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9-01   761

[기획3] 공공의료 강화 없는 뉴딜은 허상

공공의료 강화 없는 뉴딜은 허상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뉴딜에 공공의료는 언급조차 없어

8월 15일 이후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300명 이상 발생하고 있고, 확진 이후에도 치료 받을 수 있는 병상이 없어 일주일씩 집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이런 상태는 사실 하루 100명 이하로 확진자가 발생했던 5,6,7월에도 환자 병상이 부족해 잠시나마 대전, 광주 등 지자체별로 포화상태인 곳이 보고된 것을 보면 이미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지난 4개월간 정부는 전혀 컨트롤타워, 공공병상, 인력 확충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았다. ‘2차 유행사태’는 미국 등 전지구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매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고, 이런 클러스터 발생이 현실이 될 때를 대비하는 건 상식적 문제였다.

 

지난 2월 중순 대구, 경북지역에서 대규모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77%가량의 환자를 공공병상에서 치료했고, 경기도의 경우도 현재까지 확진자의 95%를 공공병원에서 치료했다. 거기다 대구경북에서 사망했던 환자의 70%는 인공호흡기조차 착용하지 못했다. 사실 대구경북의 2,3월 상황이 서구의 의료붕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코로나19 환자 진료로 인한 진료 공백으로 대구경북에서 1분기 초과 사망자가 900여 명 이상 나왔다는 역학적 보고가 있었고, 여타 질환 진료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잔여병상확보와 의료인력확대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즉 공공병상 확대는 코로나19 시기에 1순위 사회개혁정책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황당하게 6월에 발표된 정부의 ‘한국판 뉴딜종합계획’ 에서 이 모든 것이 다 빠져있다. ‘뉴딜’이라 함은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도약을 위한 대규모 사회적 투자 등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코로나19 시대에 화두 중 하나는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과 대응 능력 강화로, 그 중심은 공공의료 강화와 공공의료컨트롤타워의 설립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한국형 뉴딜종합계획’에는 단 한 줄도 이런 언급조차 없다.

 

또한 ‘뉴딜’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더더구나 인력 중심의 공공병원확충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답안이다.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의 보건의료 일자리는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높은 노동강도의 병원 노동(간호 노동 등) 등을 강요해왔다. 이는 환자 안전위협으로 연결되어 국민건강의 위해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력확충과 환자 안전강화를 위해서 당장 요구되는 것이 공공병원 확충이다. 정부가 현재 OECD 국가 평균에 못 미치는 의사인력확충을 위해 의대정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OECD 국가 꼴찌(한국은 인구 1000명당 1.3병상, 일본 3.6병상, 독일 3.3병상, 영국 2.5병상)인 공공병상은 외면하고 있다. 공공병상을 늘려야 의사 인력도 공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뉴딜에 우선 OECD 평균 수준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일본이나 민간 의료의 천국인 미국의 25% 수준으로 공공병상 규모를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최소한 20%까지는 공공병상 비율을 늘려야 하며, 지역 사정 등 구체적 상황에 맞춰 민간병원을 매입, 수용하거나, 기존 공공병원의 병상 증설, 그리고 병상이 없는 지역의 경우 신설하는 등의 복합적 방법을 통해 당장 공공병상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필두로 하여 치료 대응을 할 수 있는 컨트롤센터가 필요하며, 방역 대응을 위해 ‘질병관리청’이 있듯이 ‘공공보건의료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립중앙의료원의 기능을 대폭 확충하고, 교육, 응급, 외상 등의 인프라를 갖추도록 하는 로드맵에 반드시 제시되어야 했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계획은 후순위로 밀려

 

<그림3-1> 정부 2020.7.14. 발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17페이지

 BP1bWOO1jiCANbR4e9Zz4m8sythO5G8kwk4EF7we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지침을 당장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아플 때 쉬려면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불이익이 없어야 된다. 영세자영업자는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데, 쉬는 게 쉽지 않다. 결국 소득결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프면 며칠간은 쉬면서 수동감시를 해야 하는 코로나19 방역방침을 고려하면, 아파도 쉴 수 있는 소득보장제도가 즉각 필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내용이 아닐까?

 

그런데, 이번 발표내용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소득 보전을 위한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선 2021년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2022년 저소득층 대상 시범사업으로 한정했다. 코로나19가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마저 저소득층에 대해 시혜적 제도로만 생색내려는 건가?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유급병가'(임금이 나오는 병가)는 언급도 없다. 저소득층에 대한 시범사업 계획 자체가 이를 잔여적 복지, 선별복지로 만들어 ‘아프면 소득걱정없이 쉬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사회복지가치를 축소시키려는 시도다.

 

사실 한국은 OECD 국가에서 상병수당이 없는 4개국(미국, 한국, 스위스, 이스라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ILO(국제노동기구)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10년 전부터 상병수당의 즉각 도입을 권고한 바 있을 정도다. 법정 유급병가가 없는 국가도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 심지어 미국도 주 정부별로 법정 유급병가 법제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며(현재 13개 주와 콜롬비아DC, 20개 도시와 3개 카운티에서 법제화), 기존 국가들도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기존 상병급여, 유급병가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최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통해 493개 민간기업(상시 노동자 10명 이상)의 취업규칙(2018년 기준)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 참담한 수준이다.

