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9-10   1040

최저임금제도 이렇게 고쳐야 한다

최저임금제는 임금의 최소 수준을 정해, 사용자가 그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률로 강제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1987년에 최저임금법이 제정되어 1988년부터 15년째 최저임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최근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있고, 이른바 “일하는 빈곤”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제는 중요한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2002년 9월부터 최저임금 월51만원

그러나 현행 최저임금은 무엇보다 그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노동자들의 최소 생계 보장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상황이다. 2002년 9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은 월 51만원(시급 2,275원)으로 노동자의 생계를 위한 금액으로는 턱없이 낮다. 전년도인 2001년 3인 가구 실태생계비 187만원의 27%,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 OECD가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는 빈곤선을 전체 노동자 중위임금의 2/3로 정하고 있고, 최저임금을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 정도 내외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에 비하면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지나치게 낮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유명무실하게 되는 데에는 최저임금제도와 최저임금결정구조의 탓이 크다. 따라서 최저임금 수준에 못지 않게, 나아가 적정한 수준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최저임금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과 중기 정책 목표 설정

우선 사회적 공론화를 바탕으로 해서 최저임금 결정의 기준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는 최저임금 수준의 결정기준으로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최저임금의 심의 과정에서 이러한 결정 기준은 실종되고 전년 대비 인상률 싸움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올해의 최저임금 결정이 가장 전형적인데, 사용자측 위원이 제시한 전년 대비 8.3% 인상안에 대해서 공익위원들 다수가 찬성해 결정되어 전체 노동자 임금이 두 자리 수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낮은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을 더욱 떨어뜨리게 되었다.

결국 최저임금이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되고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결정의 기준을 명확화,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이에는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의 최저임금 결정기구는 “상대적 저임금 해소, 임금격차 축소, 소득분배구조 개선”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목적에 충실할 수 있고, 생계비와는 달리 그 산정방식이나 금액을 둘러싼 논란이 불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비교 가능한 임금” 즉 일반 상용직 노동자 임금 평균(또는 중위임금)에 대비한 일정 수준”을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OECD 는 상대적 빈곤선(저임금)을 “상용직 중위임금의 2/3로 정의하고 있고,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서유럽 국가는 상용직 중위임금의 1/2∼2/3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도 최저임금이 상용직 중위임금의 40∼50% 수준에 분포하고 있다. 2001년 기준 한국의 최저임금은 상용직 노동자 임금평균의 3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도 매년 전년 대비 인상률 다툼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취지나 목적에 부합되는 중기적 정책 목표를 가지고 이에 근접해 가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정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예를 참고한다면 우리 사회의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은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의 절반(50%)을 최저임금 수준의 중기적 정책 목표로 하여 매년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을 상회하는 인상률로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최저임금 운영의 민주화

최저임금위원회 운영의 민주화도 시급하다.

현행 최저임금은 노·사·공익대표 각 9명씩 모두 27명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심의와 의결로 결정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조상 최저임금 결정에서 공익위원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따라서 공익위원의 중립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현행 공익위원 선임은 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하게 되어 있어 중립성과 신뢰성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공익위원의 중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공익위원 선임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국제노동기구(ILO)는 노사 동수의 대표로 구성하고 1인 또는 2인 이상의 중립자를 두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시에 중립자는 가급적 임금결정기관의 노사 대표자와 합의하여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차용한다면 공익위원의 선임 방식에 있어 노사단체의 합의에 의거한 선임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성위원도 극소수인 것도 문제이다. 현재 공익위원 9명 중 여성 비중은 1인에 불과하다. 다수의 여성 노동자가 최저임금에 해당되는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과 여성할당제를 고려한다면 공익위원 9명 중 최소 3명 이상은 여성위원으로 선임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 위원 선임시에도 여성의 비율을 30% 이상이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노동자 위원에 비정규 대표가 참여하거나, 최소한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 대표와 협의하거나 관련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회의 운영의 공개와 민주화도 요구된다. 최저임금은 그 의제의 중요성에 비해 이의 심의, 의결 과정과 운영은 민주적,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회의의 참관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회의록을 완전 공개하고 각계의 증언을 듣는 등 민주적, 공개적 운영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절실하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 확대

현행 최저임금은 적용 대상에서도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어 낮은 수준의 최저임금조차 적용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상당수에 이른다. 따라서 이러한 제한을 폐지하거나 축소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적용 제외 대상의 대부분은 오히려 최저임금제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취약한 층이어서 이는 더욱 절실하다.

우선 현행 법은 감시·단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 “감시업무”란 “수위·경비원 등과 같이 단순한 감시업무를 주업무로 하여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이며, “단속업무”란 “전용운전사·각종 수리공 등과 같이 근로의 형태가 간헐적·단속적으로 이루어져 휴게시간 또는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를 말한다. 이들 감시·단속적 노동자는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악용의 소지가 있다. 또한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감시·단속적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을 적용제외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다. 따라서 감시·단속적 업무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정신신체장애 혹은 양성훈련자의 최저임금 적용 예외 규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일괄적인 적용 제외보다는 명확하게 사유를 제한하고 이에 따라 최저임금을 감액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OECD 17개국 중 △장애인의 경우 적용제외 4개국·감액적용 3개국 △실습생·훈련생의 경우 적용제외 6개국·감액적용 4개국이다.

시용 노동자의 적용 예외 규정도 폐지해야 한다. 시용은 정식 채용 전에 시험적으로 사용하는 근로형태이다. 이 경우 실습생, 훈련생과는 달리, 비정규 고용의 성격이 강하고, 고용상황 악화에 따라 인턴사원 등 시용의 성격이 강한 고용형태의 남용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의 적용이 필요하다.

취업기간 6개월 이하 18세 미만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액의 90%만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연소자들에 대한 6개월 미만의 단기계약이 확산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조항이 연소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차별의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18세 미만자의 생계비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더 낮거나 생산성이 낮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이들에 대한 법적인 차별을 두는 것은 위헌소지까지 있다.

이밖에도 가내노동법을 제정하여 최저임금이 가내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하고, 개인별 수입금까지 합산하여 최저임금의 기준으로 삼는 택시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방식을 개선하여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하는 등 최저임금이 가능한 한 예외없이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최저 임금의 적용시기를 현행 9월에서 1월로 되돌리고, 기준노동시간 단축 때 월정 최저임금이 축소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도 요구된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을 기대하며

한국의 최저임금은 15년 동안 시행되어 왔지만 최근까지 최저임금제는 사회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제도였다. 매년 7월경에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다음날 일간신문에 얼마로 결정되었다는 짤막한 1단 기사가 게재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심지어는 최저임금에 해당되는 대다수 노동자조차 도대체 자신의 임금이 어디에서 결정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토의와 감시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매년의 인상률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기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위에 제시한 최저임금제도의 개선보다, 최저임금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일지도 모른다. 저임금 노동자와 빈곤층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사회복지제도인 최저임금제에 그간 우리는 너무 무심해왔다. 최저임금의 수준과 제도 개선을 놓고, 온 사회가 토론과 논쟁으로 들썩일 날을 기대해본다.

주진우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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