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강제불임 시술

강제 불임시술 관주도 밝혀져

사회복지시설 내에서 자주 발생했던 성폭력과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등의 인권침해 사례가 최근에는 강제 불임시술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 8월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83년부터 98년까지 8개의 정신지체인 시설에서 75명(남자 48명, 여자 27명)에 대한 불임시술이 있었고 이 중 6개 시설에서는 66명(남자 40명, 여자 26명)이 강제 불임시술을 당했다고 한다. 더욱이 경악을 금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강제 불임시술이 가족계획이라는 미명하에 국가기관의 협조와 지원아래 이루어 졌고, 국제평화유지를 위해 동티모르에 군대를 파견하고 인권메달을 수상하는 등 인권국가임을 자임하고 있는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도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김홍신 의원은 "광주의 정신요양시설 은성수양원을 조사한 결과 당시 보건소 가족계획사업 담당자로부터 '목표량 때문에 시설을 찾아다니게 되었고 시술차 은성원에 갔을 때는 공식적으로 출장결재를 받아서 갔을 뿐만 아니라, 시술성과는 구청에 보고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폭로했다.

정신지체인의 강제불임 논란

지난달 한 일간지에는 모 대학 교수가 "사회에 유해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단종을 시행하는 일이 더 인간적이라 생각한다"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강제불임을 찬성하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 우리 사회 지식인의 천박한 인권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금이라도 정신지체 장애인의 불임수술을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한 모자보건법의 재개정을 통해 부활시켜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인간의 생식능력은 인간본성을 충족시키는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이를 강제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일 뿐만 아니라, 강한 자의 힘으로 약한 자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사회에 통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강제불임을 반대하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논란 속에서 지난달 15일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시민인권단체들은 강제불임의 재발방지와 사회복지시설 내 인권침해 근절을 위해 '사회복지시설 내 강제불임,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오혜경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는 "강제불임은 적자생존의 명분으로 우생학에 토대를 둔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규정하고 "불임시술 논란은 더 이상 논의의 주제조차 될 수 없는 반윤리적인 발상"이라고 규정했다.

오교수는 장애인시설의 시설장이나 장애아동 부모는 정신지체 자녀가 사회성 결함으로 인한 돌발적인 사태와 예상되는 불편을 예방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출산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불임을 유도하는 것임을 시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신지체인의 불임은 정신지체인들이 충분히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시행될 수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강제불임은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또 강제 불임시술의 발생원인이 정부의 안일한 사회복지정책, 정신지체인에 대한 무관심과 잘못된 인식, 관련법령 부재, 장애인시설과 운영자의 비전문성 등에 있는 만큼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불법과정에 개입한 관련 공무원이나 시설장, 그리고 의료인 등을 가려내 책임을 묻고, 장애인시설의 점진적인 탈시설화, 시설장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제어할 수 있는 인권위원회(가칭) 구성, 정신지체인을 비롯한 장애인의 자녀출산, 양육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시설 내의 전문가 배치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제 불임시술의 위헌성 지적

특히 이날 토론 가운데 주목을 끈 것은 강제 불임시술 과정이 관련법인 모자보건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형사처벌도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법률적인 접근이었다.

전현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자녀의 출산과 양육은 부모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로서 이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의 한 내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출산과 양육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로서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배타적인 개인적 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 및 양육에 대한 본인의 의사결정권을 무시하고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강제로 불임시술이 행해진다면 이는 위헌적 행위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형법상으로도 강제불임시술로 인한 생식기의 제거는 상해 또는 중상해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 행해진 장애인 불임시술은 의사가 확인하여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보고하는 절차 및 보건복지부장관의 명령절차를 밟도록 한 모자보건법상 최소한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법적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시행된 것이므로 위법행위라는 것이다.

다만 상해죄는 형사 시효가 5년, 중상해죄는 7년이고, 민사소송의 소멸시효는 10년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법적 책임을 묻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측면이 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전 변호사는 장애인에 대한 불임시술이 사회학적,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 경우 불임의 필요성에 대하여 누가 판단하고 책임을 질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불임시술이 꼭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인권적 침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정당한 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진행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실천적인 방법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가칭)불임시술심사위원회와 같은 중립적인 기구를 통해 불임시술의 필요성에 대한 의학적, 우생학적, 사회적, 윤리적인 심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당사자에게 불임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고 상담을 거친 후 자발적인 동의절차 마련 △국가적으로 공인되고 허가된 시술기관에서의 시술 △시술기관이 시술결과를 보건복지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는 국가 관리체계 수립 △불임시술 도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의료적인 사고에 대한 국가 배상제도 마련

국가 차원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대책 수립해야

이날 방청 나온 사회복지시설 운영자들은 한결같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책임질 수 없는 정신지체인의 강제 불임시술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다. 또한 정신지체인 자녀를 둔 부모 역시 사회적 무관심의 팽배와 정책부재 상황에서 모든 책임이 부모에게 전가되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사회적 차원의 대책수립을 요구했다.

우리는 이번 공청회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정신지체인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책임을 이끌어내기 위한 모색이 중요하고, 시설 내에서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강제불임에 대해서는 책임자 처벌과 국가차원의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모을 수 있었다.

아울러 자기방어 능력이 없고 독자적인 자기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중요하게 다루어 졌다. 특히 정신지체인의 경우 시설수용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설 내 인권상황을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살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정책수립에도 의견을 모았다. 물론 이는 국가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아래서 말이다. 그래야 진정한 인권국가에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조희도 / 서울장애인연맹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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