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1 2021-01-01   1229

[동향2] 예술인과 예술인 고용보험

이씬정석 음악노동자, 뮤지션유니온 조합원

 

예술인?

조금 뻔한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예술인’하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조수미가 떠오르시나요? 소설이나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과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셨겠지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봉준호 감독이나 배우 송강호가 생각나셨을 것이고, 아메리카 뮤직 어워드(AMA)에서 수상하고 빌보드 챠트를 점령한 방탄소년단(BTS)을 떠올린 분도 계실 겁니다. 이미 사후세계에 있는 베토벤, 고흐, 미켈란젤로가 떠오르셨을 수도 있겠네요.

 

<사진2-1> 오케스트라와 협연 중인 성악가 조수미

Asu2GgifHESwocaiAN8ZE1VUMFVC9BuNvoILGsgV

*출처 : 월간조선 2009년 12월호

 

이제,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는 크고 화려한 예술의 전당 무대를 상상해보세요. 함께 연주하는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도 보이시나요? 혹시, 그 무대 오케스트라 뒤편에 자리한 수십 명의 합창단과 그 안에서 노래하는 베이스파트 성악가가 떠오르셨나요? 그럼, 연주자의 보면대를 세팅했던 무대 스태프와 공연장 조명을 관리하는 스태프는 어떤가요?

<채식주의자>와 소설가 한강을 떠올리신 분은 소설책 표지 디자인을 기억하시나요? 그 디자인은 누가 했을까요? 그 책을 기획하고 출판한 편집자는 어떤 분일까요? 소설 <채식주의자>가 2007년 출판되던 해, 같은 출판사 ‘창비’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은 어떤 분들이 계실까요?

오스카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씬 중에서 피 칠갑으로 뒤덮인 마지막 가든파티에 출연한 단역배우들과 쏟아지는 빗물과 홍수에 잠긴 골목을 실제처럼 만들어낸 컴퓨터그래픽 편집 스태프들과 이런저런 소품을 챙기는 미술팀 스태프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자 그럼, BTS가 1위를 차지한 빌보드 차트 100위 밖, 멜론차트 100위에 들지 못한 노래들을 만든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 연주자, 가수들은 어떤가요? 「기생충」이 전체 극장 스크린의 33.8%를 점유했을 때 독립영화 상영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하고 있던 영화와 그 영화의 감독, 출연한 배우와 스태프, ‘창비문고’에서는 본 적도 없는 소설가, 시인, 작가들과 이름이 낯설고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며 편집하는 분은 누구일까요?

이외에도 다양하게 확장되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분들이 모두 다 ‘예술인’입니다. ‘예술인’이라는 말에 당신이 떠오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한국의 법에서는 예술인의 정의를 표와 같이 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인데 이 법은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r0oYUKB5A4T7DNaRwCIYE2qTc8a7qWHu9ou5xIPP

예술인의 빈곤과 사회안전망

그런데, 예술인은 가난할까요? 예술분야를 전공하거나 종사하는 분들은 다들 부자인 것 같은데, 왜 예술인은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사회학자 빅토리아 D. 알렉산더는 『예술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예술가의 경력이 위험하고, 성공한 예술가든 실패한 예술가든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진단하면서 예술가는 예술계에서 경쟁 우위를 얻고,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 자기착취(self-exploitation)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동연(한예종 교수)는 음대, 미대 등 예술 전공자를 비롯해 대다수 예술인들이 단기계약, 하청계약으로 저임금시장에 내몰려있어 예술인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프리카리아트, precariat)라고 주장합니다.

 

AgDEOkcnjCCTdTi9AoG3wYT5LEMWPYJu2UsTwwl8

실제로 정부의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예술인의 평균소득이 1년에 1,281만 원으로 조사되었어요. 전체 예술인의 소득을 하나씩 늘어놓으면 가운데쯤 위치한 중앙값은 300만 원 정도여서 한 달에 25만 원의 예술 활동 수입을 얻는 게 가장 평균적인 상황입니다. 56.2%의 예술인은 한해 예술 활동 소득이 500만 원 이하였고 심지어 소득이 없다고 답한 사람이 28.8%였습니다, 물론 일부 연예인들은 엄청난 돈을 번다고 하죠. 국세청 현황자료에 따르면 연예인들도 상위 1%가 49%, 상위 10%가 88%의 수익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또, 유명한 작가나 예술계 교수들의 생활수준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들이 예술인의 평균소득을 올리고 있구요.

왜 예술인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돈도 안 되며 직업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유럽비교문화연구소(ERICarts)는 2006년 보고서에서 예술가들이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이유가 딱 정해지지는 않아도 돈이나 직업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창의(創意)을 표현하려는 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술인들은 자신이 느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예술로 창조하는 직업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문화예술계에는 근로계약을 맺고 회사나 누군가에게 고용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전에도 4대 보험에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작가들, 프로듀서들이 모두 근로계약을 맺고 고용안전망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쪽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단체협약을 맺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계약기간에 맞추어 4대 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학교예술강사들도 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계약을 맺고 4대 보험에 가입합니다. 이처럼 예술인들도 4대 보험을 적용하자고 요구해 추진된 것이 <예술인 고용보험>입니다.

