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06-10   935

복지시설 생활인들의 인권, 기본부터 다시 생각하자

두 겹의 쇠창살이 쳐진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인기척을 듣고 금세 몰려들었다. 경찰이 문을 열자 배설물과 땀이 뒤섞인 냄새가 콧속으로 확 밀려왔다. 양계장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다. 10평 안팎의 증증장애인 8명과 의사표현을 할 줄 아는 장애인 2명이 뒤엉켜 있었다. 6명이 15살 미만이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없다. 이들이 모여 있는 안방 창문도 이중의 쇠창살이 쳐졌다 더구나 닫힌 채 철사로 고정돼 있어 환기를 할 수 없었다. 벽에는 신문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손으로 할퀴어 뜯어낸 탓에 성한데가 없다. (중략) “진수가 물장난을 쳤다고 원장선생님이 몽둥이로 진수를 때렸다”고 말했다. 민석이가 가리킨 건 빨래방망이였다.- 주1) 현재 최원장은 아동복지법위반, 상해, 장애인복지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수사중에 있으며, 아이들은 대부분 가족으로 돌아갔다.

– 한겨레신문 2005년 5월 18일자 사회면 –

1. 들어가며

위의 사례는 2005년 5월, <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자인권확보를위한공대위(준, 이하 ‘시설공대위’)>를 결성하고 여섯 번째로 조사를 진행한 미신고시설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지난 2003년 11월에 결성된 시설공대위는 ‘조건부신고시설’-주2)사회복지사업법상에는 미신고시설이나, 정부가 2002년5월에 발표한 ‘미신고시설 양성화지침’에 의해 조건부신고시설로 등록한 시설을 말한다.- 로 등록된 정신요양시설안에서 탈출한 안모씨와 또 다른 정신요양시설에서 탈출한 이모씨에게 “자신들이 죄를 진 사람들도 아닌데 감옥처럼 갇혀있다”는 제보를 받아 긴급실태조사를 벌임으로써 그 활동을 시작했다.

공대위가 결성된 이후에 지금까지 성실정양원, 은혜사랑의집, 영낙원, 바울선교원, 심신수양원, 지인언어치료원 등 조건부신고시설들안에서 일어난 인권침해를 적발하고 고발조치 및 생활자 추후대책 마련, 관리감독책임기관에 대한 고발과 감시등의 활동을 해왔다.

또한 지금까지 조사한 조건부신고시설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와 횡령 등의 범죄들은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시설공대위는 이를 막을 제도적 보안장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내부적으로 ‘시설정책단’을 꾸려서 내부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진행하면서 대안모색도 활동의 한축으로 삼고 있다.

2. 인권유린이 만연한 조건부신고시설, 그 현장의 경험

2-1 형기없는 감옥, 폐쇄형 사회복지시설

우리가 처음 활동한 성실정양원과 은혜사랑의 집은 공통적으로 상시적인 폭행과 함께 △수용자들을 징벌방에 가두고 금식기도의 명목으로 금식을 강요했고 △수용자들을 무임금 강제노역에 동원했으며 △관리자가 면회∙전화∙편지 등 외부와의 소통을 검열해 내부 인권문제를 은폐했고 △하루 4회의 예배 등 대부분의 일과시간이 예배로 채워져 종교 강요를 일삼았으며 △정신 장애인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을 혼거 수용해 상대적 약자인 정신 장애인들이 극심한 피해를 받고 있었다. 수용자들은 한결같이 “여기는 감옥보다 못한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수용자들이 시설 입∙퇴소를 선택할 자유를 빼앗긴 채 오랫동안 강제 구금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는 20년 이상 같은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다. 차라리 범죄를 저질러 갇힌 사람이라면 자신을 변호할 기회나 법원의 재판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설사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자신이 얼마나 갇혀 있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신체의 자유 박탈은 통신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등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출발점이 되었고 수용자들이 강제노역과 임금착취에 시달려도 자신의 사정을 외부로 알려 도움을 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자 수용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주3)강성준, <2004인권운동보고서> II부 1장 3.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 확보운동

