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03-10   542

[심층분석: 할 말 있다, 총선! 2] 비정규노동자에게 귀 기울이는 선택

불법 대선자금 수수와 비리혐의로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지난 2월 14일 또 한 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바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회사인 인터기업의 박일수 씨이다. 작년 10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의 계약직 노동자인 이용석 동지가 분신한 지 채 4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박일수 씨는 2000년 현대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업체에서 근무하면서 ‘한마음회’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을 하면서 동료직원들의 연월차 퇴직금 등 임금착취 사건을 상담해 주고 진정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는 2003년 7월 22일, 현대중공업이 정규노동자에게만 성과급을 지급하는 차별에 항의하여 비정규노동자로서는 사상 처음 유인물을 공장에 뿌렸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의 눈 밖에 나 더 이상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간접고용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죽음으로써 고발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생명을 경외하고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 가장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 특히 국회의원중 어느 누구도 한 노동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거나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소식은 없다. 모두들 코앞에 다가온 총선의 이해득실과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용석, 박일수 두 노동자의 죽음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정규노동자들이 그들이 요구한 차별철폐와 비정규노동자의 기본권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국회는, 시민・사회 여성・종교 등 26개 단체로 구성된 비정규공대위가 2000년 10월 제출한 입법청원안을 한 번도 검토하지 않은 채 먼지 속에 묵혀 왔다. 국회의원 다음으로 입법발의권이 있는 행정부는 말 많은 노사정위 공익안마저도 칼질하면서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이들 죽음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쓰는 자본, 유연화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정부의 관료,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며 기업으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쓰는 국회의원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우리의 요구는 매우 이성적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출산ㆍ육아 또는 부상 질병의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이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고 무차별적인 비정규직 확산을 기도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은 매우 소박하다.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득을 보는 사용자에게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명백한 차별조차도 용인하고 있다.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전체노동자의 절반을 넘는 비정규노동자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비정규 노동의 확산 그 자체가 적어도 한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 필요한 권리와 책임, 편익과 비용의 공정한 배분원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온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부패 비리 의원들의 낙선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청렴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며, 정치인이 아니라 당원들에 의해 규율되는 깨끗한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그칠 수는 없다. 인구의 압도적 다수로서 이 사회에 필요한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 특히 차별과 무권리 상태에 처한 비정규 노동자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그리하여 그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를, 어느 정당을 선택할 것인가?

조진원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