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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0
  • 2010.12.10
  • 903
이진석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교실




진보의 논리, 보수의 논리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이 여러모로 헷갈리는 것 같다. 명백한 보수의 논리가 진보의 논리인 양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 보수의 논리를 강변하기도 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건을 계기로 ‘(가칭)의료구제모금회’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견, 빈곤층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의 가상한 노력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구제모금회’는 명백한 보수의 논리이다. 2007년 198만명(전체 국민의 4.1%)에 이르던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2010년 175만명(전체 국민의 3.6%)으로 줄어들었고, 2011년에는 173만명(전체 국민의 3.5%)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의료사각지대의 급격한 확대는 이 같은 정부의 의료급여 수급권자 축소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빈곤층을 무더기로 의료사각지대에 내몰아 놓고, 국민 모금으로 의료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의 일부를 구제해 주자는 것이 ‘의료구제모금회’의 본질이다. 소외계층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국민의 손길은 한 없이 소중하고 따뜻한 것이지만, 여기에 기대어 사회권으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를 시혜의 대상으로 강등시키려는 정부의 발상은 얄팍하다 못해 구차하다.

얼마 전,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부모 부양은 가족이 맡는 것이 옳다”는 요지의 국무총리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이런 주장은 보수의 논리에도 끼지 못하는 무대뽀 수구의 논리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멸종할 논리이다. 요즘에는 보수도 복지 확충을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세련되게 어깃장을 놓는다. 복지재정을 확충하자고 하면, 우선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는 립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그러고는 각종 선결조건을 열거한다. 단골메뉴가 ‘전달체계 개선’과 ‘지출 효율화’이다. 각종 사례와 경험을 들이대면서,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전달체계와 지출구조를 내버려두고서는 복지재정을 확충해도 소용없다고 주장한다. 어느새 복지재정 확충 의제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전달체계와 지출구조 이야기만 무성하게 오고가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처럼 흩어진다.

복지와 의료 영역에서 전달체계와 지출구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이것을 복지재정 확충과 경합을 다투는 것처럼 인식하는 순간, 그 사람은 보수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게 된다. 보수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기존 제도만 효율적으로 운영되면, 굳이 복지재정이 확충되지 않아도 되는 양 이야기하기도 하도, 심지어는 복지재정 확충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을 부추기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전달체계 개선과 지출 효율화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복지재정 확충은 진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를 들이대든, 복지재정 확충에 유보적이거나 복지재정 확충을 위한 사회적 기반과 국민적 공감대를 훼손하는 행위는 더 이상 진보의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망각하면, 진보의 껍데기를 쓴 보수가 되기 십상이다. 

진통 끝에 새 생명이 빛을 보듯,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한 진보의 비전과 담론이 거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구의 무대뽀 주장과 보수의 세련된 어깃장도 큰 장애물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채 구호만 난무하는 낡은 진보의 이념도 극복의 대상이다.

진보란 이념이 아니라 ‘민생을 안정되고 풍요롭고 만드는 실천’이다. 이념으로 세상의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민생으로 세상의 편을 갈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의 창이 아니라 민생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럴 때,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한 참 진보의 전망이 만들어진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보수의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스스로 진보라 안도하지 말고, 내 안의 보수의 논리가 무엇인지 곱씹어 보자. 진통 없는 출산 없듯이, 성찰 없는 진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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