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2-01   391

[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68호

편집인의 글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동향 편집위원

 

공간은 산다는 것 곧 존재함의 조건이다. 대면을 경계해야 하는 오늘의 낯선 상황은 공간을 향한, 관성적 사유를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요구한다.

 

공간이 담아내는 것은 유한의 경계를 넘어 무한으로 확장된다. 공간을 규정하던 물리적 요소를 거두어내고 가상의 세계로 공간을 연 인간의 시도는 어쩌면 공간에 담긴 ‘접촉과 교차’의 가능성을 초시간적, 초이동적으로 확장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접촉과 교차가 만든 관계와 그 안에 내재된 자원이 시간의 힘을 빌려 숙성되고 축적된 공간은 그래서 삶의 기둥과 들보의 결구이고, 삶을 담은 틀이다.

 

존재의 방식은 공간을 통해 구성되고 구체화된다. 이주가 가볍지 않은 긴장과 불안을 동반하는 이유는 터 잡은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관계의 상실과 자원의 소멸, 낯선 관계로 들어섬과 새로운 자원의 탐색을 비롯한 존재 방식의 재구성을 불가피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존재함을 가능하게 하고 존재의 방식을 구성하는 생활공간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로 인정되고 권리로 보호된다.

 

그런데 생활하는 공간을 선택할 자유가 결박되고 당연한 권리를 유보당한 적지 않은 규모의 개인이 공존한다. 독립적 삶, 자존의 규범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떤 이에게는 접촉과 교차의 기회조차 소거된 시설만이 삶의 공간으로 허락된다. 강자가 약자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는 폭력적 관습이 보호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살아갈 공간을 제한하고 강요하는 것은 존재의 방식을 통제하고 존재를 왜곡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호를 이유로 합리화되어온 시설, 이제 낯선 시선으로 돌아봐야 한다. 

 

이번호는 탈시설을 주제로 한 네 개의 원고로 기획 세션을 구성했다. 첫 번째 원고는 EU의 탈시설정책 추진 원칙과 미국의 HCBS 기준 등 탈시설의 이념과 지역사회거주 권리를 논의했다. 두 번째 원고에서는 거주와 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헌법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탈시설지원법의 필요성과 관련 쟁점을 다루었다. 세 번째 원고는 코로나로 촉발된 시설보호의 한계와 민낯을 살펴보고 탈시설 운동의 현황과 쟁점을 분석했다. 끝으로 탈시설을 위해 선제 되어야 할 조건으로서 지역사회돌봄의 쟁점과 과제를 짚었다. 동향에서는 낙태죄 폐지의 의미와 향후 과제, 그리고 장애인시설의 코호트 격리 중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복지톡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진단과 예방을 위한 대안을 주제로 진행했다.

 

강과 바다만이 섬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접촉과 교차, 만남과 스침이 단절된 공간은 섬과 다르지 않다. 의존을 이유로 사회가 만든 섬에 갇힌 빠삐용이 없는 내일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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