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예산 2001-05-10   733

시민의 복지예산, 시민이 결정한다

시민의 복지예산, 시민이 결정한다

“최근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분께 물어보니 출산비용은 70만원 산후조리에는 10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분만수당을 30만원으로 책정한 게 현실성이 있습니까?”

복지예산안에 대한 이어지는 날카로운 질문들. 여기는 국회가 아니다. 10일 늦은 저녁시간, 참여연대 2층 강당, ‘시민이 바라는 2002년도 복지예산안 만들기'(이하 복지예산안 만들기)의 하이라이트인 ‘시민합의회의’가 열리고 있는 현장. ‘복지예산안 만들기’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복지예산 확보운동이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한계가 있다고 판단, 정말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낸 복지예산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준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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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안 만들기’는 지난 4월 28일, ‘전문가합의회의’를 시작으로 진행되어 왔다. ‘전문가합의회의’에서는 실제 정부의 보건복지부 등과 대칭되는 ‘시민복지부’를 구성하고 시민아동복지국, 시민주거보장국, 시민보건정책국 등 각 부서에 10여명의 관련 전문가 대표들이 배치되어 사업계획과 적정예산안을 편성하였다. 이 예산안에 대한 시민의 합의를 얻기 위해 인터넷 모집 등으로 12명의 시민대표가 구성되어 우리나라 복지현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각자의 생각을 토론하는 등 4월 30일과 5월 7일, 두 차례에 걸친 준비모임을 가져왔다.

▲ 예산심의

‘시민합의회의’에 참석한 각 부서 시민대표들이 예산안을 검토하고 있다. 12명으로 구성된 시민대표 중 8명은 인터넷 신청을 통해 선정되었고, 4명은 복지관련단체에서 추천된 회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날 열린 ‘시민합의회의’에서는 전문가 대표들이 담당한 각 부서의 사업과 예산에 대해 설명하고, 마찬가지로 각 부서를 담당한 시민대표들이 질의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주부, 사회복지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민패널들은 자신이 주변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또 자신이 조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시민합의회의에 전체 사회를 본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시민대표들이 3일전, 2차 준비모임에서 각 담당 부서가 주어졌는데 이토록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매우 전문적인 질문을 해주었다”며 시민대표들의 열의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하고 있는 시민기초생활보장국의 시민대표를 담당했던 배성균씨(49, 지한정보통신 근무)는 신문 스크랩 자료를 들어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가짜 빈곤층’ 문제도 있는데 예산의 적정성과 효율성이 고려되어야하지 않느냐”며 100% 예산 증액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시민기초생활보장국 전문가 대표 허선 순천향대 교수는 “우리나라 빈곤율은 가장 적게 잡은 통계도 전국민의 7.2%”라며 “빈곤층을 보호해야할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3.3%에 불과해 예산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짜 빈곤층’에 대해서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탈세자를 놔두면서 얼마 안되는 ‘가짜 빈곤층’을 들어 예산의 적정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반론을 폈다. 배성균씨는 나중에 “언론에 사회복지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언론의 이런 행태에 대해 이론적인 대응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 전문가 대표

시민복지부 예산안 편성에 참여한 전문가 대표들. 왼쪽상단부터 이태수 현도사회복지대 교수(사회자, 시민여성복지국), 허선 순천향대 교수(시민기초생활보장국), 김종해 가톨릭대 교수(시민아동복지국), 박윤영 안산공대 교수(시민주거보장국), 신영전 한양의대 교수(시민보건정책국, 보건증진국), 한동우 강남대 교수(시민고용정책국), 이재완 남서울대 교수(시민서비스지원국)

평소에 주변에 어려운 노인들을 많이 봐서 이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참가했다는 김정례씨(45, 주부)는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에 비해 복지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고 기가 막혔다”며 “이 예산안에 있는 데로만 돼도 원이 없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토로했다. 한편 시민보건정책국과 시민보건증진국 시민대표를 맡은 정애랑씨(33, 약사)는 10년 가까이 구로동 동네약국에서 일하면서 느낀 현실을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표현한 글을 낭독하기도 했다.

(전략)….. 잘 쉬면서 영양가있는 음식을 챙겨드셔야 감기는 빨리 낫는다.

약 드시면서 담배를 많이 피우시면 약효가 떨어진다.

공기가 탁하고 먼지많은 곳에 오래있으면 기침이 안 낫는다.

계속 무리하게 일하시면 어깨며 허리통증이 더 심해진다. 등등…

약 먹는 방법을 말씀드리면서 빨리 나으시려면 이러이러하게 하시면 좋다고 말씀을 드리지만, 몸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저소득층이 많은 구로동의 아픈 사람들에게는 듣기만 좋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몰라서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네들이 사는 집은 아파도 편히 쉴 여유공간이 없고, 열악한 근무조건의 일터마저 잃을까봐 아무리 아파도 쉬어야한다는, 노동강도를 조절해야한다는 얘기는 꺼낼 수가 없다. 병원 갈 마음을 먹었다가도 병원비와 약값이 부담이 돼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답답하고 타는 속을 줄담배와 쓴 소주로 메우고 나면 몸은 더 축날 뿐이다…..(후략)

▲ 시민대표

‘시민합의회의’에 참여한 시민대표들. 왼쪽 상단부터 연제헌씨 시민대표 사회자(환경단체 KSDN 실무자), 배성균 기초생활보장국 시민대표(지한정보통신 근무), 김정례 노인복지국 시민대표(주부), 최은석 아동복지국 시민대표(프로그래머), 박철순 장애인복지국 시민대표(현지관광여행사 회장), 서정민 여성복지국 시민대표(아주대 미디어학부 학생), 김경례 주거보장국 시민대표(주부), 박미선 고영정책국 여성복지국 시민대표(전 인천여성실업연대 실무자), 정애랑 보건정책국 보건증진국 시민대표(약사), 전지혜 건강보험국 국민연금국 시민대표(연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생), 정덕근 서비스지원국 시민대표(신당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고용정책국의 김정수씨(한국보훈병원 근무)는 개인사정상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전문가대표와 시민대표 간의 토론이 마무리 될 쯤 시민대표 들에게는 2002년 주요사업에 대한 우선 순위 평가표와 예산 적정성 평가표가 주어졌다. 시민대표들이 이 평가표에 기입한 평가순위에 따라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저녁 6시반에서 10시반까지 4시간에 걸친 ‘시민합의회의’를 마치면서 사회를 맡은 이태수 교수는 “이 자리는 전문가와 시민과의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말하고 “우리가 합의한 복지예산이 하나하나 관철될 때 이 합의회의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기초생활보장국 시민대표 배성균씨는 “시민운동의 중심은 분명히 시민이 되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다른 시민대표들과 함께 이후에도 계속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시민합의회의에서 결정된 복지예산안은 오는 14일(월)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되고, 이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 예산부처, 여야 정당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전홍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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