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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12.04
  • 1207

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집을 찾아가는 의료가 만드는 다른 가능성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바람의 빛깔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가을이 되니 자연스럽게 올 한해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신조인데 겁도 없이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개원해서 여러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헤매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배드민턴 치시는 분을 따라가고 하모니카 부는 모임에 간다. 방문을 하는 분들이 중증 장애인이기에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쳤고, 2층에서 1층으로 까지 하모니카 부는 분의 휠체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집을 찾고 있는 종국씨는 척수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 중 한 분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고 혈액검사를 통해 당뇨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 질문하고 또 조언하였다. 집에서 진료 하다보면 의학 상담만하는 것이 아니라 식습관, 음주, 취미 생활, 사회적 관계망 혹은 신변잡기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에 대학로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다고 하셔서 몇 번 가다 안 가시려고 하시나 걱정했다. 노래가 어떤 약보다도 좋은 치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지속하시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종국씨 집을 드나들었다. 다행스럽게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 되어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다. 노래 연습이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두시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 했는데 공연 소식을 전해주시니 정말 반가웠다. 조심스레 언제, 어디서 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봐 대단하시다고 잘하실 거라고 격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 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여 공연을 보러 갈 여유를 만들었다. 대학로 이음센터 5층 공연장에 승강기를 타고 딱 내렸는데 마침 종국씨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렸다. 종국씨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오셨어요." 하신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유명하시던데요." 종국씨가 속한 중창단은 한 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스치듯이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공연관련 정보를 확인한 터였다. 겸손히 말하였지만 이 팀은 버스킹도 하고 가요제에서 상도 탄 실력파 팀이었다. 종국씨는 뒤 늦게 합류한 팀원이었다. 공연장에 온 아내분과 자녀분도 만나 인사 나누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멤버이자, 장애당사자인 장애인자립지원센터 센터장이 사회를 보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라고 소개를 하고 노래 중간 중간 "들을만하시죠."하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실상은 꽤 실력 있는 중창단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들이 장애인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하게 갈라 인간 사회에 층위를 만들고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이다.1) 나 역시 인지하든 못하든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고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역할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집을 찾으며 스스로는 다른 의사가 되고자 했다. “의사가 뭐 이래? 약도 안주고” 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집을 찾아가는 의료는 다른 의료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8개월 동안 장애인 대상자를 만나며 장애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다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대상으로 그분들을 대하지 않고 그저 이웃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치료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normal)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점(비정상성)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공연 사회자는 종국씨의 솔로 공연을 앞두고 소개하며, “이 분이 경추장애에요. 배에 힘을 못줘요. 그런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고 소개하였다. 그랬다. 노래를 정말 잘하였다. 사회자는 노래가 끝나고 “노래 잘 하죠? 배에 힘을 못줘도 이렇게 잘 합니다. 여러 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노래를 못하는 비장애인인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집을 찾아가는 의사가 된다면

