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5-11   684

일-가족 양립을 둘러싼 가족 내 역할 실태

들어가며

최근 한국사회에선 ‘저출산 현상’이 초미의 사회적 관심사이다. 인구학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성공한 출산억제정책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초저출산(lowest-low fertility)을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출산 현상은 곧바로 고령화 사회로 연결되고 고령화 사회는 사회부양인구의 감소와 그에 따른 경제발전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 현상 자체가 본질적으로 사회 전반의 문제와 잇닿아 있기 때문에 초저출산 현상의 원인진단과 해법에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저출산 위기 상황이 현 시점에서 한국사회에 중요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은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이끌어 온 사회 구성 원리의 실패를 의미하며 근본적인 변혁에의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 성원들이 낳고 싶은 아이의 수와 실제 낳는 아이의 수를 달리 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 즉 새로운 사회성원을 낳아서 잘 기르는 문제가 결코 개별 가족만의, 그 중에서도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회적 단위에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어떤 의도에서건 간에 사회성원들을 낳고 돌보는 일, 즉 돌봄의 영역을 이제 개인과 사회가 함께 해야 한다는 데 무게 중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개별 가족이 사회적 도움 없이 돌봄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고, 개별 가족내에선 여성이 남성의 도움 없이 돌봄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 연구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가 사회적으로 독려되는 상황에서 실제로 개별가족들이 일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조화시키려고 애쓰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개별가족의 가족전략 주체는 부부이며, 생활시간 사용을 중심으로 이들 주체가 실제로 일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조정해 나가는지를 생애주기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생애주기별 일의 세계, 가족생활의 세계

1) 가족주기별 특성

이 연구의 분석 자료는 통계청에서 실시한 1999년 생활시간조사 자료이다. 이 자료는 2일 동안의 행동과 시간을 10분 간격으로 응답자가 직접 기입한 시간 일지(time diary)로서, 일과 가족생활의 조정 양식을 규명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여기서는 20-49세 부인에 한정하여 부부가 동거하는 가족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가족주기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는데, 1주기는 결혼하여 아직 자녀가 없는 부부가족, 2주기는 7세 미만의 미취학 자녀가 있는 부부가족, 3주기는 자녀가 어느 정도 커서 학령기 이상의 자녀가 있는 부부가족이다(이하 1주기는 ‘무자녀주기’, 2주기는 ‘미취학주기’, 3주기는 ‘학령기주기’로 부름: 각 주기의 가족 특성은 <표 1> 참조).

<표 1> 가족주기별 특성(단위: 명(%)) – 생략

2) 가족주기별 생활시간: 일, 가족생활, 여가

그렇다면 부부인 남성과 여성은 가족주기별로 ‘일’, ‘가족생활’, ‘여가’를 어떻게 구성하며 일상을 영위하는가?

전체 가족주기에서 부인의 평균 유급노동시간은 남편의 평균 유급노동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부인의 취업률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여성의 전형적인 M자형 취업곡선이 의미하듯이, 부인의 유급노동시간은 미취학자녀주기에서 저점을 이루고 학령기주기에서 큰 폭으로 상승한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유급노동시간은 자녀가 없는 가족주기보다는 어린 자녀가 있을 때 소폭 상승하고 자녀가 커서 학교에 다닐 때에는 소폭 하락한다. 그 결과 미취학자녀가 없는 3주기에선 부인과 남편의 유급노동시간 차이가 상당히 좁혀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족전략의 이유는 무급노동시간의 주기별 변화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림 1> 가족주기별 부부 유급노동시간(단위: 분) – 생략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족주기별 부부간 무급노동시간의 차이는 가히 경이적이다. 무급노동은 전통적인 가사노동과 자녀 또는 노인 등에 대한 보살핌 활동을 의미한다. 남편이 부인보다 2배 더 유급노동을 하는 데 비해서, 부인은 남편보다 10배 더 무급노동을 한다. 아이가 있는 집이거나 없는 집이거나 간에 가족내 무급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7세 미만의 어린 자녀가 있는 2주기 여성들의 무급노동시간은 1주기 여성보다 두 배나 길다. 미취학주기 여성은 무자녀주기 여성보다 하루 평균 192.3분 더 무급노동을 한다. 미취학주기 남성은 무자녀주기 남성보다 16분 더 무급노동을 할 뿐이다.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3주기에선 그나마 늘어났던 남성의 무급노동 시간이 자녀가 없는 1주기보다도 짧아진다. 그러나 3주기 여성의 무급노동시간은 그다지 줄지 않아서 자녀가 없는 1주기보다 70분 가량 길다. 즉 자녀가 생기면서 개별 가족의 무급노동은 대폭 증가하지만 이 증가량은 고스란히 여성에게 부가되고 이후 부부간 무급노동의 격

차는 해소되지 않은 채 고착되는 것이다.

