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4-07-26   1048

하월곡동에서 1박2일간의 체험

▲ 독거노인을 위한 국배달. 수레가 제법 무겁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백성진(19)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와 동생을 데리고 하월곡동에서 1박2일간 체험을 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반대를 하였습니다. 방학도 했는데 고생을 뭣하러 하냐 등등 불평을 많이 했지만 순순히 따라갔습니다.

어제 저녁 7시에 도착한 저는 우선 아빠와 동생,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잘 방을 찾아갔습니다. 방을 본 순간 매우 놀랐습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셋이서 자야할까…게다가 방에는 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선풍기를 틀어나도 뜨거운 바람만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상을 준비했는데 밥 한공기에,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멸치 뿐이였습니다. 이러한 식생활에 전혀 적응되지 못했던 저는 밥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하월곡동에 사시는 분들의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이렇게 밥을 드실텐데 저는 딱 한번 먹는거만으로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게..정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물한모금이 소중한 이곳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저는 물이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끝없이 밀려오는 갈증..그렇다고 저희 3명에게 주어진 최저생계비는 얼마 남지도 않아서 물을 많이 살 수도 없었습니다..집에서는 얼음까지 나오는 정수기로 원하는 때에 컵에 얼음을 가득 체우고는 물을 따라 마시고, 항상 얼음은 싱크대로 버렸던 저였는데..하월곡동에 와서 이렇게 물 한모금에 연연하게 된 제 자신이 집에서의 저의 행동에 대해 반성할수 있는 계기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미리 계시던 분들은 전부 대학생 형들과 누나들이였습니다. 그 분들은 1달동안 체험을 하시는 분들이라 저에게 여러 예기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밖에 되지 않아 많은것을 알고 있지도 못해서 그 분들에게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방안이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와봤습니다. 제가 사는곳 (방배동)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시원한 바람이 저의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었습니다. 또한 하월곡동은 높은곳에 있어서 아래가 다 내려다 보이니 바람이 더욱더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밖에서 쉬는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의 예기를 들어보니 제가 살아왔던 곳이랑은 너무나도 대조적 이였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이 돈 걱정을 하시고 집안 걱정을 하시는 예기를 하시는게 저에게는 약간의 충격이였습니다. 순간 목이 말라서 앞에 있는 가게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무지하게 땡기더군요..! 그렇지만 저에게 돈은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스크림 같은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땡길때마다 사먹고 노래방도 매우 자주가서 한번에 10000원 정도는 쉽게 쓰던 저였는데…막상 이러한 상황을 마주치게 되니 그동안 저는 돈을 너무 우습게 봐왔던거 같아 매우 후회가 됩니다.

바깥에서 밤 11시까지 바람을 쐬니 조금 피곤해 져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후덥찌근 하더군요. 안그래도 잠을 잘 못이루는 저라 오늘밤이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역시 쉽게 잠을 들지는 못하더군요..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해본게 새벽 1시반이였으니…약 2시정도에 잠이 들었던거 같습니다. 그러고는 새벽 5시에 잠시 깨고.. 아침 8시까지는 잘 잤습니다. 아침은 라면으로 때우고요 ^^

‘ 사는 건지 마는 건지…’ 하시던 할머니들

▲ 하월곡동의 골목은 가파르고 좁다.

아침 11시에 저는 하월곡동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국 배달에 따라 나섰습니다. 국 카트를 밀고 다니는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날씨도 매우 더운데다가 하월곡동의 지형도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매우 많아서 힘들었지만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국을 배달해 드리고 기뻐하시면서 웃음을 지으시는것을 볼때만큼은 더위는 싹 가는듯 했습니다. 몆몆 분들은 몸이 아프다고 호소를 하시는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국배달은 저에게 매우 새로운 경험이였고 또한 이곳에 사시는 분들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파악해서 의미가 깊었습니다.

국배달을 마친후 간단히 점심을 먹고는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고는 부랴부랴 어떤 형을 따라서 하월곡동 주민들의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분들은 인터뷰에 응해주시지 않으셨지만, 세 가구에서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연세는 많이 드셨지만 몸이 아주 건강하신 할머니도 계셨지만 몸이 매우 불편한 할머니도 계셨고 같이 사는 할아버지는 치매까지 걸리셨습니다. 이분들이 건강상태, 가족관계 등은 모두 달랐다고는 하지만 다들 하시는 말씀은 사는것이 힘들다는 것이였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는 ‘사는건지 마는건지…’ 라는 말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그 말은 저의 가슴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러고는 하월곡동 주민분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하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연세도 많이 드셔서 병원비가 만만치 않으시다는것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세분다 좋은 아드님과 따님들을 두셨다는게 마음이 놓입니다. 이러한 예기들을 들으면서 저는 커서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겟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부모님께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인터뷰 후에는 네 집에 들려 반찬도 배달해 주며 웃는 얼굴을 보니 제 마음도 덩달아 기뼈지고, 봉사하는 기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일을 다 마치고 글을 써보니 쓸데없는 예기도 많았던거 같고 여러가지고 어색해 보이긴 하지만 제 생각만큼은 솔직히 표현해 보았습니다. 1박2일간을 체험하면서 꽤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일같이 사시는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다고 제가 할수있는것은 아무것도 없는것도 같고..이렇게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정부에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월곡동과 이곳 외의 어려우신 분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웃을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백승진( 최저생계비 릴레이체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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