운 좋게 의사가 되었지만 병원이 내가 일해야 하는 공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인 나에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며,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효율적인 공간 배치 속에 의사와 환자 모두 아늑한 돌봄의 기운을 받기 보다는 차가운 대상화의 시선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검사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만남은 사라졌다. 섬세한 진찰과 손길은 이미 낡은 것이 된 병원은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것이 이득인 곳이 되었다. 의사가 된 후 대형병원에 발을 들이진 않았지만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또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틈틈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해왔다. 큰 열정 없이 반복적으로 진료를 해오며 차라리 나름의 철학으로 병원을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체 끈기가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여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한 건강 관리기술이 유행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희귀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무르익지 않았는지 연구 자료를 조작해서 국민 건강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도 나타났다.2) 그럼에도 정부는 나서서 원격의료 및 바이오 헬스 산업을 도입하려고 서둘렀다. 오래된 시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고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 되어 장밋빛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과거와 다르게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여 치료(cure)보다는 돌봄(care)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사회중심의 일차의료와 돌봄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방문의료, 재택의료 혹은 왕진 등의 이름으로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진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는 진료는 활성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으로 인식되었다. 의사의 선의가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방문 진료는 사회에 필요한 진료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진은 국가 의료 제도 속에 적절한 지불 체계가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등을 봐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듯 했다. 왕진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고 적절히 처치를 제때 못 받고 응급실을 이용하여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여 질병을 예방 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 역시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방문진료 및 방문간호 사업이 있고 노인장기요양제도 안에 방문간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방문 진료를 전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방문해서 진료를 하는데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료 받는 경우와 찾아가서 진료하는 경우 받는 비용이 똑같다. 교통비 등을 환자에게 실비로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내 진료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익숙하기에 집에서 하는 진료는 서로에게 어색하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 장애인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의사가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돕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된 왕진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중증 장애 환자에게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2019년 3월 중증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들의 집을 찾고자 건강의집 의원을 개원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외래진료는 하지 않는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1회 방문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는다. 가정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에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과 칩거 노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 이웃,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동주민센터 행정직원, 보건소 방문간호사 및 치료사들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그림 4-1> 방문진료의원과 함께 하는 지역사회 돌봄 네트워크 모식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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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그 너머의 가능성

의사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일상적인 진료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병원이라는 건강 생산 공장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수명의 증가라는 근대적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달성을 했으나 한국의 국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산다. 실제로 죽음을 시도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치료를 강제하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건강에 환장한 사회인데, 그것이 어떤 건강인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건강은 생산 가능한 가치인가? 치료기반의 의료가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는가? 구매하는 건강, 강제된 건강이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인가? 어떻게 건강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령 고급 분양아파트의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과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회일까? 청년들의 불안이 향 정신 약물을 통해 조절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하는가? 현재 의료의 제공 방식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가?

 

의학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준비가 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 때론 죄송한 마음으로 사회와 작별한다.4)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많을 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유행 아래 그럴싸한 이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곁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줄 존재이다.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일종의 거래로 경제적 이득이 매개되지 않으면 관계가 생기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떤 이득을 줄 것이 기대될 때 흔쾌히 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은 더욱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서 낭비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외면하고만 싶은 어려운 일이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 버겁다.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 해야 한다.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약을 처방하든지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말이다. 그런데 나름의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난감한 문제. 결코 개선되지 않은 통증.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신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들.

 

모든 아픔이 치료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인가? 생명이 있는 이상 아픔은 필연이다. 그런데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 서럽지만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되지 않은 손상도 물론 있다. 아픔과 손상을 극복하는 것 아니라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손상과 아픔을 ‘함께’ 겪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손상과 아픔을 누구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그것이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을 도모하는 일은 대단한 검사와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기술적 도움 받을 뿐이다. 건강을 홀로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사는 이들이 곁에서 긴 인생을 겪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병원의 진료를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방문 진료의 전부일까? 그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쪽이 움직이는 편의성 제공인가? 방문 진료의 가능성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한다. 집이라서 가능 한 것들, 사는 곳이 알려주는 여러 단서들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원을 열기 전 나는 ‘집’을 운영했었다. 의사였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래된 동네 상가를 얻어 ‘건강의집’이라고 이름 짓고 딸린 방 한 칸에 몸을 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였고 모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편히 지내는 모두의 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살았다. 사적공간의 대명사인 집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운영했다기보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데 계기가 된 이 공간 운영 경험을 통해 집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엔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방문진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건강 생산 체계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지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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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의 모습(=맨 왼쪽) <사진 = 건강의집의원>

 


1)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 종양유발세포가 들어간 골관절염치료제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다. https://news.v.daum.net/v/20191115204105469 뉴스타파,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3) 2019-10-20 제1회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학술대회, ‘왜 방문진료인가’, 건강의집의원 김창오 원장 발표자료.

 

4) ○○구 N모녀 사건이 반복되지만 정부는 발굴 혹은 색출에만 혈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접근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036&thread=03r01 비마이너,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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