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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02
  • 2002.12.10
  • 1049

대통령 선거는 만담이나 씨름이 아니다



우리말에 '앙꼬 없는 찐방'이라는 표현이 있다. 네 자로 표현하면 "속빈강정"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사물의 본질이 생략되고 겉만 번지르하게 외형만 남은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표현을 지금 진행중인 대통령선거에 적용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정당이란 '이념과 정책을 같이 하는 일군의 정치가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만든 정치조직'이고 대통령선거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당간의 합법적인 경쟁 및 이를 통한 대표자의 선출과정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과정이란 정책대결의 과정이어야 한다. 이 원칙은 정당의 후보로 출마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따라서 이념과 노선과 정책은 대통령후보를 판단하는 일차적인 조건이며, 당연히 국민들이 대통령을 결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해는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이다. 벌써 열 다섯 차례나 대통령을 뽑았고 다시 이번에 열 여섯 번째 대통령을 뽑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고, 4월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진 후 내각책임제로 전환하여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으며, 72년 10월유신이 선포된 이후 87년 6월항쟁까지 다섯 차례나 체육관에서 간선으로 대통령을 선출했으니 실제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여덟 차례뿐이다.

그러나 국민직선제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의 실제 내용이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선거답지 못하면 선거라고 할 수 없다. 이승만정권 아래서 세 번의 대통령선거가 있었지만 정책대결은커녕 공정성 자체가 철저하게 부정된 불법선거였다. 금권과 관권과 정치폭력이 난무하는 선거를 선거라고 부르기도 어렵거니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선거가 정치적 요식행위 이상의 의미를 갖지도 못했다. 4월혁명을 촉발한 3·15부정선거는 이러한 타락선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였다. 5·16군사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서 치러진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처럼 백주대낮에 정치폭력이 횡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권과 관권이 선거결과를 좌우했다. 더구나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대결한 71년의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박정권에 의해 지역감정이 촉발되어 그후 우리 정치가 지역대결구도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가 부활되어 대통령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게 되고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된 결과 87년, 92년, 97년 대선을 거치면서 관권개입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금권선거 양상은 여전하지만 노골적인 금권선거의 경향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할 수 있다. 반면 지역대결구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8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이 영호남 대결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90년 3당합당으로 "호남 고립화"라는 가장 극단적인 지역대결구도가 생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종필씨의 충청도 "핫바지론"이나 정주영씨의 강원도 "무대접론" 등이 지역정서를 자극했다.

이렇게 볼 때 해방 이후 한국정치사에서 대통령선거는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선거가 아니라 정책 이외의 변수, 특히 국가권력과 금력과 지역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부패하고 타락한 불법선거로 점철되었다. 50-60년대는 국가권력과 금력이, 80년대 이후에는 지역감정과 금력이 선거를 타락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선거가 타락선거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타락선거가 권력의 타락과 정치의 타락, 나아가서는 사회적 타락을 연쇄적으로 유발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승만정권의 붕괴나 유신체제의 비극적인 몰락에서 이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화 과정에서 김영삼정권과 김대중정권이 경험한 혼란스런 정권말기 현상 역시 지역대결구도로 얼룩진 낡고 구태의연한 선거의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선거가 대통령 한 사람만을 선출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선거에서는 대통령과 더불어 정권을 구성할 일군의 정치세력과 정치집단을 선출하며, 이들이 공약으로 제시한 향후 5년간의 정책을 선택하며, 이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한 사회경제적 세력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서 대통령과 정권을 국민들과 묶어주는 유일한 끈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결고리가 정책이 아니라 국가권력이거나 금력이거나 지역감정일 경우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면 폭력으로 무너진다. 금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면 곧바로 부패한다. 지역감정으로 권력을 장악하면 국민을 통합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이 모든 경우에 갈등과 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 정치사가 보여주고 있는 생생한 교훈이다. 따라서 오직 정책만이 제대로 된 선거와 안정된 미래를 약속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정책은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고 인신공격에 매달리는 네거티브선거나 정당의 몸집을 불려 얻은 헛된 "대세론"으로 국민의 관심을 사려는 구태의연한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당과 정치세력의 이합집산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수많은 "철새" 정치인들이 여의도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후보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국민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만담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선거라는 것을 힘과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씨름으로 생각해서 몸집만 키워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선거란 전쟁을 통한 권력투쟁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무기는 선거에서 정책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정책이 없는 선거는 선거가 아니다. 후보자들이여, 정책으로 말하자. 정책으로 국민들을 설득하자

정대화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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