그밖에도 최근에 벌어진 지인언어치료원 같은 경우는 원장이 장애아동부모들에게 분당의 50평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언어치료와 학교를 보내준다는 거짓말을 하고 입소시킨 후, 성남의 옥탑방에 감금한채 입소비를 가로챈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는 그동안 벌어진 미신고시설문제들과 다른 방식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로, 중증의 장애아동들이 자신의 상황을 부모들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월 40만원에서 100만원의 입소비를 받아 마치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듯 속이고, 부모가 면회를 요청할때도 미리 연락하지 않으면 면회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1년 넘게 부모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이는 겉으로는 사설치료원 간판으로 아이들을 모집하고, 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옥탑방에 아이들만 감금한채 이중적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의 미신고시설인 셈이었다.

2-2. 사회복지‘범죄’로 자리잡는 시설문제, 공범인 정부

사회복지에서 범죄라는 단어를 붙인다는 것은, 복지를 스스로 욕먹이는 일임에 이 단어를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고 신중한 고민을 반복했다. 그러나 사회복지계 스스로의 자성과 결단 없이는 썩은 부위를 도려낼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복지관련자들이 소위 ‘좋은 일 하는 사람’로 치부되며, 사회복지분야가 마치 범죄의 성역인 듯 인식되는 상황이 오히려 썩은 부위를 더 썩게 만드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인권유린이 가능한 시설의 구조에 뒤에는 항상 정부가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침묵함으로써, 때로는 시설장들을 부추기면서 정부는 미신고시설들의 구조적 인권유린을 용인하고 국가책임으로부터 뒷자리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있다.

즉, 바울선교원의 경우 안양시는 인권실태조사표에 ‘모르겠다’고 씀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이미 바울선교원안에서 여아에 대한 지속적인 성폭행 사건으로 선교원내 몇 명이 구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여자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을 용인하고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강원도 심신수양원은 눈으로 명확히 확인할수 있도록 외부장금장치등이 있음에도 인권실태조사표에는 ‘없다’고 표시하고 시설에 대한 증개축비용을 8천만원이나 지원하고 있었다. 또한 지인언어치료원의 경우도 성남시는 KT&G에 추천서를 써주는 등, 오히려 시군구는 시설상황을 용인하고 오히려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2-3. 자유를 찾은 사람들

시설공대위가 활동하면서 제일 보람으로 치자면, 물론 시설에서 나와서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20대초에 갇혀서 10년을 넘게 지낸 서른초반의 한 여성은 현재 고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대로의 독립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또 바울선교원에서 나온 몇 명은 함께 모여서 전셋집을 구하고, 지역복지관등의 자원을 이용하면서 나름의 공동체를 꾸리고 살아가고 있다.

또 심신수양원에서 나온 조씨는 수양원에 있으면서 인공관절이 마모되어 진통제 몇알로 고통을 버티며 사시다가 이제는 신고시설로 옮겨 병원에 입원, 다행히 수술을 받아 이제 괜찮아졌다는 전화를 어젯밤에 받았다. 이렇듯 일일이 이야기 할 수없는 많은 사람들이 폐쇄형 시설에서 다른 삶의 희망을 포기한 채 사시다가, 이제는 독립하여 기쁘게 자신들의 소식을 알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3. 미신고시설내 인권침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원인

첫째, 시설생활인 스스로가 인권보호를 할 수 없거나, 외부와 소통할 권리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설공대위가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인권 침해를 당해온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 치매노인, 정신지체나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 등 주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인권보호를 할 수 없는, 표현 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속적인 폭행, 성폭력 혹은 감금과 강제투약 등의 극심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장애상활을 이용한 극악한 범죄행위인 것이다. 설사 자신의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는 수용자가 있다고 해도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전화나 편지는 철저히 검열되고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인권침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리는 등 -주4) 경기도 용인의 어느 정신요양원의 경우, 국가인권위에서 설치한 진정함이 있었으나 생활인들에게 필기도구가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었고, 생활인들은 혹시나 있을 보복조치가 두려워 필기도구가 생겨도 진정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였다.- 의 소극적인 대처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꾸준한 방문조사, 특히 당사자들과의 1:1 면접조사 등의 적극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돈벌이로 복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런 방식들이 학습되고 전파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를 하면서 돈이 있다고 말하는 미신고시설장은 만나본적 없다. 미신고시설장들은 시설자체의 영세함과 열악함, 영양가 없는 식사,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이나 전문적인 종사자가 전무한 것도 모두 돈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미신고시설장들은 대부분 사회복지법인이나 복지타운 건설을 목표로 지방에 큰 땅을 사는 등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설장들은 수용자에게 국가로부터 지급되는 생계지원비와 후원금마저도 횡령하고 있었다.

