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6-09   4646

위기 속의 한국 가족: 해체인가, 재구조화인가?

최근 한국가족의 격변은 우리 모두에게 ‘지독한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혼율 급증, 결혼율 감소, 출산 파업(baby strike), 동거의 확산, 신(新)모계제의 등장, 외도의 일상화, 가족의 부양기능 쇠퇴로 인한 노인문제 확산 등은 최근 대중매체에 등장한 바 있는 우리 가족의 자화상이다.

가족은 확실히 단순한 사회제도가 아니다. 가족은 익숙하고도 친숙한 일상을 구성하는 환경이자, 우리들로 하여금 도덕적·윤리적 행위양식의 저장고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에, 가족을 향해 건조하면서도 객관적인 인식을 견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가족은 상당 부분 ‘신비화'(mystified)된 채 여러 겹의 신화(神話)에 둘러 쌓이는 결과를 가져온 듯하다.

오늘날 한국 가족의 급격한 변화 상황에 대해 이를 해체적 위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재구조화 과정으로 진단할 것인가를 두고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족의 변화 실태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일치하면서도, 그 해석에 있어서는 가족이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우려가 앞서기도 하고, 가족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재구조화되고” 있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하는 가운데, 후자의 입장에서는 전통으로부터의 단절 및 새로운 구조의 형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전통적 구조의 “변형”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입장은 다양한 가족신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의식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족신화 가운데 하나는 전통사회 가족은 안정되고 조화로운 집단이었으리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가족의 황금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양한 가족사(史)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음은 물론, 가족이 하나의 정서적 공동체로 부상하는 과정 자체가 근대성의 산물로 규정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더불어 이른바 ‘정상가족’ 내지 ‘전형적 가족’ 개념은 견고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정상가족의 범주에 들지 못할 경우 비정상적이거나 특이한 가족 아니면 무언가 부족한 결손 상황 그래서 부끄러운 문제 가족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본다면 가족의 위기 상황을 논하는 경우는 전통가족에 대한 향수가 전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가족 신화를 고수하면서 고전적인 가족 기능의 중요성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가족의 재구조화에 주목할 경우는 성과 세대에 따른 가족 내 권력관계를 다소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전통가족의 구조 원리에 대치되는 재구조화의 원리에 대한 규명이 불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0여년간 단순화 및 다양화 경험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가족은 가구 규모의 축소와 형태의 단순화 및 다양화를 경험해왔다. 평균 가구원 수는 계속 감소 추세에 있고, 세대 구성은 단순해지고 있으며 구성 범위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1인 가구(1인 가족 혹은 나홀로 가족), 한부모 가족, 복합가족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출산율이 매우 짧은 기간 동안 급격히 감소한 결과, 가구 수는 크게 증가하였으나 가구 당 가구원수는 오히려 감소하여 가구 규모의 축소를 부채질하였다. 1955∼2000년 기간 중 가구 수는 약 3.5배 증가하였으나, 평균 가구원 수는 1970년대의 5명 대 1980년대의 4명 대 분포를 거쳐 2000년 현재 3.1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같은 기간 중 세대 구성의 변화를 보면, 단독가구의 증가와 3세대 이상 확대가족의 감소현상이 두드러진다. 단독가구 구성비는 동기간 중 10.4% 증가하였는데, 이는 취업 및 취학으로 인한 이동과 만혼화 현상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노인 가구주 가구의 비율도 증가 추세에 있어 2000년 현재 약 16.3%를 나타내고 있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

한편 가족 가치 및 태도와 관련해서는 앞서의 가족 형태상의 변화와 비교해볼 때 전근대적 가치의 지속으로 인한 지체와 더불어, 근대를 넘어 탈근대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 공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결국 우리의 가족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때로는 전통지향으로 때로는 근대지향으로 변화를 강요받아온 결과, 형태는 변화하나 행동과 가치는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가치의 변화에 비해 가족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반적으로는 ‘형태상의 다양화·다원화 경향과 행동과 가치의 근대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나아가 가족과 사회구조적 변화 사이의 시간적 지체를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사회구조적 위기로 인한 충격이 개별가족의 위기로 인식되기까지는 일정한 유예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IMF 사태’로 인한 가장의 실직이 곧바로 가족의 해체로 연결된다거나 계층하강 이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가장의 실직상태가 장기화된다면 그 결과로서 가족의 계층하강 이동으로 인한 가족성원의 부적응 내지 가족 기능의 결손 혹은 가족구조의 해체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족의 해체적 위기냐 재구조화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다 오랜 시간의 경과를 기다리되, 현재로서는 단기적 효과를 분석해내고 이를 토대로 장기적 전망을 예측해보는 과정을 진행해야하리라 생각한다.

