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3-10   1495

[심층5] 세금폭탄론의 본질은 부자책임 회피론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대한민국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활성하자 보수세력이 꺼낸 든 카드가 ‘세금폭탄’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보수언론들은 ‘복지도 좋지만 세금을 낼 용의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복지를 확대하면 ‘중간 소득 이상의 30~40대 근로소득자들이 세금 폭탄의 직격탄을 맞는다“며 공세를 취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표적 수치가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다. 2008년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GDP 20.7%로 OECD 평균 25.8%, 스웨덴 34.8%보다 낮다. 사회보장기여금까지 포함한 국민부담률은 우리나라가 GDP 26.5%이고, OECD 평균은 34.8%, 스웨덴은 46.3%이다. 이 수치를 근거로 만약 스웨덴과 같은 복지를 누리려면 지금보다 거의 두배 가량 세금이나 사회보험료를 내야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이 우리나라 국민보다 세금을 많이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보수세력이 말하지 않는 결정적인 내용은 조세구조이다. 이들은 모든 국민들이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균등하게 부담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어느 명성있는 학자는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국민 1인당 250만원, 가구당 400만원이라고 금액까지 친절히 계산해 알려준다.


  보편 복지에서 급여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게 제공된다. 그래서 ‘보편’이다. 그런데 재원부담은 다르다. 복지에서 복지수혜자와 세금부담자는 등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복지국가 재정구조의 기본이다. 상대적으로 간접세 비중이 큰 우리나라와 달리 복지국가들은 직접세 중심의 세제를 지니고 있다. 아주 어려운 사람들은 과세대상에서 제외되고, 일정 소득 이상 계층부터 누진적으로 세금을 납부한다. 그래서 부자일수록 세금을 많이 낸다. 누진체계를 지닌 조세제도의 기본 특징을 언급하지 않은 체 국민 부담 운운하는 보수세력의 협박은 속보이는 기만적 행위이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세금 부담구조는 어떨까? 누구보다 성실히 세금을 내고 있다는 유리알지갑 근로자들의 근로소득세를 보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면세자 비중이 큰 편이다. 각종 소득공제 항목이 많이 대략 연봉 2,500만 원 이하 가장은 연말정산 결과 대부분이 면세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5-1<에서 보듯이, 2008년 기준 전체 근로자 43.3%가 면세자에 해당한다. 소득세 첫 번째 구간인 과표소득 1~1200만원(실제소득 약 2,500~4,000만 원 추정)에 속한 34.8%의 사람들이 내는 세금 총액도 9천억 원으로 전체 근로소득세의 6.3%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계산해 보면, 이들이 내는 소득세는 1인당 평균 18만 원이다. 월 1만 5천 원씩 소득세를 내고 있다. 이렇게 전체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자의 78.1%가 면세자이거나 소득세 부담이 적은 1구간 소득자다.
  대신 과표소득 1,200만 원(실제 소득 약 4천만원)을 넘는 사람들이 소득세 대부분을 부담한다. 그림을 보면, 상위 4구간 계층은 납세자 비중으론 0.5%에 불과하지만 전체 소득세의 27.8%, 3구간 계층은 2.3%가 소득세의 22.3%, 2구간 계층은 19%의 근로자들이 소득세의 22.3%를 부담했다. 이 세 구간에 속한 상위 21.8% 계층이 소득세 총액의 93.7%를 낸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들이 세금폭탄이라며 걱정하는 납세자는 일반 국민들이 아니다. 사실상 상위 1%, 넓게 잡아 상위 약 20% 계층이다.


      [그림 5-1] 근로소득세 과세구간별 근로자‧세금 비중(2008년 기준)

        자료: “세금 폭탄 걱정하는 당신은 고소득층?” 한겨레, 2011년 1월 25일자.

  보수세력은 세금폭탄을 이야기하면 일반 국민들이 조세 저항에 나설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올해 1월 한겨레 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함께 벌인 조사에서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주을 지금보다 더 늘리자”는 주장에 53.1%가 동의하고 45.9%가 반대했다. 일반적으로 세금을 더 내자며 반감이 생길 거라는 추측과 반대되는 결과이다. 대한민국에서 보편 복지가 시대적 대세가 되면서 세금을 둘러싸고 매우 역동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복지 재원이 모두 추가 세금으로 조달되는 것도 아니다. 최근 정치권 논의를 보면, 차기 정권에서 보편 복지를 구현하는 데, 대략 연 30~60조 원의 돈이 필요할 듯하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우선 일부는 재정지출 개혁으로 조달될 것이다. 올해 각각 30조 원을 넘은 조세감면과 국방지출, 그리고 25조 원에 육박하는 SOC 지출 등 손보아야 할 곳이 한 둘이 아니다. 만약 2013년에 복지국가를 주창하는 정권이 출범한다면 재정지출개혁을 통해 상당한 재원을 만들어 낼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면 민간 복지로 지출하는 돈도 복지재정으로 전환할 수 있다. 현재 국민들이 진료를 받은 후 본인부담금으로 내는 돈이 20조 원이 넘는다. 무상의료가 현실화되면 더 이상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고 본인부담금도 줄어든다. 무상보육을 시행하면 그만큼 보육 지출이, 기초노령연금을 확대하면 그만큼 부모 지원비가 절감할 수 있다.


  이렇게 재정지출 개혁, 민간복지 지출 전환 등의 조치가 이루어지면 실제 증세가 추진되는 규모는 줄어든다. 이 돈 역시 국민들이 모두 균등하게 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상위계층 대부분이 책임진다. 현재 보편 복지를 주장하는 정치권의 제안 내용을 보더라도 실제 과세대상은 사회양극화 시대에 혜택을 독과점하고 있는 소수 부유계층과 대기업들이다.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제안한 사회복지부유세와 사회복지소득세는 총 23조 원을 조성하는 데 비해 과세대상은 상위소득 10% 계층과 자산 1조 원 이상 대기업 91개 이다. 진보신당의 사회복지세도 상위 5% 부유계층과 1%의 대기업을 과세대상으로 삼아 매년 15조 원의 세수를 기대한다.


  심지어 ‘나는 부자들이 ‘내라!’는 요구를 넘어 우리도 ‘내자!(낼 테니 내라!)’는 보편 증세 방식을 선호한다. 이 방식을 따르더라도 실제 중간계층이 추가로 내는 세금은 많지 않다. 앞에서 보았듯이, 근로소득세의 경우 중간계층들은 월 1만 8천 원을 내고 있으므로 지금보다 1/3을 인상해도 월 6천 원을 더 낼 뿐이다. 보편 증세론은 중간계층이 ‘내자’를 지렛대로 삼아 상위계층에게 세금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는 ‘증세 정치’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앞의 부유세, 사회복지세와 다를 뿐, 세금 부담구조에선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세금폭탄론의 본질은 부자책임 회피론이다. 조세구조의 누진체계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일반 중간계층에게 조세 저항을 불러 일으키려는 교묘한 ‘증세 봉쇄 정치’이다. 지금 우리 앞에 ‘세금폭탄 정치’와 ‘복지증세 정치’가 놓여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 열망을 든든한 원군으로 삼아 세금폭탄론에 정면으로 대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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