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5-01   1144

[복지톡]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당신, N번방의 공범이다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당신, N번방의 공범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기록 및 인터뷰 김경희, 이조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성착취 영상물 거래로 시민들의 공분을 산 ‘N번방 사건’. 운영자 ‘박사’는 체포되었고, 가담자들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N번방 사건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아니다. 성범죄의 온상이었던 성인 사이트 소라넷이 폐쇄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제2, 3의 소라넷은 계속 등장해왔고, ‘정준영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SNS를 활용한 성범죄 사건들은 연일 이어진다. 끝나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까. 한국여성단체연합 김민문정 공동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N번방 사건을 정의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놀랍고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혀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몇몇 개인의 악마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2018년 한국 미투(#MeToo)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성차별,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였다는 것이 드러났듯이, 이번 N번방 사건 또한 그동안 사회가 여성의 몸과 성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미 오프라인에서의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디지털 기반 사회가 되면서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공모의 범위가 확장되고 피해의 규모와 속도가 엄청나게 심각하고 빠르게 변화했다.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도 성폭력을 공모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생산된 성착취 이미지들이 소비 거래되고 있다. N번방 사건은 이러한 현상을 재조명했다.

 

N번방 사건이 가능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가해자는 여성들이 무엇에 공포를 느끼는지를 아주 잘 알고 그걸 범죄에 이용했다. 범죄유형을 보면 한국 사회가 여성의 몸이나 성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알 수 있다. 가해자는 채팅앱을 통해 피해자와 친분을 쌓고 알바를 제안하여 개인정보를 취득한 뒤, 그 정보를 활용해 피해자를 협박하는 식으로 범죄를 저질러왔다. 피해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 여성폭력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그러한 지점을 잘 알고 이용했다.

 

2016년 폐쇄된 소라넷 사이트는 2003년 이전부터 디지털 성범죄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강간 등 수많은 성폭력 문제가 소라넷 안에서 벌어졌지만 사이트는 십수년간 유지되었다. 여성단체들은 소라넷 등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실존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라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사회와 사법부는 그저 가상의 이미지 소비로만 치부했고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여성의 성과 몸을 ‘야동’으로 주고받으며 소비하는 문화는 성범죄와 쉽게 결합된다. 이번 텔레그램 디지털성범죄는 과거에도 있었던 심각한 성범죄가 그동안 방치되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런 문화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N번방 참가자들은 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에 돼지흥분제로 성폭력을 모의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완전한 범죄다. 하지만 남성들은 아주 최근까지 이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믿고 싶지만, 굉장히 가까운 과거에 남성들은 ‘총각딱지’를 떼준다는 명목으로 함께 성매매를 했다. 이런 것을 범죄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 연예인 정준영이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이미지와 영상을 주고받으며 외모평가를 하거나 성희롱을 하고, 성폭행 모의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는 정준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생 단톡방, 중고등 학생 단톡방, 기자 단톡방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만, 아무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N번방 참가자가 26만 명이라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오랜 기간 추적해 온 분들에 따르면, 26만 명이라는 수치는 모니터링으로 드러난 텔레그램방 참가자 수만 단순히 더한 값이다. 문제는 모니터링으로 드러난 방은 일부이고, 실제로는 훨씬 많은 사람이 디지털 성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라넷 회원수가 100만 명, 아동 성착위 영상물이 거래된 다크웹 회원수는 128만 명이다. 지금 알려진 26만 명은 최소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한 방송사가 보도한 성매매 알선사이트 이용자 명단은 260만 명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게 된 수치만 보더라도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라는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박사가 죄의식을 느낄 수 있었을까 반문하게 된다. 

 

조주빈 등 N번방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SBS가 단독보도하면서 N번방 운영자 중 한 명인 조주빈의 개인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도했다. 여러 언론이 가해자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가해자에게는 어떤 가족이 있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창창한 미래가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언론보도는 피해자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가해자의 존재감만 부각시킨다. 한 사람을 악마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개인사를 말하며 동정론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언론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스스로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피해자의 과실을 드러내 피해자 책임론 등을 만들어내는 보도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여러 언론이 일탈계에 주목하면서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식으로 피해자 책임론을 부각하는 보도를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에 한 여성작가분이 올린 의견을 소개하고 싶다. 자신이 여성폭력과 관련한 글을 쓰면 인스타그램 디엠(Direct Message)으로 남성들이 칼이나 자신의 성기 사진을 보내며 위협한다고 한다. 디엠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면 상당수가 미성년자인데, 자신은 어른으로서 그 사람이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지, 조주빈처럼 범죄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내용이 남성/여성의 몸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위치지워 지는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남성의 몸은 협박의 도구가 되고, 여성의 몸은 범죄 피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매커니즘을 전환해야 하는 과제가 있고, 이러한 관점에서 언론은 잘못된 관념을 재생산하고 유포하는 역할을 멈춰야 한다.