가족과 사회구조적 변화 사이에 다양한 지체현상

한편 가족과 사회구조적 변화 사이에는 변화 속도의 괴리로 인한 다양한 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 사회구조적 변화에 탄력성 있게 적응해갈 경우 가족의 위기 논의가 들어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변화 속도가 지체됨으로써 나타나는 ‘가족 지체’와 사회의 변화 속도가 지체됨으로써 야기되는 ‘사회 지체’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자인 가족 지체의 예로는 여성들의 취업율이 충분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성역할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가족 안의 성역할 분업이 이루어짐으로써 여성이 이중역할의 부담을 지게되는 것을 들 수 있고, 사회지체의 예로는 이제 더 이상 현재 가족의 재원만으로는 노인부양을 책임지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전통적인 효 관념에 입각하여 “핵가족 책임론”을 고수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제도로서의 가족, 관념으로서의 가족, 그리고 성과 세대에 따라 적응력의 차이를 보이는 개별 가족 구성원들 각각의 변화와 사회구조적 변화 사이의 괴리를 대입해본다면, 가족과 사회구조적 변화 사이의 관계는 매우 복잡한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이 그림의 복잡성을 더욱 높이는 또 하나의 차원으로는 ‘시간’ 개념을 들 수 있다. 즉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가족과 사회구조의 변화 속도간 괴리가 좁혀질 경우, 처음에는 위기로 포착되던 현상이 결과적으로는 재구조화를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현재 이혼율의 증가는 제도로서의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이기에 가족 위기의 징후로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전통적 가족 이념이든 신비화된 가족 이념이든 부부간 해로를 이상적 규범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혼은 위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이혼을 둘러싼 가치관은 점차 허용적인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기에 이혼을 위기로 인지하는지 여부는 성과 세대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확실하다. 앞으로 이혼 가족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점차 한부모 가족으로서의 적응에 성공하는 비율 또한 증가할 경우, 우리는 한부모 가족을 새로운 가족양식으로 인정하면서 재구조화의 지표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가족 현상의 역동적 추이를 추적해보는 작업이 필히 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전통과 근대가 논쟁의 축

현재 한국 가족의 변화를 둘러싸고 이를 해체적 위기로 보느냐, 재구조화로 보느냐 하는 논쟁은 핵가족화 내지 다원화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위기론자들은 오늘의 한국 가족이 지난 수십 년간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다양한 문제로 인해 안녕과 복지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본다. 우리 가족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지표로는 이혼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가족 해체, 가족부양체제의 약화에 의한 아동 보호와 노인 부양의 방기,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가족 공동체 의식의 증발 등이 구체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쓴다면, 서구의 가족위기 논쟁의 축이 근대와 탈근대적 현상 사이에 놓여 있다면, 우리의 경우는 전통과 근대가 논쟁의 축에 놓여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가족의 전통성과 근대성의 충돌은 무엇이 정상가족인가 하는 신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전통가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전통가족=정상가족이라는 신념을 고수하면서, 외부 사회의 변동 과정 특히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정상적인 전통가족이 문제가 있는 핵가족으로 변화함으로써 가족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가족에 의한 노인부양이 방기되고, 가장의 권위가 약화되며, 가정의 교육 기능이 실종되고, 청소년의 일탈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가족위기의 핵가족 책임론”으로 규정한다. 곧 전통 가족 원리를 대신해 새롭게 형성된 근대적 가족원리와 그로 인한 근대적 가족의식과 행동이 가족문제의 주범이라는 논의를 일컫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가족의 회복이라는 도덕적 복고주의가 바로 현재의 가족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인식하고 있다.

한편 근대의 가족을 지지하는 측면에서는 개인의 자유 내지 성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핵가족”이 정상가족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전통가족의 위계성과 불평등성, 그리고 비민주성을 강하게 거부하는 동시에, 민주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의 확산이 가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지위 변화와 성별 역할분담 구조의 해체, 나아가 아동 및 노인 부양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 위기 논쟁은 특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즉 논쟁의 축이 전통 대 근대 가족의 대결구도에 모아지면서, 가족의 부양 문제 및 가장(남성)의 지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 등에 관심이 집중된 결과,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생활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소홀히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양측의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가족 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탐색 내지 이에 대한 대응방식의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신의 것만을 강조하는 정치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위기 논쟁은 변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정작 문제는 가족이 위기 상태에 있느냐 아니냐에 있다기보다는, “무엇이” 가족의 위기인가, 나아가 특정 위기는 왜 나타났는가 원인을 진단해보고 어떻게 이를 헤쳐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작업이 보다 중요하리라는 생각이다.

참고문헌

심영희 외. 2000. 「모성의 담론과 현실」 나남출판.

안호용·김홍주. 2000. ‘한국 가족변화의 사회적 의미’ 「한국사회」3집 pp.89-132.

이동원 외. 2002. 「변화하는 사회, 다양한 가족」양서원.

이재경. 2003. [가족의 이름으로] 또 하나의 문화.

울리히 벡 외. 1999. 강수영 외 역.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새물결.

다니애너 기틴스. 1997. 안호용 외 옮김 [가족은 없다] 일신사.

함인희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hih@mm.ehw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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