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6-10   1190

제왕절개 분만 –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자랑스럽지 않은 세계 1,2위의 기록이 또 하나 있다. 전체 분만의 40%에 육박하는 제왕절개 분만율이 그것이다. 1998년도 현재 제왕절개에 의한 분만은 전체분만 중 약 36.1%로서 이는 선진국 중 가장 높다는 미국의 22%. 유럽각국은 9-13%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제왕절개 분만율은 1970년대에는 10% 미만이었으나 이후 증가하기 시작하여 1985년에는 약 15%정도였다가 90년대를 거치면서 이렇게 증가하였다. 지난 20여년 사이에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제왕절개에 분만율은 세계적으로도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권장하는 국가의 제왕절개율 목표가 15%임을 본다면, 연간 10만 명 이상의 아이가 불필요한 제왕절개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 한해 지출하는 분만관련 보험 진료비 중 60%가 제왕절개 분만에 지출되고 있는데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800억 가까운 보험재정이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보험 진료비이외에 입원에 수반되는 본인지출 비용과 관련비용을 고려하면 매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제왕절개에 필요한 마취와 수술로 인하여 합병증 발생이 높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많은 제왕절개는 국민의 건강에도 위험을 주고 있다.

이처럼 제왕절개가 성행하게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현재의 의료보험 수가체계를 들 수 있다. 현재의 정상분만 행위 수가는 5만원수준으로서 의사의 노력에 비하여 너무 낮은 수준이며 정상분만과 제왕절개 분만의 입원진료비 차이가 약 2.7배이다. 외국과 비교하여 볼 때 정상분만의 수가 수준은 낮고 제왕절개와의 수가 격차는 2배 가까이 높다. 적정한 이윤을 보장받지 못하는 병원에서는 이윤 보전을 위하여 비의학적인 이유로 제왕절개 분만을 유도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동기만으로 제왕절개의 증가를 설명할 수 없다. 최근 분만에 관한 의료소송에서는 정상분만 후에 태아나 임산부의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 제왕절개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인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묻고 있다. 금년초에 사법부에서는 심장질환으로 제왕절개 수술이 위험하기 때문에 자연분만을 수차례 유도하다가 제왕절개를 늦게 시행하여 태아가 사망한 경우에 병원측에 수천만원의 배상 판결을 명하였다. 이러한 사법부의 판단은 의사들로 하여금 방어적 진료로서 제왕절개를 산모에게 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의료소송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의 위험에 부딪치고 있는 의료인들이 힘들여 정상분만을 수행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제왕절개는 의사만 권유하는 것은 아니고 산모들 스스로 선호하는 풍조도 늘어가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제왕절개를 의사의 권유로 한 경우는 78%이고 본인이 원하여 한 경우가 22%라고 한다. 산모들은 분만의 진통에 대한 두려움이나, 출산후 비만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왕절개를 선택하기도 한다. 분만의 고통을 참지 못하여 정상분만 도중 제왕절개를 요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몸매관리나 성적인 매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왕절개를 택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태아의 사주를 미리 정하여 출산시간을 맞추어 놓고 제왕절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이제 흔한 사실이 되고 있다.

이미 제왕절개는 '위험한 수술'이라기 보다는 별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사양이 되었다. 의사들로서는 굳이 위험하고 경제적인 이득이 없고 잘못되면 수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정상분만을 고집할 동기가 없고 산모들로서는 출산의 고통이 없고 의료보험으로 경제적인 부담이 높지 않은 제왕절개를 받아들이거나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산모나 태아에 약간의 위험이 있거나 아니면 산모측의 요구가 있는 경우 제왕절개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 산모들은 의사의 권유가 있을 때 별다른 부담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료인은 경제적, 제도적인 취약점을 앞세우며 분만에 대한 직업윤리를 등한시하였고, 일부 산모나 가족은 정당한 목적으로 의료를 이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분만을 통제하는 도덕적 해이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 보건 당국은 별다른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의료보험 수가를 통제한다고 하면서 정상분만 수가를 낮게 잡아서 제왕절개를 부추겼다. 정상분만 단가는 행정력으로 통제하였지만 제왕절개가 증가하면서 보험재정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서 돈으로만 보아도 '앞으로 남고 뒤로 크게 밑지고' 있다. 분만수가에 관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별 개선책을 못 내놓고 있다. 최근까지 정부는 정확한 제왕절개 분만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난 20여년간 제왕절개율이 5배 이상 증가하고 있는 사이 정부는 '뒷짐만 지고 구경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제왕절개는 위험 분만으로부터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지켜주는 유용한 기술이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으로 적응증이 되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기술이다. 제왕절개가 전체분만의 40%가까이 된다는 사실은 명백한 남용이고 모두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의료문제일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문제이며, 의료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의료인의 윤리적인 문제이다. 우리보다 제왕절개율이 낮은 나라들에서도 제왕절개 분만율을 낮추기 위한 여러 노력을 행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유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왔다. 이제 제왕절개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출산 현상을 정상으로 되돌리 수 있는 대책의 마련이 시급하다.

안형식 / 고려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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