2005년 3월에 조사한 안양의 바울선교원의 경우는 수급권자가 53명이었다. 이들에게 국가에서 지급되는 수급액은 1년 동안 2억원 가까이 되었다. 그 외에도 홍천의 어느 후원자는 조건 없이 1억을 기부하는 등 각종 후원금도 엄청난 액수였다. 그러나 바울선교원은 얇은 합판을 덧댄 가건물이었으며, 열악한 식사와 더러운 지하수 사용 -주5)수도세를 아낀다고 더러운 지하수를 쓰는 바람에 사람들은 옴에 걸려있었고, 바울선교원의 화재당시 초기진압이 불가능했던 원인도 수도를 막아놓았기 때문이었다.- 등 정말 열악한 상황이었다.

수급권자들은 자신의 통장으로 국가보조금이 들어오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기도의 성실정양원의 경우, 부원장(원장의 딸)은 자동차를 구입했는데 과감하게도 수급권자들의 국가생계비지원금이 들어오는 통장에서 천이백만원을 결재하는 등, 각종 비리와 횡령이 횡횡하였다. 일부의 시설장들에게는 시설생활인들을 1인당 30-40만원의 돈을 벌어주는 물건으로 보였고, 각종 후원금을 모을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러한 실태를 파악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미신고시설’은 돈벌이와 명예가 되는 신규영리사업으로 자리잡으면서 일부의 시설장들에 의해 사업방식들이 학습되고 전파되고 있다. 가평의 ‘o’기도원에서 생활했던 이모씨는 그곳의 운영방식을 배워, 강원도 인제에 비슷한 시설을 차려 돈벌이를 하였다. 또한 안양의 이목사(미신고시설을 운영하다가 최근 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이 됨)로부터 운영방식을 배워서 시설운영을 한 사람이 바울선교원 최선이목사였다. 또한 이목사의 큰아들은 지방의 모처에서 미신고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바울선교원 최선이원장에게 배운 어느 전도사도 용인에 시설을 차렸다.

셋째, 시군구와 복지부의 직무유기가 문제이다

정부는 2002년, 어느 미신고시설의 화재참사이후 <미신고시설종합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즉 물밑의 미신고시설들을 조건부처벌유예 -주6)‘처벌유예라는 것은 사회복지사업법상의 신고의무조항을 지키지 않은 부분만 해당하며, 시설내 인권침해등에 대해서는 유예한 것이 아니다’는 것이 복지부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군구에서는 조건부시설내 벌어지는 전반의 문제들에 대해서 복지부가 유예하라고 했다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와 조건부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물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제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였다. 물위로 끌어올리되, 인권침해가 있는 시설은 철저히 가려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복지부는 각 시군구에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얼마 안 되고, 1년에 한번 감독하기도 힘들다는 둥 다양한 변명을 둘러댄다. 그러나 이것은 변명으로 일관할 문제가 아니다. 시설 안에 감금되어 지속적인 폭력과 성폭력, 강제노역과 비인간적 생활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바쁘다는 핑계는 말이 안 된다. 적어도 자신들이 못하면 경찰에 고발조치라도 해야 한다.

