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3-10   1179

[칼럼] 최근 정치권의 ‘복지국가’ 논란을 지켜보며

정원오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복지국가 논의가 뜨겁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치른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한나라당을 포함하여 보수진영은 무상급식을 복지포퓰리즘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인기에 영합하여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난하며 반대하고 있다. “부자 집 자식에게까지 공짜 밥을 줄 필요가 있느냐, 가난한 집 자식에게만 무료급식하자, 왜냐하면 재정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무상급식은 인기에만 영합하고, 예산은 걱정하지 않는 무책임한 야권의 주장에 불과하다……” 등등이 보수진영이 사용하는 주요 레토릭이다.


  최근에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서울시 의회와 서울시장이 벌이는 갈등은 보편주의적 방식(무상급식 찬성)과 선별주의적 방식(무상급식 반대) 간의 대립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서울시 의회가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을 통과시킨 반면, 서울시 행정부(시장)는 그 예산을 받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산액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도 있는 국민투표(무상급식 실시에 대한 서울시민의 찬반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한다.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반대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사회복지정책을 둘러싸고 이렇게 정치집단 간 대립이 첨예하게 전개된 적은 없었다. 대체로 선거를 앞둔 정치시즌이 도래하면, 모든 정치집단들이 사회복지를 많이 하겠다는 경쟁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면서 사회복지는 선거의 중요 쟁점을 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선거가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경제 살리기’ 등의 주요 이슈에 밀려 복지는 부차적이거나 심지어는 장식품으로서, 정책자료집의 일부를 차지하곤 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없는 낱말들로 나열하여, 실행여부나 진실성을 확인하기도 곤란하였다. 예컨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후보의 정책공약집을 보면 사회ㆍ복지분야에서 차별성을 찾기 어렵다. 두 정당 모두 의료보장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의료보장성을 높이겠다고, 대학생 등록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교육복지에 앞장서겠다고, 아동 보육비용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약의 진실성과 실행가능성에 대해서는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주장이 선거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대기업 CEO출신을 우리는 대통령으로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 정당의 복지공약의 실현에 대해서는 언론이 자세하게 조명하지도 않았고, 또 국민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집단들에서 대두되는 복지국가 논의는 이전의 경향과 매우 다르다. 대선을 2년이나 앞두고, 선거용 정책 장식품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핵심쟁점으로 복지국가가 대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박근혜의원이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통해 발표한 ‘한국형 복지국가’는 현재의 복지국가 논쟁의 촉발제였다.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계열이 주도하고 있는 개헌 논의에서 슬쩍 비켜나, 다음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후보인 박근혜의원 진영이 제기한 복지국가 논의는 다음 대선의 주요 정치적 쟁점으로서 복지국가를 부각시키는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보수진영에서 사용하는 복지담론보다는 구체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보수진영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복지전략의 최대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방향성도 선명하였고,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박근혜의원측이 주장하는 복지국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형 생활보장국가’로 대변된다. 기존의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작거나 큰 복지국가가 아닌 좋은 복지국가이며, 사후적 소득보장국가에서 예방적 생활보장국가이며, 경제성장에 친화적인 복지국가이며, 시장대체적인 국가의 역할이 아닌 균형적인, 통합관리자로서의 국가역할이 수행되는 복지국가이다. 한마디로 복지를 소비적이고 낭비적으로 보지 않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종의 투자의 개념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일부의 평가에 의하면, 사회서비스를 강조하고, 사회투자국가의 개념을 도입한 노무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여하튼 보수진영에서 제안할 수 있는, 또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이 있는 복지국가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박근혜의원측의 ‘한국형 복지국가’에 대응하여, 야당진영에서의 첫 반응은 다소 당혹스러워 보였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야당의 전유물이어야 할 복지담론, 분배담론을 선점 당하였다는 당혹감 속에서, 민주당의 반응은 해를 넘겨 금년 1월 6일과 13일에 등장한다. 1월 6일 ‘실질적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추진’이라는 제목으로 무상 의료보장제도를 들고 나왔고, 이어서 13일에는 의료보장에 더하여 소위 ‘보편적 복지 3+1정책’으로 완결판(?)을 발표하였다. 무상의료(엄밀한 의미에서 무상은 아니지만), 무상보육, 무상급식의 3가지 무상시리즈와 ‘대학생 반값 등록금 실현’ 방안을 더하여 3+1로 브랜드화 하였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선별적 복지에 대응하여 야당과 진보진영의 보편적 복지가 맞불작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보편적 복지이든 선별적 복지이든 복지가 정치의 주요 쟁점이 된다는 점은 정말로 반가운 현상이다. 개헌, 지역갈등, 북핵 등의 정치쟁점에서, 혹은 구체성이 없는 서민정책, 경제 살리기에서, 진짜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이 정치 쟁점의 일선으로 부각된다는 점 그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정치소비자로서, 일반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주의해야할 일이 있다. ‘유사상품’에 속지말자는 것이다. 다음 선거에서 복지국가가 쟁점이 된다면 어떤 복지국가 상품을 구매할지 주의해야 할 일이다. 정치상품은 내구연한이 길어서 한번 구매하면 5년 혹은 4년간 후회하면서 살아야 한다. 선별적 복지국가이든 보편적 복지국가이든 복지국가이기 위해서는 서민의 복지를 위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대학생 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학 재정의 절반정도를 지원해야 한다. 의보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아동 보육 부담을 덜기 위해서, 주거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모든 복지정책들은 국가 재정의 투입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국가가 앞장서서 복지정책을 시행하는 복지국가이기 위해서는 그렇다. 재원이 부족해서 하고 싶지만 못한다고 변명하는 정당과 정권은, 복지국가를 실현할 의사가 원래 없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유사상품이다. 진짜 복지국가를 추진할 정치집단을 고르는 일이 우리 앞에 전개될 모양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유사상품에 주의하자. 


– 이 글은 3월 성공회대학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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