 

언론과 한국 사회는 피해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소비할 뿐이다.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수를 높여 이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소비한다. 어떤 관점으로 이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지, 향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다루지 않고, 가십거리처럼 기사를 만들어내서 수익을 창출하는 데에 사용한다. 이는 N번방 사건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폭력 사건에서 일관되게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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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n개의 성착취, 이제는 끝내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원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한국여성단체연합

 

N번방 사건은 언론 보도로 이슈화되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지만, 사건에 공분한 시민들의 활동(국민청원 등)이 이슈를 공론화하고 진척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N번방 사건 관련해서 시민·시민단체들은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 여성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여성민우회에서 활동했을 당시 성폭력 피해상담을 하던 중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인 소라넷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의 여성들은 본인과 친구, 엄마의 경험을 통해 성범죄가 만연한 가부장적 사회의 문제를 인식했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 속에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해왔다. 디지털성폭력에 주목하고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강해져 왔다. 여성운동이 30년 이상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단기간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다수 여성들의 힘이었다.

소라넷 사이트 폐지 이후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주목하는 여성단체들이 생겨났다. 해당 단체들과 연대하며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관련 활동도 이어올 수 있었다. 2018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참가할 참가단위를 꾸리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알리고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관련 내용의 권고안을 만들도록 하는 활동을 했다. 이후 권고내용을 바탕으로 디지털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국회에 정책대안을 요구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올해 2월,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8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9개의 단체가 운영위원단체로 역할하고 있다. 공대위에서는 피해자 변호인단을 꾸려 피해자들에게 법률 조력, 피해자 상담, 수사·재판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이미 기소되어 재판 중인 사건을 모니터링해서 검찰과 법원에 문제제기하는 활동도 해오고 있다. 지금은 언론의 문제를 시민들이 직접 제보해 문제를 바로잡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입법TF를 꾸려 제도개선안도 준비하고 있다.

 

피해자 중에 아동청소년이 포함되어 있어 시민들의 분노가 크고, 이에 대한 제도적 방안 마련 요구가 강하다.

이번 N번방 사건은 디지털 공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프라인 범죄와 연관되어 있고, 성폭력, 성매매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일어나는 폭력이다. 이 범죄의 의미를 제대로 짚지 않고 아동청소년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 연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호의 대상으로 설정하여 주체성을 삭제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성매매 문제처럼 자발이냐 아니냐 등 피해자 책임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에 상관없이 이 행위는 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범죄의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에는 가중처벌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심각하니 아동청소년에게 한 범죄라도 일단’이라는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없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이런 접근이 오히려 가해자들에게 빠져나갈 구실을 제공한다. 청소년인지 몰랐다고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이든 성인여성이든 피해자의 회복과 범죄행위 근절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더 중하게 처벌해야 하는 경우를 설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20대 국회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N번방 재발방지 3법이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성범죄를 효과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어떤 입법이 필요한가.

현재 N번방 재발방지 3법 뿐 아니라 많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디지털 성폭력을 규제하기 위한 형법 개정안 4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 5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3개,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안 4개, 아동복지법 개정안 1개, 범죄수익 은닉 처벌에 관한 법 개정안 1개가 발의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물론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피해 규모나 확산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시급한 입법이 필요하다. 텔레그램방에서 같이 구체적인 지시, 공모한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법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 개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즉자적인 대응으로 여성폭력의 근본원인이 오랜 성차별 구조와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

 

특히 여성폭력범죄의 경우 사회적으로 이슈화 될 때마다 형량만 강화하는 논의가 반복된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제대로 처벌받는 사례가 줄고 있다. 형량을 높이는 것보다 처벌의 확실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형량이 강화될수록 불기소처분 비율이 높아진다. 형량이 높으니 검찰이나 법원에서 더 엄격하게 까다롭게 판단한다는 얘기다. 시민들이 공분하니 정치권은 처벌 형량은 강화하여 마치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만, 실제로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이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바람직한 해결방향이 아니다. 디지털 성폭력은 온라인상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어 있고 성폭력, 성매매와 연결된 복잡한 범죄이다. 때문에 본질을 꿰뜷고 제대로 해결하는 입법을 위해서는 21대 국회에 여성폭력 관련법을 재구조화하는 입법 특위가 필요하다. 여성폭력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는 실질적 방안 모색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벌에 대한 제도개선과 함께 사회문화적으로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는가.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해결주체로 교육부가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사회가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 시스템에서부터 이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고 제대로 인식하게 할 것인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2015년 교육부가 발표한 ‘국가 수준 성교육 표준안’이 성차별 강화 등 문제가 있는데, 아직도 개선을 못하고 있다. 때문에 교육부도 책임주체로 나서서 인식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하는 역할이 있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예능뿐 아니라 시사프로그램에서 조차도 외모에 대한 평가가 일상적이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남성을 ‘잘 나가는’ 남성으로 묘사하고, 반대로 남성에게 인기가 많은 여성은 음란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것도 문제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아주 가볍게 행동하는 것이 여성폭력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지 재해석하고 성찰해야 한다.

 

시민사회도 역할이 있다. 결국은 우리의 일상의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민사회에서 일상의 성 문화, 성차별적 문화를 어떻게 바꿔 갈 것인지 같이 고민하고 바꿔 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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