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11-02   1901

[동향 3] 국민연금기금 주식투자 손실에서 가입자는 무엇을 볼 것인가?


국민연금기금 주식투자 손실에서 가입자는 무엇을 볼 것인가?



 


오 건 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가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주식에서 입은 손실만 10조 2천억원에 달한다. 10월에 코스피 지수가 1,400에서 시작해서 1,100 수준으로 마감했으므로 10월 하락분을 포함하면 주식부문 손실액은 10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주식투자 과정을 보면서, 손실액도 문제지만 국민연금기금 운용이 지닌 근본적 문제들이 여럿 확인되었다. 주식투자 손실을 계기로 가입자들이 주목해야할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다시 ‘정치’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에 대한 경고등은 올해 5월 이미 켜졌다. 그런데도 연금공단은 국내주식과 해외주식 비중을 계속 늘여 왔고, 9월과 10월엔 무려 5조원을 투입했다. 미국에서 대형투자은행이 무너지고 구제금융이 추진되던 때에도 연금공단은 ‘증시방어 의혹’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일 주식을 순매수했다.

특히 8월 27일 연금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청와대를 다녀 온 이후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매입이 본격화되었다. 심지어 10월 27일 이명박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하자 연기금이 증시에 5,400억원을 투자해 주가를 떠받쳤다. 국내 민간 기관투자자나 해외 투자자들이 모두 장을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국민연금기금만 유독 주식을 집중매입하여 추가 손실을 보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과연 ‘정치적 변수’를 빼고 국민연금기금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을까?


둘째, 앞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 규모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주식투자액은 시가로 약 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더 커진다. 국민연금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운용위원회)가 올해 6월 ‘2009년 기금운용계획안’을 확정했는데, 내년 주식부문 운용규모가 무려 84조 원이다.

지난 5월 기금운용위원회는 향후 ‘5년(2009~2013) 중기자산배분안’을 정하였다. 2013년까지 국민연금기금의 자산군별 투자 비중을 사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연금공단 이사장에 의하면 2012년 주식비중이 40%이다. 이러한 증가 추세를 고려하면 2013년 주식 비중은 4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약 450조 원에 달할 예정이므로, 이 때에는 주식투자액만 200조원에 이르게 된다.


셋째, 국민연금기금은 헤지펀드 투자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지난 9월 기금운용위원회에 올해 하반기부터 해외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방안을 올렸다. 다행히 ‘금융위기 여론’을 감안하여 이 방안이 보류되긴 했으나 상황 변화를 보아가며 다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는 금융투자자들이 운영하는 사적 투자기구로 공식적인 정의도 내리기 어려울 만큼 불투명하고 의혹에 차 있는 펀드다. 현재 헤지펀드 시장규모는 대략 1400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운용전략, 거래내역, 운용성과 등 기본적인 정보가 투명하게 공시되지 않아 내부자를 제외하고는 이를 거의 알수도 없다.

정부는 작년 12월 국민연금법 시행령 중 ‘투기적 목적의 파생상품 거래를 제한’하는 단서 규정이 삭제되었음으로 이제 국민연금기금도 헤지펀드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투기적 파생상품 투자’를 가능케 하는 법적 근거가 행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시행령이었다니 놀랍다. 미국조차 파생상품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공적연기금은 거꾸로 ‘투기적 파생상품’에 달려가려 하고 있다.


넷째,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던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 연기금’들이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정부가 홍보하는 대표적인 연기금은 주식투자 비중이 40~50%에 이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 네덜라도 공무원연금인 APG, 캐나다 공적연금 CPP 등이다.

2000년 이후 8년 동안(2000-2007), 국민연금기금의 평균수익률은 6.8%이고, 캐나다 CPP, 미국 캘퍼스, 네덜란드 APG의 수익률은 8.0% 6.5%, 5.3%이다. 수익률이 엇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공적 연기금의 운용 성과를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수익률과 위험률을 함께 조합해서 평가하는 ‘위험대비 성과지수'(수익률/표준편차)를 보아야 한다. 이 지수는 수익률이 좋더라도 수익률 변동폭인 표준편차가 크면 손실 위험성이 커지므로 양자를 함께 평가할 수 있다. 위험대비 성과지수는 채권 중심의 안정적 자산운용을 한 국민연금기금은 4.78로 양호한데 반해, 수익률 변동성이 큰 캐나다 CPP는 0.42, 캘퍼스와 네덜란드 APG도 0.57, 0.76으로 모두 1 이하이다. 본받을만한 연기금이 못되는 셈이다.

게다가 올해 해외 연기금의 손실율이 심상치 않다. 캘퍼스는 지난 1년 전과 비교하여 자산총액이 2,606억달러에서 1,937억달러도 무려 669억달러나 사라졌다(10월 9일 기준). 한국 돈으로 약 80조원이 날라 간 것이다.


