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3-10   1469

[동향2] 홈리스 지원법, 홈리스 힘으로!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


  우리사회에서 소위 ‘노숙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사업이 시작된 지 13년을 경과하고 있다. 물론 ‘부랑인’이라고 명명되는 이들에 대한 복지지원까지 기원하면 그 기간은 30년을 넘어선다. IMF ‘실직노숙인’ 이라는 명칭이 상징하듯, 초창기 정부의 대응은 응급적이고 단기적인 지원 대책을 실시하면 노숙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한 바 있다. 그러나 IMF 조기 졸업이라는 축배를 든 이후에도 우리사회에는 ‘노숙’이라는 생활 형태가 지속되었고, 오히려 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따라서 이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책이 필요함을 정부와 민간 공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 결과는 2005년 사회복지사업법 내 시행규칙으로 제정된 ‘부랑인 및 노숙인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으로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이 규칙은 시설 운영에 관한 내용만을 다룰 뿐 ‘노숙인, 부랑인’ 지원을 위한 어떠한 개선책도 담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동일 집단인 노숙인, 부랑인에 대한 분리지원을 존속했고, 기존의 정부 정책으로 지원되고 있는 쪽방상담소를 통한 주민지원도 규정에서 누락시켰다. 같은 시기 ‘지방분권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예산 지원 방식까지 변경되면서 복지지원의 책임이 노숙인, 부랑인 각각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로 이원화되는 문제가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지방정부 소관의 노숙인 지원사업은 지자체의 의지나 판단에 따라 지원의 수준과 내용이 좌우되는, 말 그대로 갈지(之)자 행보를 보였다.


  이런 배경에서 지원체계의 통합과 체계적 지원 실시에 대한 필요는 더욱 높아졌고, 작년 중반기부터 홈리스지원법 제정을 위한 연구와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 후 12월을 시작으로 한나라당, 민주당이 노숙인․부랑인 또는 홈리스 지원을 위한 법안을 발의하였고, 민주노동당 역시 홈리스 인권보장을 중심으로 한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이 중 현재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노숙인·부랑인 복지법안’이 지난 3월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를 마친 상황이다.


  한나라당의 ‘노숙인·부랑인 복지법안’


  그러나 제출된 유재중 의원의 법안을 보면 그동안의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현행 지원체계의 문제를 지속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첫째, 법안 명에서도 드러나듯 지원대상이 ‘노숙인, 부랑인’으로 한정되었다. 이는 그동안 노숙인, 부랑인 지원체계의 분리 문제가 계속 지적되었음에도 이를 해결하지 않고, 시설들을 온존시키는 수준에서 봉합하려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그 범위 역시 거리와 시설 입소인으로 국한하여 쪽방, 고시원, 만화방 등 수많은 홈리스들을 정책적으로 배제할 것이 자명하다.


  둘째, 홈리스에 대한 인권보호 조항이 전무하다. 한나라당의 법안은 차별과 홈리스 복지 후퇴 조치에 대한 금지, 개인정보보호, 이의신청과 같은 홈리스 인권보호에 대한 내용을 통째로 누락하였다. 그러나 현재 홈리스들은 범죄 피해, 낙인, 행정과 공공기관에 의한 예비범죄자 처우 등에 따라 참혹하리만큼 인권 사각지대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홈리스 지원을 위한 법률에서조차 인권보호를 위한 장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은 이 법의 진실성은 물론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셋째, 복지지원 정책의 개선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거리홈리스에 대한 지원 정책은 “시설안내, 병원 후송 요청, 정보제공, 심리상담” 등 기존에 실시되고 있는 정책을 열거한 것에 불과하다. 시설 중심의 법안의 한계로 거리 홈리스에 대한 지원 최소지원, 열등지원의 관행을 지속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홈리스의 목소리 – 홈리스 지원법 제정 청원 서명운동


  물론 법 제정 움직임은 그간 문제로 제기되었던 홈리스 복지의 일원화, 체계화를 위해 고무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설 연합회와 같은 직능 단체들 중심으로 의견수렴과 입장이 제출될 뿐 정작 법률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될 홈리스 대중들은 법안 논의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법제정 흐름에 대한 공유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균형감 있는 연구자들과 본 단체와 같은 조직이 일정부분 홈리스 당사자들의 입장을 반영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이 역시 홈리스 대중들의 의견수렴이나 토론과 같은 과정을 경과한 한계가 있다. 이는 민주적 절차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홈리스 대중 조직이 부재한 현실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할 것이다.  사진 설명 : 2월 22일, 홈리스 1,531명의 서명이 담긴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전달하고 있다.