 

지금 급한 대로 모든 노동자와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영세 자영업자에게 7일 내외의 단기 ‘유급병가’를 도입해야 한다. 재원은 사업주가 100% 부담하되, 지불능력이 없는 경우는 ‘산재보험’ 등의 기금의 재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진단서 없이 유급병가 이용이 가능하게 열어둬, 병원 방문 시 코로나19 전파와 병원의 폐쇄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병수당’도 돈이 많이 든다고 경제부처에서 난색을 표현한다고 하나, 현재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현재 16조 원 이상의 누적흑자), 기간의 국고지원 미납금 등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에서 집행하는 데는 재정적 어려움이 전혀 없다. 사실 정부가 그간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을 매년 1조 원~2조 원 누락해왔다는 것이 더 문제다.

 

재벌기업과 대형병원 퍼주는 비대면 의료 정책이 ‘한국형 뉴딜’이 될 수 없음

 

<그림3-2> 정부 2020.7.14. 발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12페이지

lVyLCCx6YfWz-Dyv-Zr0TJCN07dAPyuf_cKMlC7A

 

<그림3-3> 정부 2020.7.14. 발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22페이지

 M_wBW4dkJL6-XqVal6HtTVFSRor8ZfiJNBe5-9wa

 

그런데 상병수당이나 공공의료확충은 언급이 없거나 뒷전인데, 정부 발표의 한국판 뉴딜에는 입증도 되지 않은 ‘디지털 의료’ 망상은 포함되어 있다. 보건의료 부분에서 그나마 발표된 스마트병원, 원격의료, AI 진단, 디지털 돌봄은 하나 같이 효과가 입증된 바 없는 연구과제나 혁신과제들이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인력 감축과 관련 있는 효율화 과제다.

 

스마트병원은 KT, 현대로보틱스, IBM, 마이크로소프트, NHN 같은 대기업들이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병원에 투자해 벌이는 일종의 ‘병원 자동화’ 과정의 일부다. 문제는 이런 디지털 감시로 입원환자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간호 인력이 환자 곁을 돌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위해 더 중요한 점인데, 이를 자동화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협진이 가능한 기술 장비를 설치하기 전에 주요 거점병원에 특정 전문의가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게 우선순위에 필요하다. 인력충원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디지털 감시로 해결하겠다는 대책은 ‘뉴딜’이 아니라 효율화일 뿐이다.

 

설사 ‘병원 자동화’를 하더라도 효과적인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한 평가 이후에 환자들의 편익과 의료의 질부분에 대한 과학적 근거하에서 도입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이번에 뉴딜에 포함시킨 내용은 아직 연구과제로 효과가 입증된 바 없다. 다름 아닌 R&D 과제로 ‘뉴딜’을 한다는 발상이다.

 

취약계층에게 IoT 센서나 말벗용 AI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를 나눠준다는 사업도 일차보건의료체계 확립과 방문 진료 활성화, 돌봄서비스 제공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충분한 사회서비스로 국민들에게 돌봄을 제공하길 외면한 건 물론이고, 기존 돌봄 노동자의 처우와 역량개선이 아닌 구조조정을 상정한 경우다. 어르신과 만성질환자들에게 효과도 불분명한 비대면 서비스 시범사업을 제공하고 이에 국민 세금을 붓는 것은 기업 돈벌이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AI진단도 주요 추진사업으로 발표되었는데, 간질환, 폐암, 당뇨 등 12개 질환을 AI로 정밀진단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현실 가능성이 낮고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된 바 없다. 정부가 이번에 밝힌 ‘닥터앤서2.0’ 지원 계획(1.0에 2018년~2020년 364억 원을 이미 지원한 바 있음)은 세브란스, 서울아산, 한양대 같은 대형병원과 삼성화재-강북삼성병원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기업들의 건강정보 빅데이터 연구사업일 뿐이다. 기존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 없이 지원을 뉴딜계획에 명시하는 것도 재고가 필요하다.

 

보건의료 공공성과 사회서비스 확대가 ‘뉴딜’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취약계층,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일차보건의료체계 도입과 환자등록제 및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말벗 기계가 아니라 방문 진료의 현실화를 위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뉴딜’은 바이오헬스 산업계의 이익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사회서비스 인력이 부족하여, 주요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여력이 크다. 이를 위해서 사회서비스 인력의 안정적인 고용, 공공 책임성을 위한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즉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병원 자동화’ ‘병원 디지털화’ 같은 기술발전과 기업배불리기가 아니다. 유급병가, 상병수당의 즉각 도입, 공공병원 확충, 보건의료 인력 확대이며, 이를 통해 취약계층, 만성질환자,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에게도 웨어러블장비가 아니라 사회서비스와 돌봄서비스를 더욱 많이 제공하는 체계일 것이다. 즉 보건의료 부문의 기술과 장비 중심의 ‘뉴딜’이 아니라 인력 중심의 ‘뉴딜’이 되어야 한다. 정부의 이번 ‘한국판 뉴딜’은 보건의료 부분에서만은 대국민 선전용 ‘뉴딜’의 가치조차도 없다.

 

정부는 숙련간호인력, 사회서비스 인력 등 고용이 크게 유발되는 영역은 방기하고, ‘한국판 뉴딜’ 발표 이후 나온 ‘의대 정원’ 확대 방안조차 공공의료 인력 확대가 아니라 민간병원자본(사립대 지역의사제)과 산업자본(산업체 의사 할당)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 정부 정책 방향의 전면재검토가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 확충과 공공보건의료강화가 없다면, 민간시장주도의 인력충원과 의료기관공급으로 집단이기주의와 자본의 편향성으로 보건의료체계의 퇴행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