다섯째, 투자수익률을 올려 기금 고갈을 대비하겠다는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을 높여 기금 고갈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0% 이상 수익률을 올리겠다고 호기까지 부렸다.

이것은 국민연금의 기본 재정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에 미치는 결정적 변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이다. 기본수입인 보험료율이 어느 수준에서 정해질지, 기본지출인 급여율이 어떻게 변화될 지에 따라서 미래 재정전망이 정해진다. 기금수익률은 적립된 기금 운용에서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재원으로서 국민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2차적 변수일 뿐이다. 게다가 기금운용의 수익률은 시장 기대 범위 이상을 크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진정 기금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 고려할 변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 조정, 국가의 연금재정 지원 비중, 수급자의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 등이다. ‘투기적 변수’에 현혹되지 말고, ‘객관적 변수’를 중심으로 국민연금기금의 미래 재정을 이야기하고 대비해야 한다.


여섯째,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 원칙을 세워야 한다. 마냥 주식투자 반대만을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일부가 국내주식시장에서 운용될 때에도 사회책임투자(SRI)를 따라야 한다.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의 안정적 운용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역할을 극대화하여 연기금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려는 대안투자전략이다. 현재 친환경적 가치가 기업활동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고, 고용안정에 부응하는 것도 국민경제에 중요하며, 소비자권리도 확장추세에 있다. 공적 연기금의 자산운용 원칙에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명시하여 기금의 공공적 운용을 강화하고, 건전한 기업활동이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재정법과 국민연금법에 국민연금기금의 사회책임투자 조항을 명시하고, 연금공단은 사회책임투자를 위한 조직인프라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사회책임투자가 전통적 방식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은 ‘규모’에서, 한국 기업구조는 ‘재벌체제’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 경제구조의 혁신을 위한다면, 국민연금기금이 기업혁신을 위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고, 필요하면 재벌의 공공적 개혁을 위한 주체로 나설 수도 있다.


일곱째, 국민연금기금이 사회공공적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서 공공부문은 ‘관료주의’의 상징이어서 국민들에게 달가운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 공공부문을 방치할 수는 없다. 공공부문의 관료성은 타파해야겠지만, 애초 공공부문이 지닌 사회공공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국가재정 규모는 공공부문을 확장하는 데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국민연금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납부와 급여 지급까지 수십년이 걸리는 장기보험이다. 국민연금제도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최소한 2~3세대가 제도 수혜를 경험하는 ‘인내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위로부터 관료적으로’ 도입된 국민연금기금은 초기 성장 진통을 심하게 앓고 있다. 그래서 가입자에게 실질적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공공서비스’ 사업이 특별히 요청된다.

예를 들어, 실버타운, 서민임대주택, 지역문화체육센터, 지역교육시설 개선, 생태환경 인프라 등 공공적 사회기반시설이 관심 대상이다. 이 시설들은 사회적으로 긴요하나 국가재정의 한계로 방치되고 있다. 근래 민간투자사업(BTO, BTL)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자본들이 이 사업들을 맡고 있다. 민간자본의 수익성을 위해 주먹구구식으로 사업이 집행되고 있어 국가재정만 축내고 민간자본에 특혜를 주는 골치거리로 전락해 있다.

원래 이 사업은 사회적으로 긴요한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안정적 재원 조달을 위해 국가가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 사업을 민간자본에게 넘겨줄 이유가 없다. 작년까지 추진된 민간투자사업 규모가 76조 원이고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이다. 국민연금기금이 국가와 계약을 맺어 사회기반시설을 제공하고 기본 운용이익을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사회기반시설의 선정, 건설, 관리하는 전 과정에 지역사회, 연금가입자, 연금공단 등이 참여할 경우 새로운 민주적 공공부문 모델로도 자리잡을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에대한연기금투자법'(가칭)을 제정하여 공공부문 투자의 법적 근거를 확립하고 민주적 지배구조의 토대를 쌓아가야 한다.


여덟째,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연금주권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지금 국회에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8월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국민연금기금을 민간 금융투자전문가 7인에게 내맡기는 ‘국민연금기금 민간위탁’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독립성과 전문화이다. 국민연금기금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자율성을 지니게 하고, 10년 이상 경력의 금융투자 전문가에게 의사결정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정치적 독립을 명분으로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자본에게 넘겨주고, 전문적 운용을 이유로 가입자 대표의 참여를 구조적으로 배제하는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은 국정감사가 끝나면 11월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예정이다.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통과될 우려가 크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연금기금이 주식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나, 국민연금기금 민간위탁 법안이 상정된 것이나 모두 동일한 기획 아래 진행되는 조치들이다.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자본에 넘겨주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국민연금기금에도 관철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가입자들이 연금주권운동을 벌이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국민연금기금 민간위탁법안을 막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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