복지부는 2004년 미신고시설 실태조사표에 의해 감금이나 폭행, 성폭행, 사생활보호 및 수급권갈취여부 등을 조사하도록 했다. 하지만 복지부의 이러한 야심찬(?)조사는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군구 복지 담당자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없다, 또는 모르겠다”라고 실태조사표를 작성함으로서 생활인들의 유일한 구제통로를 막아버렸다. 바울선교원의 경우 적어도 2004년 4월에 안양시가 제대로 조사했더라면 그런 식의 화재와 인권유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언제까지 복지부나 시군구가 ‘여력 되는데 까지 하고 안 되면 말고’를 우리가 용인해야 하는가를 반문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인권침해를 자행한 원장을 고발하고 처벌받도록 했지만, 결국 그런 상황을 방기한 시군구와 복지부는 늘 빠져나갔다. 언론도 ‘원장은 나쁜 놈이다’에서 벗어나지 못한 보도를 했고, 시민들의 인식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일개 시설장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요보호대상자에 대한 정부의 몫인 것이다.

우리는 시군구의 제대로 된 역할을 강력히 촉구하기 위해 직무유기로 해당 관독기관을 고발했다. 지금의 법 현실 앞에서야 공무원들의 직무유기가 인정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미신고시설 인권침해의 해결열쇠를 쥔 시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다.

넷째, 지역주민, 자원봉사자등의 무감각한 감수성은 인권유린의 방조자가 되기도 한다

최근 지인언어치료원의 경우, 중학교 2학년생들의 증언으로 문제해결이 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관련 공무원들이 방문했음에도 문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을 15세의 청소년들의 감수성과 용기가 지인언어치료원의 문제를 세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인권에 대해 무감각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그저 자원봉사를 하고 갈 뿐이다. 의료봉사를 간 의사들이나 간호사들도 의료 봉사만 할 뿐이고, 대학생들조차 잠깐 놀아주는 것으로 열악한 환경과 격리를 용인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가족들이 버린 이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사고, 즉 시설생활인들을 우리와 다른 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지역주민들도 마찬가지인데 ‘원래 저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 혹은 ‘문제가 있어도 귀찮아지기 싫어’라며 외면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귀찮음과 무감각한 감수성이 인권유린의 방조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아동학대가 ‘내 자식 내가 교육시키는데 니들이 뭔 참견’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이렇듯이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으레 ‘저렇게 살아야겠거니’가 아니라 기본적인 환경과 자유가 보장되는지를 감시하는 선의의 감시자가 되어 잘 살펴봐야 한다. 이런 주변사람들의 노력이 시설생활인들의 문제를 외부로 알리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섯째, 가족책임중심의 복지정책의 한계-미신고시설 아니면 갈데가 없다

여기서는 지면상 간단히 언급할 수밖에 없지만, 시설공대위는 활동하면서 가족책임중심의 복지정책 자체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문제가 된 시설장을 구속하고 시설을 폐쇄시킨 후 생활자들에 대한 추후대책의 문제는 시설공대위의 가장 기본적인 고민이면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과제이다. 도저히 부양할 수 없어서 보낸 치매노인, 가족이 실질적으로 해체된 상황, 가족이 있다한들 버린지 10여년이 넘은 상황에서 이들이 가족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결국 다른 미신고시설이나 기도원에 버려지는 경우가 다수였고, 이런한 반복은 결국 ‘가족책임 중심의 복지정책’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또한 이들을 한명한명 면담을 해보면, 이들에게 시설이 아닌 다른 방식의 다양한 지원(주거지원, 주간보호-단기보호등 일시보호, 의료지원 등)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지역으로 가족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다. 즉,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김으로 결국 가족에 의해 다시 버려지는 것이 아니려면, 다양안 복지서비스의 내용으로 가족과 함께 살수 있도록 혹은 지역사회내에서 함께 거주하면서 살수 있도록 수용시설이 아닌 다른 방식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4. 수용위주의 복지정책,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무엇보다도 민관합동의 인권실태조사 시급하다.