무급노동을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어린 자녀가 있는 2주기에 여성들의 보살핌노동이 극대화된다. 이 가족주기의 남성 역시 무급노동의 증대량은 거의 전적으로 보살핌노동의 증가에 기인한다. 그러나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3주기에서 여성의 보살핌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전통적인 가사노동 시간이 증가하는 데 비해, 남성의 보살핌 노동이 다시 전무한 상태로 변하면서 가사노동시간은 늘지 않기 때문에 부부간 무급노동 시간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림 2> 가족주기별 부부 무급노동시간(단위: 분) – 생략

마지막으로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을 합한 총노동시간의 가족주기별 분포를 살펴보자. 1주기를 제외한 가족주기에서 여성의 총노동시간이 남성보다 길다. 즉 여성들은 자녀가 생기면서부터 무급노동의 전담 및 이후 유급노동과의 병행이라는 이중부담 속에서 하루하루를 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취학주기에서 남성의 총노동시간도 일생 중 극대화되지만 이후 노동시간이 감소함으로써 일-가족생활의 조화는 여성만의 문제처럼 바뀐다.

<그림 3> 부부의 하루평균 총노동시간(단위: 분) – 생략

맺음말

지금까지 가족형성기, 가족확대기를 거치면서 부부가 어떻게 일과 가족생활을 조정해 가는지 살펴보았다. 가족주기별로 일과 가족생활의 조정 역할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지위 변화를 통해서만 달성되는 듯하다. 즉 자녀가 없는 1주기에 여성의 1/2이 취업하고 있다가 어린 자녀가 있는 2주기에 여성의 2/5가 취업하고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3주기에 여성의 3/5이 취업한다. 이에 비해 남성은 모든 가족주기에서 93% 이상의 취업률을 보이며 생계부양자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가족주기에 따른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퇴장뿐만 아니라 총노동시간과 여가활용의 변화도 여성에게서 훨씬 큰 폭으로 발견된다. 특히 부모의 시간과 자원 긴장을 촉발하는 미취학주기에서 부부는 성별 역할 분담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는 듯하다. 신고정경제학파의 주장처럼 한국사회 미취학자녀를 둔 부부의 합리적 선택은 여성의 시장노동 감소 및 가사노동 증대와 남성의 시장노동 증대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어쨌든 부부가 함께 결정한 가족전략이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인 것처럼 보이는 이 전략적 행위가 노동자로서의 여성에게는 심각한 손상을 가져온다. 가족주기별로 여성의 종사상 지위 변화를 살펴보면, 비임금노동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변화 양상이 매우 열악함을 알 수 있었다. 남녀 모두 생애단계가 높아질수록 비임금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나지만, 변화의 내용은 큰 차이를 보인다. 남성의 경우 자영업자로 이동하는 비율이 높은 데 반해, 여성은 무급가족종사자로의 이동이 1주기에 비해 2배에서 3배에까지 이른다. 무급가족종사자는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임금 없이 정규 노동시간의 1/3이상을 수행하는 가내 노동자를 의미한다. 즉 무급가족종사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는, 따라서 노동자성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한국사회 여성노동의 실태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열악한 종사상 지위에,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노동시장 재진입을 꾀하는 3주기 여성들의 상당수가 편입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사회적 조건을 전제하고서 부부가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가족주기별 일-가족생활 조화를 위한 개별가족의 전략은 가족내 돌봄노동 영역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결여를 여실히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개별 가족내에서도 부부는 마치 단일한 이해 관계를 지닌 단위처럼 보이지만, 실제 행해지는 일-가족생활 양립 전략은 여성의 경제적 지위 변화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단일한 이해 관계에 기반하여 부부가 합리적으로 내린 선택의 결과는 여성의 인적자본을 감가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가족 모델은 현재 가족관계내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불안정을 경험하고 커리어 지향적 가치관을 지닌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선호될 수 없을 것이다. 개인들이 갖고 있는 친밀성에 대한 욕구가 현재의 가족제도로서 충족되지 못할 때, 그 제도는 변화되어야 하지만 그 변화 과정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저출산으로 표현되는 돌봄노동의 기피 현상을 문제의 핵심에 놓고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가족성원들을 돌볼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 국가와 기업이 나서야 할 때이다.

박수미 /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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