 

<그림 2-2>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 캡쳐

k6VGsU1R7EJL3hpRv3WT1MSLKYDEuQ98YT63Hlu0

 

예술인 고용보험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승리한 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우선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전국민 고용보험’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식물’이던 20대 국회는 시혜적으로 예술인만 산입시키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습니다. 6개월이 흘러 법이 발효된 2020년 12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SNS에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를 본격 시행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의 글에 등장하는 “사각지대에 있던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을 돕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취지에 지금의 제도가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예술인을 법으로 정의한 『예술인 복지법』에는 ‘문화예술용역’이라는 항목이 있어요. 이번에 시행된 『고용보험법』-예술인 특례조항에 따라 바로 이 ‘문화예술용역계약’으로 예술인들이 적용받게 됩니다. 말이 좀 복잡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 ‘용역계약’을 맺고 소득이 있으면 가입해 기간이 채워진 후 예술인 급여를 신청해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계약을 맺고 월평균 소득이 50만 원 이상이면 고용보험에 가입(한 달 이내의 짧은 활동은 별도의 방법으로)을 인정해 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24개월 중 9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고 수급자격을 얻으면 가입 기간에 따라 120일~270일간 구직급여를 받는다고 하니 참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현실적 문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보험 신고를 회피할 구멍이 큽니다. 사업주도 예술인도 계약서를 쓰는 게 귀찮고 소득액을 드러나는 게 부담됩니다. 여기저기서 보험 가입 신고, 보험료 징수가 제대로 안 될 거라며 근본적 약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고용보험료를 사업주(0.8%)와 예술인(0.8%)이 반씩 나눠 내는 구조로 사업주가 원천 공제해 납부하고 예술인에게 차액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1천만 원 개런티의 공연을 하면 주최 측이 예술인 몫 보험료(공연비의 0.8%인 8만 원)를 원천공제 후 지급하고 사용자 몫 8만 원을 보태 16만 원을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고 납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술 계약을 한 번이라도 체결해 본 경험이 있는 예술인은 전체의 42.1%1)에 불과할 정도로 계약서 작성이 안 되어 왔습니다. 현재, 국세청 시스템으로 아직 예술계 소득을 다 추적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제도가 필요한 예술인들은 정작 적용받을 수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는 고정형(固定形) 노동자를 모델로 설계한 고용보험에 유동형(流動形) 예술인을 억지로 맞추다 보니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저작권 양도 인세 계약을 맺는 작가, 자신의 작품 전시하는 화랑과 임대 계약을 맺는 화가, 만화를 그려 포털에 납품하는 웹툰 작가, 도급으로 하청받아 납품하는 ost작곡가 등 수많은 예술인이 대상에서 제외될 거랍니다. 또 영화, 공연,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문화산업 노동자, 학원이나 사회문화시설에서 일하는 문화예술교육 강사, 책 편집·디자인·일러스트를 하는 출판분야 외주 노동자, 보도 분야 방송작가(드라마, 예능, 교양 부문은 예술인, ‘보도 부문’만 아님) 등은 『예술인 복지법』의 예술인이 아니라서 빠진답니다. 또, 1년 중 어느 달에만 집중해서 소득이 있고, 다른 달에 소득이 없다면 24개월 중 9개월을 채우기 어렵구요. 어렵게 계약을 맺고 한 달에 10일을 공연해도, 주말마다 8일 동안 하루에 3번씩 월 24회 공연을 해도 날짜를 채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마치 제도가 절실한 예술인을 배제하려고 만든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막 시작한 예술인고용보험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이 정책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크기 때문입니다. 예술인고용보험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예술분야 노/사관계 확인’과 ‘계약서 작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를 비롯해 많은 예술인단체/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요구해왔던 것은 ‘생색내기용(用)’이 아니라 ‘실효적인 고용보험’입니다. 기존에 교수, 교사나 문화예술시설 종사하는 예술인들과 고소득 예술인들은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관심이 적을 수 있습니다. 이 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예술인은 예술을 하고 있어도 늘 불안정하고, 그에 따른 보수가 적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적합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 막 시작한 「고용보험 예술인 특례제도」를 예술현장에 알맞은 방식으로 정착하려면 제도를 평가하고 개선과제를 합의하는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위원회」의 위원으로 예술인 당사자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만약 10명이 일하는 당신의 직장에서 1명(10%)이 88%의 수익을 차지하고, 9명(90%)이 남은 것을 나누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예술인의 빈곤은 예술인이 선택한 빈곤이 아니라, 사회가 구조적으로 방치한 빈곤입니다.


1) 문화체육관광부, 「2018년 예술인실태조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