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빈곤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


어머니를 다시 만난 건 희망UP 캠페인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면서입니다. 바람엄마는 지난 2004년 하월곡동에서 진행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캠페인에 4인가구의 일원으로 참여하셨던 분입니다. 초등학생인 딸, 장애가 있는 아들과 살고 있는 한부모 가구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이기도 합니다. 참여연대에서 다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캠페인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하니 어머니의 첫마디는 “잘하셨어요. 지금 최저생계비로는 정말 생존의 위협을 받아요. 2004년보다 훨씬 살기 힘들어졌어요.”입니다.


생존 위협하는 최저생계비

2010년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363,091원입니다. 6년 전에 비해 절대액수는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처럼 그 사이 물가는 크게 올랐습니다. “우윳값, 라면 값 한번 비교해보세요. 뭐 하나 사려고 해도 만 원짜리가 예전의 오천 원 수준이에요. 다른 한부모 엄마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고 해요. 저도 최근에는 너무 힘들어서 푸드뱅크에 갔었어요.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조금 더 여유 있게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는데 요즘은 사람이 늘어서 예전의 반씩만 나누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물건을 집어가는 걸 보면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나 싶어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품목을 줄이겠다는 안내판까지 붙었어요.”

어머니는 지난해까지 무리해서 냈던 학교 급식비를 내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사실 작년까지는 학교에 급식비를 다 냈어요. 딸아이가 상처받을까 봐요. 수업 끝나고 누구누구 남으라고 해서 쌀, 라면 나눠주고, 그러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내가 못 먹어도 돈을 내는 게 낫겠다 싶어서 급식비를 낸 거예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아이의 자존감을 생각해달라고 부탁드리고 급식비는 안내고 있어요.”

무엇보다 큰 문제는 주거비였습니다. 5년 전 하월곡동이 재개발 되면서 어머니는 운이 좋게도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훨씬 많은 빚을 내고, 월세를 지불하면서 주변으로 거주지를 옮기거나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채 2년을 살지 못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아이들의 얼굴빛은 점점 나빠졌고, 찾아간 학교 교실 뒤편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을 떠나 친구가 운영하는 작은 극단의 사무실에서 일 년을 지내다 지금의 국민임대아파트로 옮기면서 주거환경은 많이 좋아졌지만 보증금과 월세, 관리비 등 주거비는 생계비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발목 잡는 ‘부양의무자 기준’

최저생계비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분들이 100만 명이나 됩니다.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입니다. 지난해 가을 봉천동에서 만난 63세 김 할머니. 아들이 둘 있지만 연락이 끊긴지 오래입니다. 특히 첫째 아들은 10년도 지난 어느 날 어린 자식만을 할머니에게 맡긴 채 집을 나가 행방불명입니다. 그렇게 어린 손자를 데리고 힘들게 살면서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을까 여러 차례 동사무소를 방문했지만 연락조차 되지 않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일하셨던 동자동 이 할아버지는 부도가 나면서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시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쪽방에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다리 뻗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 한 칸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연락조차 되지 않는 사위의 월급이 오르면서 할아버지는 결국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실제 부양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자의 소득에 대한 일정금액을 부양비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위가 할아버지에게 부양비를 드리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할아버지는 매달 정부에서 주는 기초노령연금 몇 만원으로, 끼니는 근처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하며 지내셔야 했습니다. 밀린 방세 때문에 다시 노숙을 해야 될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이시는 할아버지께 내키시진 않겠지만 자식들에게 연락을 해보시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여쭸습니다. “내가 이대로 끝났으면 끝났지 애들한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애들 형편도 어려운데… 연락 끊긴지도 오래되었고…….”  

 
 
최저생계비는 올리고, 부양의무자 족쇄는 풀고

빈곤층임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지 못해 사각지대에 방치된 인구가 410만 명. 전 인구의 약 8.4%나 됩니다. 이것도 정부에서 파악한 숫자에 불과합니다. 최저생계비는 법에 명시된 것처럼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현실적 금액입니다. 국민의 최저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한다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라는 족쇄로 100만 명의 빈곤층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10년. 지난해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도 지적했듯이 한국은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이지만 저소득취약계층에 대한 사회권 보장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급증하고 있는 빈곤의 규모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땜질식 한시대책이 아닌 새로운 양상의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과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 시작은 바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와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입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기초보장제도가 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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