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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06
  • 2006.01.10
  • 698
오해와 실망

10월 27일 파리의 한 교외지역에서 발생한 아랍계 청년들의 감전사 사건은 세계 각국의 해외토픽을 장식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 문제는 우리사회에 일말의 충격이었을지 모른다. 그 동안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이해되었던 프랑스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이다지 심각했다는 것에 배신감마저 느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프랑스에 부여했을지 모를 아름다운 환상이 깨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불과하다. 이 사건은 갑작스럽게 불거진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식민제국 프랑스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나라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호들갑스럽게 똘레랑스의 철학을 칭찬하는 순간에도 그 사회에는 여전히 많은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프랑스의 똘레랑스에 한창 감탄하던 시기에도 차별과 배제에 분노한 아랍계 청년들에 의한 소요사태가 발생한 바 있었으며, 극우정치세력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당원들에 의한 외국인 폭행사건도 연이어 발생하고 있었다. 이 점에서 최근의 소요사태는 그리 충격적인 일이 아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프랑스 북부에 위치한 Lille의 교외지역에서도 아랍계 청년들과 경찰의 대대적인 총격전이 발생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발단 또한 생일파티를 하던 아랍계 청소년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었다.

결국 그 동안 우리사회가 심취했던 똘레랑스가 다소 과잉된 것이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돌연 프랑스를 유독 위선적인 나라처럼 질타할 필요는 없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국가 대부분이 경험하고 있으며, 미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프랑스사회에서 외국인 소요사태가 갖는 의미, 그리고 똘레랑스의 담론과 일상의 괴리, 그리고 사회통합정책의 실제를 이해함으로써 그것이 우리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프랑스와 외국인 이주의 문제

프랑스에서 외국인의 집단적 이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되었다. 물론 그것은 사회경제적 필요와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양차 세계대전이후 경제성장기에 노동인구 부족 문제에 직면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기에는 다른 유럽국가에서, 이후에는 아랍국가에서, 끝으로는 아프리카지역에서 노동력을 조달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주 또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식민치하에 있던 국가들로부터의 정치적 망명 또한 이주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적 압제와 폭력을 피해 망명했던 사람들, 독재정권의 축출된 권력자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베트남 통일이후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로 이주했던 것 또한 동일한 예라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군사적 이유로 인한 이주 또한 언급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군으로 알제리전쟁에 참여했던 알제리인들은 전후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며 프랑스 지방도시의 외곽지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의 Lille지역의 소요사태는 이들이 거주지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장기 동안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그다지 큰 사회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 즉 이민 1세들은 경제성장기에 제조업부문 등이 필요로 하는 노동을 공급하였으며, 저숙련ㆍ저임금의 일자리로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음 세 가지 정치경제적 변화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첫째, 이민 2세들이 성장함에 따라 프랑스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려는 욕구와 이를 배제하려는 배제의 문화 사이에서 갈등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둘째, 1980년대 중반이후 저성장과 노동집약적 산업부문의 일자리 감소가 이주노동자의 실업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셋째, 장기간 고실업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극우 민족주주 정치세력(국민전선)이 일자리를 상실한 프랑스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간의 대립을 조장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인 먼저”라는 매우 선정적인 구호는 일자리와 사회보장혜택 등에 있어 이주노동자외 외국인을 배제함으로써 프랑스인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허상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지지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내 왔다. 최근 르몽드가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60%이상이 국민전선의 주장과 집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찬성하는 의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철학, 일상 그리고 제도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똘레랑스는 위선인가. 이와 관련해서는 일상, 철학, 정치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프랑스인의 일상생활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이질적 문화와 성공적 통합경험 외에도 많은 갈등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는 일상세계를 지배하는 합리성과 미신, 모호성 속에서 편견의 체계로 굳어진다. 이에 비해 철학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이상(理想)을 말한다. 프랑스사회와 같이 철학이 학문의 제왕으로서 군림했던 경험이 강한 나라에서 철학은 해체된 학문들을 이끄는 나침판과 같은 존재이며, 국민에 대한 교육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철학은 배제와 편견을 넘어 합리성과 우애를 강조한다. 이것이 우리가 수 많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서 들어왔던 주장이다.