  한나라당 법안과 복지부가 정책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했으며 시설 중심적이고, 홈리스에 대한 인권 보장에 취약한 한계가 있어 홈리스 생활인들에게 유효적절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도록 현실적이고 실력 있는 개입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법률제정에 대한 홈리스 대중들의 공감을 모아내고, 홈리스 대중들의 현실과 요구에 기초한 구체적인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지 성공적 법제정이라는 결과 뿐 아닌 이후 홈리스 당사자들이 정책의 수급자에서 일주체로서 역할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홈리스행동은 전국 노숙인지원기관과 단체와 함께 지난 2월 8일부터 약 2주 동안 ‘홈리스 지원법 제정 홈리스 1,000인 서명운동’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1,531명의 홈리스 당사자들이 서명에 동참하였고, 이를 입법 청원서로 지난 2월 22일 국회에 제출(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소개)하였다. 입법 청원서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포괄적인 주거보장의 대상으로서 홈리스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종전 부랑인과 노숙인에게 부여한 낙인 탈피 뿐 아니라 탈거리노숙과 더불어 노숙예방을 추구하는 포괄적인 정책수립을 위해서는 정책 용어로서 ‘홈리스’가 필수적이다. 작년, 법제처는 홈리스라는 용어는 외래어라 법률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해 제정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뉴타운, 바우처 등 넘쳐나는 외래 정책용어들은 다 허용하면서 ‘홈리스’는 안 된다는 것은 발목잡기에 불과하다. 현재 홈리스들의 생활 형태는 거리와 시설은 물론 쪽방, 고시원, 패스트푸드점, 다방 등 다양함은 물론 홈리스 상태에 이르게 된 경로를 볼 때 사회구조 변화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언어적 혈통주의에 갇혀 역사 유래에서 적합한 용어를 찾아야 한다거나 노숙인, 부랑인으로 규정돼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불리기를 원치 않는 상황에서 낙인으로 점철된 용어를 고집한다는 것은 억지 주장에 다름 없다. 참고로, 비영어권 국가인 일본은 2002년 기존 용어인 ‘야숙자(野宿者), 노상생활자(路上生活者)’를 홈리스로 바꾼 법률을 제정했다.


  둘째, 홈리스 예방정책을 실시하고 인권보장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홈리스 상태는 분명 빈곤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법과 제도적으로 이들을 범죄화하고 있다. 철도안전법이 ‘역 시설 또는 철도차량 안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질서위반행위로 금지하거나,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자율금지구역’과 ‘노숙인 순찰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개발이윤만을 위한 대책 없는 쪽방 철거 역시 임대료 상승과 그에 따른 노숙 전락과 같은 홈리스의 상태 악화를 빚어내고 있다. 또한 현행 노숙인 복지는 개인 정보 보호 장치나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권리구제 절차도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따라서 홈리스 상태를 초래하거나 악화되는  행태, 홈리스 상태 자체가 차별이 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내용을 법률에 반드시 적시해야 한다.


  셋째, 거리 홈리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행 노숙인, 부랑인 지원체계는 철저하게 시설입소 중심이다. 거리 노숙현장 지원 서비스를 위해 설치된 ‘상담보호센터’ 역시 응급잠자리 제공과 같은 기능을 중심으로 입소 유사 형태의 시설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설 중심의 지원체계는 거리홈리스에 대한 시설입소 종용을 기본으로 하고, 현 실태는 거리 중심의 서비스를 줄이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거리홈리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의 수를 사전 예고조차 없이 절반, 또 절반으로 삭감하고 급여 역시 월 4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명의 도용범죄, 인신매매, 폭행 등 거리 노숙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행위에 대한 치안대책이 전무하여, 거리 홈리스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서 이중 삼중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의료지원, 무료급식 등 거리홈리스들에게 필수적인 지원조차 미진하거나 누락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리홈리스에 대한 열등처우는 시설입소로 귀결되지 않을 뿐 거리사망과 같은 극한의 상황만을 재연할 뿐이다. 따라서 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견인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홈리스 지원법, 홈리스의 손으로!
 
  지난 3월 3일, 국회 앞에서는 홈리스지원법 제정 청원인(홈리스 당사자) 80여 명이 모여 현실적인 홈리스 지원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청원인들은 홈리스 생활인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홈리스 현실에 기초해야 하며, 홈리스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함을 주장했다.    사진 설명 : 3월 3일, 국회 앞에서 열린 ‘홈리스 지원법 제정 청원인 대회’ 모습


  우리는 홈리스 지원법 제정 청원 서명운동, 청원 서명인대회를 시작으로 1,531명의 홈리스 청원인들은 물론 전국의 홈리스 당사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힘을 바탕으로 홈리스들을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자 한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노숙 현장에 와서 홈리스 당사자들에게 현장 설명회, 공청회를 갖게 하고 당사자들의 요구를 청취하게 할 것이다. 또한 현재 부산지역에서는 홈리스 당사자 조직이 1인 시위를 준비하고 있듯, 다양한 방식으로 홈리스들의 요구를 표출하고 국회를 압박하고자 한다. 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법이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 졌는가’ 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설 중심의 정책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홈리스 상태가 게으름, 의지부족과 같은 도덕적 결함의 산물이라는 오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올 봄 홈리스들은 국회보다 뜨겁고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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