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9-02   894

[복지동향 칼럼] 우리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공간, 농촌의 복지에 관심을 갖자!


우리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공간, 농촌의 복지에 관심을 갖자!



김영란
국립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yrkim@mokpo.ac.kr



내가 알고 있는 해남의 한 활동가는 농촌에 대한 어떤 글을 쓰건 항상 “산 자는 떠나고 죽은 자는 돌아온다.”로 시작한다. 하물며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이렇게 시작하였다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이유로 논문심사위원들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아마도 농촌의 현실을 숫자로만 표현하기에는 그의 심정을 담을 길이 막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활동가보다 낙관적으로 보이는 거창의 한 활동가는 “나는 오늘도 농촌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로 시작되는 농촌관련 글을 쓴 적이 있다. 그에게는 농촌이 희망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노래라도 부르지 않고서는 지내가 어려운 곳임에는 틀림없어, ‘희망’보다는 ‘노래’에 더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 농촌사업을 하시다가 젊은 나이에 과로사로 돌아가신 최용신 선생님의 상록수 시절도 아니고, 물론 최근 2만 불 국민소득의 시대가 1만 불 대로 곤두박질쳤다는 기사를 읽었지만, 어찌되었건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우리의 활동가들은 1930년대의 농촌을 방불케 하는 절망에다 미래적 희망을 걸고 있다. 얼마 전 참여연대에서 온 후원의 밤 초대장 글이 생각난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 2007년 농가소득은 2006년에 비해 33만6,000원이 줄었다. 면세유값 7월 1리터당 1,267원이 유지될 경우 시설농가 소득 감소가 37~47%에 달할 것으로 분석한다(2008.8.22 농민신문).



■ 2007년 농가부채는 2,994만 6,000원으로 2006년보다 6.3% 늘었다(2008.3.21 농민신문).



한미 FTA 협상결과로 우리나라 농산물 생산액은 발효 후 5년 차에 4,465억원, 10년 차에 1조361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의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



이러저러한 숫자를 보면 지금 농촌은 그 어느 하늘 아래보다 어렵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4분의 3이 농촌에 살고 있다. 과거에도 농촌은 어려웠지만 최근 더 농촌이 곤궁해 진 이유에 대해 일부에서는 농업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일부에서는 원래부터 농업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고도 한다. “농업은 생산과정에서 토지나 기후 등과 같은 자연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생산물에 대한 정확한 계획이나 예측이 어렵고, 수확체감의 법칙이 지배적이어서 생산증가가 한정적이다…” 등등. 이렇게 농업은 ‘자본제적 경제원리가 적용될 수 없는 산업’으로, 자본시장에서 경쟁하여 일차적 분배의 몫을 갖기 어려운 산업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 초등학생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농업을 생산의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는 농민의 경우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보다 경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는 희박하고, 거기다 농민의 대부분이 50대 이상, 나아가 70대 노인이라면, 그 게임은 너무나 가혹하다못해 폭력적이라는 것을 누구도 이해 못 할리 없다. 이러한 농촌에서 사회복지는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농촌이 처한 지금의 사회적 위험에 대해서 어떠한 사회복지적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가?



■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제리에 사는 이모 할머니(70)가 숨진 것은 지난 10일 저녁. 고혈압 증세가 있었지만 매일 마을회관 등 동네 마실을 다녔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마을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할머니의 집을 찾았지만 할머니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꼬박 이틀이 지난 뒤였다. 기력이 약한 할머니가 숨진 당일 떡을 먹고 체해 구토를 하다 기도가 막혀 숨진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2007.3.21. 농민신문).



도시의 아파트단지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미국 농촌복지의 대표격인 Leon Ginsberg교수는 마약중독, 성폭력, 정신질환 등 농촌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제 역시 다른 모든 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와 다르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해결할 만한 서비스자원이 부족한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농촌이라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시문제가 똑같이 농촌에서 발생한다. 하긴 요즘에는 농촌이 도시보다 앞서가는 문제가 하나 있다. 원서를 보건 번역서를 보건 그건 미국 같은 다인종국가의 현실이라며 항상 열외시켜왔던 소수인종이나 다문화 관련 chapter들이 이제는 빠져서는 안 될 공부가 되어버렸다.



■ 현재 18세 이하 농촌 청소년 207만8,451명 중 국제결혼가정 청소년은 6만 6,297명으로 3% 정도지만, 2020년에는 66만명을 넘어서 52%에 이른다(2006.5.10. 농민신문).



최근 농촌에 폭발적으로 유입되는 결혼이주여성들과 한국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곧 머지않아 농촌의 앞가슴에 또 하나의 주홍글씨가 새겨질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농촌은 비순종지역(차마 ‘잡종’이란 말을 쓰지 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농촌은 거대한 소외지역이며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이다. 더군다나 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 ‘지역’, ‘균형’ 이라는 단어보다는 ‘수도권’, ‘경쟁’ 이라는 단어를 더 아끼는 MB정부 때문에라도 ‘지금’ 농촌에는 복지가 시급하다. 경로당만 손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농촌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농업은 이미 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여 일을 해도 부채가 늘어나는 지경이며, 그 일도 대부분 노인과 여성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이러한 현재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미래에 대한 투자 역시 지리멸멸하다. 학교는 정책적으로 문을 닫거나 형식적인 최소한의 여건만을 갖춘 채 교육하며, 거기서 공부한 학생들은 학업성취도 낮고 정서적인 안정감도 낮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은 대물림되고 그 덫에서 나올만한 사회적 장치는 매우 허술하다. 사회보장시스템은 농촌 주민에게 오히려 더 불리한 쪽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완해 주는 사회복지서비스는 양적․질적 모두에서 취약하다. 또한 농촌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실패에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혹은 맞서 대항할 만한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의 힘도 약하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서 농촌은 자생적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농촌, 농민, 농업의 문제는 결국 농촌이 아닌 지역, 농민이 아닌 사람, 농업이 아닌 산업이 변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문제는 국토의 난개발도, 농민의 노령화도, 농업의 비경쟁성도 아닌, 바로 배려와 연대의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근원적으로는 삶, 인간, 자연에 대한 성찰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개발정책은 국토를 활용한 자본확대재생산, 즉 도시에서 자본을 확대한 사람들이 농촌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사회보장은 농사는 산업이 아니라 그냥 ‘일’ 혹은 ‘여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 의해 도시․산업형 월급수령자를 중심으로 제도화되었으며, 사회서비스는 도시에 집중되거나 도시상황에 적합한 내용을 만들어 농촌도 해보라는 식으로 던져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도 서비스를 제공할 곳도 마땅치 않은 농촌에다 대고!


그래서 어쩌면 농촌은 천박한 사회, 문화, 경제 등등에 덜 오염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농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곳이다. 거기에 농촌의 희망이 있다. 농촌은 파괴되는 지구에서 아직은 살아있는 진보적 자연공간이고, 연령과 성 차별 없이 누구나 농사짓는 진보적 노동공간이며, 그리고 각종 인종이 모여 사는 진보적 다문화 포용공간이다. 진보진영이 꿈꾸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이 바로 오늘의 농촌이다. 그러니, 농촌의 절망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농촌으로 희망을 지켜가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새 세상과 조우하기 위해서 농촌, 농업, 농민에 대해 사회복지공동체가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행동할 때이다.



다음은 농촌과 농촌복지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권구영 외. 2007. 『농어촌사회문제론』. 공동체.


김영란 외. 2008. 『지역사회와 복지』. 공동체.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이반 역. 2002.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녹색평론사.


박세길. 2007.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 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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