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5-03   910

‘장애인 차별행위’ 인정하지만 구제조치는 NO!

국가인권위진정 1호 사건 결정에 대한 견해
[ 주 문 ]

1. 피진정인이 피해자를 제천시 보건소장의 임용에서 배제한 행위는 신체조건(장애)을 이유 로 피해자의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행위로 인정한다.

2. 피진정인은 제천시 행정과 관련하여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적 제도와 정책이 있는지를 조사하여 이를 시정하고, 신체적 약자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위 주문은 지난 4. 14(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 출범 후, 진정 제 1호 사건으로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제천시장의 보건소장 임용과정에서의 장애인차별>에 대한 인권위원회의 결정내용이다. 얼핏보면, ‘차별’임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제대로, 잘 해결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인지 15일자 일간지는 일제히 ‘국가인권위원회 진정1호 사건 장애인 차별인정’을 제목으로 다루고 있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잘 해결되었군”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문의 내용과 결정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5개월간에 걸친 조사결과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보장’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왜냐하면 ‘차별’임은 인정하지만 문제를 제기한 개인에 대해서는 전혀 구제방침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위원회의 첫 차별 인정, 실효성은 없어

이번 진정의 목적은 ‘장애’를 이유로 의도적으로 승진대상자에서 배제되었으니 차별임을 조사하여 인정하도록 하고 원상회복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2조(조정) 제4항을 살펴보면, 조사대상의 인권침해행위 중지, 원상회복, 손해배상, 그 밖의 필요한 구제조치, 동일 또는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결정문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은 ‘강제 시정명령이 아닌 권고조치’만 할 수 있는 법, 제도의 한계를 넘어서, 할 수 있는 ‘권한’조차 행사하지 않은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보여질 수밖에 없다.

‘인권’이라고 하는 문제는 개인이 침해당한 권리를 구체적으로 구제하여 회복한다는 차원이 일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정작 차별을 받아 상처투성이로 남아있는 당사자를 배제하고 ‘앞으로는 차별하지 말고 잘해라’는 의미는 어느 단위에서든 할 수 있는 결정이며(이 사건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차별임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국가기구로써 제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진정사건 처리과정의 문제점

그렇다면 조사결과 차별임이 인정되어 조정위원회에 회부되고 전원회의에서 결정문이 발표되기까지의 과정과 내용들을 통해 문제점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인권위의 차별행위 구제절차를 살펴보면, 조사결과에 따라 차별임이 인정되었을 경우 조정위원회에 회부하여 피해자와 피진정인간에 합의를 진행시킨다. 여기에서 진정인(김용익교수/서울대 의대)과 피해자(이희원/춘천소년원 의무과장)는 ①부당 인사조치철회와 원상회복 ②사과광고문 게재 ③시장직 사퇴 및 불출마선언 3가지의 구제조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조정위원들은 원상회복과 시장직 사퇴, 불출마 선언은 인권위 권한 밖의 문제라고 전제한 후 두 번째 요구사항 즉 사과문 게재에 대해서만 수용할 수 있다며 진정인과 피해자에게 초안을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인권위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문 초안을 작성하여 피진정인인 권희필 제천시장에게 넘겨주었고, 시장은 그 자리에서 검토를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 와 2차 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거의 2주일이 지난 2차 조정위에서 피진정인(권희필 제천시장)은 ‘사과문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마저도 거부했고 이로써 조정 결렬, 최종 전원회의에 올려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첫째, 법 제42조(조정)에 의하면, 조정위는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으로 원상회복, 손해배상, 그 밖의 구제조치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왜 ‘사과문 게재’만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진행을 했는지 여부, 둘째,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 후에는 이의신청이 가능하지만 전원회의 결정은 사건종료의 의미로 더 이상 문제제기 등을 할 수 없는데, 이러한 상황을 진정인과 피해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진행한 점, 셋째, 조정위에서 논의되었던 ‘사과문 게재’ 자체가 왜 전원회의에서는 전면 부정되었는지 등이다.

인권위 권한, 스스로 축소시킨 것

그럼, 결정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문제점과 의미를 살펴보자.

결정문에서는 ‘차별’임이 인정되지만 진정인과 피해자가 요구한 3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① ‘차별행위’만으로 제3의 보건소장 임용처분을 취소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② 사과광고문 게재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헌재의 위헌결정판례 적용)

③ 시장직 사퇴 및 불출마 선언은 인권위 권한 밖의 문제이다

그러나 1항의 경우, 차별임이 인정되었다면, 차별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단계로 되돌리도록 하는 명령은 가능할 것이다. 현재의 보건소장 지위와는 별개의 문제로 인권위가 차별 이전에서 다시 승진임용검토를 명령하게 되면 인사권한을 갖고 있는 충북도나 제천시 차원에서 충분히 다른 대안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현재 보건소장이 자리를 비우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입장과는 다른 관점). 이는 지난 1월 충북도와 공대위의 간담회에서 충북부지사가 “인권위의 결정이 내려지는 대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차별임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구제를 하거나 명령할 수조차 없다면 이는 인권위 스스로가 권한을 축소, 혹은 소극적 의지 표명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2번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받아들이기로 조정위에서 논의되었던 사항이다. 그런데 최종 전원회의에서 결정이 번복되었다. 또한 사과권고는 차별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표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밝힌 ‘양심의 자유, 당사자의 자발적인 윤리적 판단’이라고 인정했다는 것은 ‘인권’이 다른 권리와 상충될 때, 즉 장애인차별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권리보장보다는 인사권 인정 쪽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권리의 상충에서 어느 편의 입장에 설 것인가의 문제는 ‘인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근본 문제와도 관련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헌재의 결정은 강제적으로 사과문을 게재하는 조치 및 행위가 부당하다는 것이지, 권고 자체가 문제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는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을 침해하는 허위 조작 한 증거자료 제출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나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63조(과태료)에 의하면 거짓자료를 제출한 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5개월간의 조사과정에서 현장 조사,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분명히 사실관계가 드러났고, 제천시장이 제출한 자료가 인사결정 이후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에 결정에 영향을 미친 자료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피진정인이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점등이 고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보완 의견 제시했어야

이 밖에도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차별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복지법, 고용촉진법 등 관련 법에 차별금지 조항이 있어도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점등을 짚어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제도보완에 대해 의견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 법, 제도의 정비를 통한 인권보장은 인권위 설립목적중의 하나이다. 장애인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어떠한 대안적 모색도 부족했다는 것 또한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권위가 어떤 결정, 조치를 내릴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많은 장애인, 시민, 인권단체들은 큰 좌절과 실망감만을 안게되었다. 인권위원회는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기구이다. 이렇게 실제적인 구제조치 없이 ‘차별’임을 선언하는 정도의 결과밖에 내놓지 못한다면 누구도 인권위에 진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민사나 형사 등 소송으로 해결하면 오히려 더욱 분명하고 빠르게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사법기구가 아니다. 인권위 구성원들은 사법적 판단을 뛰어넘는 인권감수성, 인권개념 등을 보다 분명히 하여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차별받고 인권을 침해당하는 위치에 놓여질 수밖에 없는 피해자입장에서 보다 적극적 활동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여준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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