이 초래한 국가 외환위기가 대규모 정책적 실업사태를 대가로 봉합되었고, 이후 급진적 자본시장 자유화 및 산업기반 세계화를 통해 지분구조상 이제 절반 내외가 외국(인)소유이며 국내 생산거점의 비중이 급격히 낮아진 수출 대기업들이 여전히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경제질서를 국가의 비호 아래 확대 재생산시키고 있다.6) 급기야는 과학적 기초조차 모호한 모호한 “4차 산업혁명”의 구호 아래 뭉친 정부와 기업이 디지털 기술과 자동공정에 의한 인간 노동의 무차별적 대체나 폐기를 벼르고 있다. 자본주의의 국적을 따지는 것이 원천적으로 무의미한 일이지만, 21세기 한국 자본주의는 더 이상 한국사회를 결정적 존립 근거로 삼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한국인의 생명과 노동력 그리고 직업지위의 사회재생산에 대해 그다지 절박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문제는 한국 자본주의가 국가 주도로 형성되고 성장해 왔으며, 최근 질적 변화의 모든 측면에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 노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 하에서 자본주의의 사회 이탈 이면에는 국가의 사회적 책임성 폐기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와 주류 산업자본이 등진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 및 직업지위 그리고 후세의 생명을 유지․생산하는 사회재생산 활동에 대해 급속히 열의를 잃어가고 있다. (중국 변수로 위기감이 팽배한 홍콩과 대만을 제외하면)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 폭발적으로 확산된 만혼․비혼․이혼 추세, (가이아나와 북한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수준인 자살률 등은 한국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느 사회보다 생명과 노동력의 사회재생산에 소극적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청년인구 이탈에 따른 농가 재생산체계의 집단적 붕괴 및 도시 산업노동에 대한 이탈과 기피의 만연도 농촌과 도시의 보편적 생산노동력이 근본적 사회재생산 위기에 처했음을 말해준다. 물론 대다수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성교제를 하거나 결혼을 하고, 또 결혼을 하면 자녀를 출산한다. 그러나 갈수록 이성교제는 결혼을 위한 예비단계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있으며, 결혼을 해도 자녀 출산에 소극적이거나 최소화를 지향하며, 가족 유지를 절대 규범으로 여겨 이혼을 포기하지는 않으며, 자녀 사랑을 특정한 직업적 열망이나 압박으로 표출하는 것에 조심한다. 가족이 체제질서의 기본 단위로 작용해 온 사회에서 그 체제의 교란과 분리에 따른 갖가지 사회․경제적 위험이 가족관계를 통해 개인들에게 전달되거나 증폭되는 엄중한 현실에 처한 한국인들이 ‘위험관리’(risk management)의 차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성”(intimacy)과 인적 자원의 사회재생산을 분리시켜 나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금의 인구추세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한국 자본주의가 한국인들로 하여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제반 사회재생산 활동에 나서도록 근본적으로 재편될 수 있을까. 국가가 그런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또 실행능력이 이 있을까. 가족자유주의가 지속되어야 할까, 혹은 지속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혼인, 출산, 노동 등의 활동이 대다수 인간(시민)의 삶을 본원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행복(감)이 실현된다는 점이다. 국가는 인간으로서의 시민이 혼인, 출산, 노동 등을 그 자체로서 행복하고 보람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위정자는 출산율이 회복되고 인구감소 추세가 완화되고 나아가 거시 경제․사회적 파국이 예방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를 구하기 전에, 행복하고 안정된 혼인, 출산, 노동 자체를 국가의 목적으로서 시민들 앞에서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는 헌법적 가치까지 구성하는 것이며, 현재 개정 논의 중인 (신)헌법에 반영될 분명한 필요도 있다. 

 


1) 이 글은 아산사회복지재단 지원으로 수행된 연구과제 보고서인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의 일부분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2) 장경섭. 2011. “‘위험회피’ 시대의 사회재생산: 가족출산에서 여성출산으로?” 가족과 문화 23(3): 1-24. 
3) 장경섭. 2018.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아산사회복지재단 연구보고서). 서울: 집문당 (근간).
4) Chang, Kyung-Sup. 2010. South Korea under Compressed Modernity: Familial Political Economy in Transition. London/New York: Routledge. 
5) Chang, Kyung-Sup. 2015. “From Developmental to Post-Developmental Demographic Changes: A Perspectival Recount on South Korea.” Korean Journal of Sociology 49(6):21-45.
6) Chang, Kyung-Sup. 2018. Developmental Liberalism in South Korea: Developmental Social Governance and Its Neoliberal Degeneration. Basingstoke: Palgrave Macmillan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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