끝으로 정치는 일상과 철학의 사이를 오가는 부동(浮動)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1980년대 이후에도 우파가 정권을 장악하면 외국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통합정책이 강화되었던 경향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제도는 정권보다 긴 수명을 갖는다. 특히 사회보장제도를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인들에게 이를 갑작스럽게 개편하여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을 배제하는 극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권에 따라 제도의 부침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연대성과 통합성의 이념은 해체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프랑스인들 스스로 극우파정권의 출현을 막기 위해 좌우를 넘어선 타협을 해 왔다는 점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즉, 과반수 이상 득표를 전제로 하는 프랑스의 선거제도는 극우파가 1차 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을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타 정치집단에게 표를 몰아주는 양상을 나타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일상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다. 이주노동자, 특히 아랍계 청년들은 그 이름 또는 인종적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를 경험하는 문제를 경험하였고, 이는 쉽사리 개선되지 않았다. 고실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의 취업을 선호하는 지원책을 제시하기란 용이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고용주들은 일상의 편견 속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주류사회로 편입하려는 이민 2세 청년들과 이들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갈등의 축이었던 것이다.

사회통합, 그것은 허상인가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사회가 1998년 반소외법(loi contre les exclusions) 제정함으로써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1993년 내각에서 다수를 점하는데 실패했던 좌파정권이 1997년 정권을 장악한 뒤, 노동시간단축법과 함께 추진했던 핵심 사회정책이었다. 그리고 반소외법의 기본이념은 불과 수 년 뒤 유럽연합차원의 사회정책 의제로 채택되었고, 모든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반소외 또는 사회통합을 위한 국가실천계획(National Action Plan)을 수립하게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반소외정책은 그 내부에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들이 밀집해 거주하는 낙후지역을 개발하고, 실직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사회서비스의 공급과 품질을 개선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사회보장혜택은 이주노동자나 외국인에게도 보장되는 비교적 관대한 것이었다. 이 점에서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사회보장제도상의 차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문제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급여를 보장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노동의 배제가 지속되는 한, 사회보장제도의 급여로 그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통합정책이 갖는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정책은 다원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통합(integration)이나 편입(Inclusion)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종교를 일상적 가치기반으로 하는 아랍계 청년들에게 공화주의로의 완전통합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해묵은 논쟁이지만 이슬람여성에게 학교 내에서 훌라를 착용하지 못하게 했던 비종교교육(education laique)을 둘러싼 논쟁은 똘레랑스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프랑스 혁명당시 기존의 종교를 대체했던 로베스삐에르(Robespierre)의 이성의 종교가 공화주의 프랑스의 주류의 가치체계인 이상, 이슬람문화에 대한 통합은 많은 갈등을 내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맺으며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 2세들이 중심이 되어 발생하고 있는 최근의 소요사태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겨주는가. 그것은 일상과 노동에서 배제가 심화된다면, 사회보장제도는 빈곤탈출이나 소외극복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복지수급을 권리라고 선언하는 순간에도 주류사회와의 간극은 명확하게 그어진다. 이는 우리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향후 우리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의 정주와 그로 인한 빈곤인구의 구성변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 또한 사회권의 외연을 국적을 넘어선 시민권으로 확장하는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를 중심에 놓고 이주노동자의 통합을 요구하고, 통합되지 않는 이들을 일상과 노동에서 배제할 개연성 또한 존재한다. 이 점에서 프랑스의 최근 사태는 우리 사회정책 전반에 반면교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끝으로 프랑스 소요사태에 접한 우리사회에서 소위 선진국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또한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선진국은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국가인가, 혹은 그 시대의 문명적 가치를 선도하는 국가인가. 우리에게 선진국이란 구체성을 결여한 허상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에도 야만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사회 내부에도 선진은 존재한다. 이제 우리사회의 발전모형과 관련해서도 무분별하게 자신을 비하하며 선진국 사례에 집착하기보다 새로운 전형(典型)을 만들고, 이를 통해 현대세계를 대표하는 문명적 가치를 표방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떤가. 설사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할지라도...

노대명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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