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의 글

경기가 좋아졌다고들 하고, 과소비를 걱정하는 소리도 심심치않게 들립니다. 넘쳐나는 돈들이 주식시장을 달구고, 아파트 청약에는 웃돈을 노리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위기'는 어느 새 끝난 듯 보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이제 경제위기의 질곡을 슬기롭게 헤쳐 나온 것인가요.

그러나 한켠에서는 여전히 실직자가 넘쳐나고, 노숙자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계층간의 빈부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고, 정부가 중산층을 보호· 육성한다는 정책아닌 정책을 밝혀야 할 정도로 사회통합의 틀이 흔들립니다. 날카로운 구조조정의 칼날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겨누고 있고, 그래서 노동자들의 항의와 저항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한 경제회생이고 구조조정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고, 가족을 무너뜨리며, 사회의 해체를 촉진하는 것이라면, 회생되는 경제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경제"일 뿐입니다. 설마 영국의 대처정부가 남긴 유산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를 들면 유럽 국가 중에 가장 높은 범죄율 같은 것 말입니다.

경제회복과 위기 탈출을 공언하는 마당에 오히려 사회적 위기가 다가드는 역설적 상황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그 위기는 무엇보다 우리 삶의 본질에 곧장 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복지동향」은 계속해서 사회적 연대의 바탕 위에 삶의 질을 문제삼을 작정이지만, 이러한 시기에 더욱 짐을 무겁게 질 수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이번 호에서는 경제위기의 타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가족복지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구구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이도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가족은 사회 구성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복지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경제위기와 함께 온 가족 해체의 위기, 어떤 문제가 있고 복지 측면에서 어떤 과제가 있는지 같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는 개혁과제들도 다시 점검합니다. 기초생활보장법, 국민연금 등의 과제에 변함없는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나 관계 공무원만으로는 이런 과제들이 제대로 수행될 리 만무합니다. 참여와 감시가 개혁정책들을 끌고 갈 것입니다.

복지의 범위는 매우 넓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이번 호에는 생명윤리, 정신보건 등 중요하지만 자주 다루어지지 않았던 영역이 추가되었습니다. 또, 특별히 현장의 소리를 담아서 실제와의 긴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복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복지동향」의 안정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안정은 곧 안주와 나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늘 새로워지고 깨어있기 위해서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매서운 비판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99. 5.

김창엽/편집위원·서울대 의대 교수

김창엽/서울대 의대 교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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