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03-10   473

[심층분석: 할 말 있다, 총선! 7] 노선과 비전을 제시하라!

또 총선이 다가왔다. 각 당마다 총선공약을 만드느라 요란을 떨고 있고, ‘정책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단골 구호가 등장할 것이다. 10여년 가까이 수많은 정당의 총선,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공약을 분석ㆍ평가하면서 느낀 점은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을 빼놓고는 모든 정당들 공약의 95%가 똑같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5%의 차이도 노선과 철학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회색의 차이’에 불과하다. 누가 누구를 베끼는 것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차이마저도 선거 후반에 가면 비슷비슷해 진다. 정교하게 검토하지 않은 ‘발표하고 보자’ 식의 공약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적으로도 복지영역은 정치집단들 사이에서 노선의 차이에 따른 정책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이다. 외신을 통해 숱하게 들어보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사이의 시장 친화적 복지와 국가복지의 대립은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 정당은 그런 차이가 없다. 일부 나타난 것이 의료보험 통합에 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였고, 국민연금의 기초연금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도 노선이 다른 정책의 차이였다고 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의보통합을 둘러쌓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한 것은 그 동안의 선거에서 충분히 드러난 것이다.

정치 노선에 따라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출신 지역’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지 정당이 결정되어 온 선거문화에서 사실 정책은 ‘장식품’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선거문화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지만 이번 총선에도 어느 정도 극복이 될지 역시 미지수이다. 그 동안 선거국면에서 시민운동의 역할은 사실 정책평가보다는 정책요구에 가까운 활동을 해왔다. 지난 10년동안 시민운동 역량의 성숙은 정책요구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할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특정 정당의 공약이 시장에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연대에 가까운 것인지를 평가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당에 정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시민운동의 이면에도 역시 ‘노선에 따른 편가르기’를 부담스러워 하고 주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노령화 속도,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출산율, 부쩍 늘어나는 가족해체, 비정규직이 오히려 노동의 전형이 되어 가는 한국적 상황에서 이제는 적어도 보건복지 분야에서 노선을 정할 때가 되었다. 각양 각색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응급처치적인 정책을 통해 해결하는 시점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장을 기반으로 한 복지정책을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시장의 결함을 보완하는 복지정책을 추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생산적 복지’니 혹은 ‘참여복지’니 하는 정체불명의 구호로는 더 이상 급증하는 사회적 문제를 대처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각 당의 공약에 대해 노선을 놓고 평가해 보자. 물론 진보와 개혁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을 진정한 보수의 잣대로 평가하고 모순점을 밝혀내자.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과연 얼마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지 객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시키자.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이 서로 모순되어 얽혀있는 정책은 매서운 비판을 가해야 한다.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지 않은 정책이야말로 선심성, 아부성 공약이고, 선거가 끝나면 잊혀질 정책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이번에는 시민사회의 공약을 후보자에게 강요하는(?) 활동을 해보자. 우리의 요구안을 제시하고 주요 정책에 대해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후보자들이 결정하여 발표하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회의원이 된 이후 다른 소리를 못하게 하자는 것이며, 후보들이 자기들이 공약하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최소한 알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민들에게 후보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최소한 알게 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도 해마다 맞이하는 선거를 치르면서 예전의 틀에 박힌 활동을 그대로 수행하는 박제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복지를 둘러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구학적 상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여 변화하고 있다. 90년대 초중반의 환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시민사회의 주요 한 요구들이 과연 이러한 변화하는 상황에 걸맞는 그리고 일관된 노선을 담는 공약을 제시하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정당에서 노선에 맞는 정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면서 시민사회 스스로 모순되는 공약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선거가 끝난 이후도 마찬가지이다. 각 정당들이 내놓은 총선공약이 얼마나 충실하게 지켜지는지 보다 철저하게 감시하자. 공약은 으레 그런 것이라는 허무주의가 알게 모르게 시민사회의 활동에도 베어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김연명 / 중앙대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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