앞서 이야기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아는 일이다. 즉, 시설안에서 외부와 소통할 수 없고, 스스로 권리보호를 할 수 없는 생활인들이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전국의 약 천이백여개의 미신고 시설에 이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시설공대위는 복지부에 ‘민관합동의 전면적인 인권실태조사, 생활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1:1면접조사’를 제안한 바가 있다. 지금까지 에바다를 비롯하여 각종 시설비리 사건들을 보면 지방정부와 유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다가, 생활인들에 대한 비밀보장하에 직접 조사 없이는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관합동, 1:1직접조사 등의 조사방식 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복지부는 현실론을 앞세워,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둘째, 무원칙한 민간기금 지원, 결국 ‘시설화’로 가는 길이다.

정부는 미신고시설지원과 관련하여 작년부터 로또기금, 삼성기금, 경기도의 경우는 KT&G등의 민간기금을 끌여들어 대대적인 미신고시설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려스러운 것은, 아무리 민간기금이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국민의 주머닛돈과 기업들의 사회환수적 성격의 민간기금인 만큼 공적자금의 성격으로 이해하고, 그 쓰임도 공공성을 전제로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없는 현재의 미신고시설지원은 시설장의 사유재산만 늘려주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법과 정책에서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에 대한 큰 그림이 없이, 당장의 미신고시설을 2005년 7월까지 양성화시켜야 한다는 시급성에 의해 몇천만만원에서 최고 4억원씩 총 1100억원을 지원하는데 있어, 정부는 중요한 원칙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미신고시설지원은 수용위주의 시설정책에 대한 고수이며, 민간복지시설장이라는 새로운 기득권층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시설화’로 가는 지름길을 정부가 나서서 택한 꼴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큰 그림에서 시설에 대한 공공성을 담보할 것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시설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한 선별적 지원을 제안하고 있다. 지금의 복지부처럼 일단 돈 쥐어 주고 대거 신고화를 유도한 후에 이 늘어난 시설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개인운영시설장”이라는 새로운 기득권을 복지부 스스로가 만든후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복지부의 이런 발상은 계속 늘어날 미신고시설 문제에 대한 근복적인 해결이 아닐뿐더러, 정말 위험천만한 발상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시설정책 이제는 탈시설의 바탕위에서 재편되어야 한다.

우리는 오는 5월 27일 국회에서 참여정부의 시설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시설정책과 관련하여 참여정부의 정책이라는 것이 전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무해서 평가할 것이 없다’고 혹평할 정도로, 논의자체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97년 사회복지사업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될 때도 오히려 시설장들이 국회에 모여 기득권을 행사했었고, 요즘은 ‘조건 없는 지원’을 요구하며 미신고시설장들이 또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재원을 이런 기득권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이미 탈시설, 탈병원화가 대세임에 반해, 정부의 정책은 수용시설위주의 복지라는 큰 틀의 변화 없이 이리저리 뜯어고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고 있다. 즉, 집을 새로 지어야 할 시점에서 집은 놔두고 집안의 가구만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할뿐인 셈이다. 따라서 이제야 말로, 복지부는 시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틀속에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5. 나오며

나는 지금까지 ‘시설운동’ -주7)‘시설운동’이라는 명확한 규정은 없으나 여기선 필자의 임의대로 “탈시설운동-시설생활자들의인권운동”이라고 해두자.- 을 하면서, 이 활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배제된 바닥인생들의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는 일정기준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동할 능력이 없거나, 사회정화의 목적으로 배제시켜야 하는 이들, 혹은 가족을 포함한 국가보호책무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이다.

이 사회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격리되어 이들은 평생을 시설에서 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시설은 이들에게 무덤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시설이라는 구조안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인권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가 이 땅의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복지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적어도 시설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 기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참고자료

강성준, <2004인권운동보고서> II부 1장 3.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 확보운동

보건복지부, <미신고시설종합관리대책>, 2002.5.

국회 인권정책위원회,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시설 평가와 전망>, 2005.5.27

조건부시설공대위, <미신고시설, 무엇이 문제인가>, 2004.2

조건부시설공대위, <사회복지시설생활자 인권보호를 위한 기존법률의 한계와 대안>, 2004.11

보건복지부, <미신고시설 지원방안을 위한 토론회>, 2004.6

보건복지부, <미신고시설 신관리지침>, 2005.6

김정하 / 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자인권확보를위한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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