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9-08   1308

학교 안전사고와 국가의 책임

학교에서는 매일처럼 사고가 일어난다. 종이를 칼로 자르다가 손을 벤 아이, 문을 잘못 닫아서 손가락이 낀 아이,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코피가 나는 아이 등등.. 아이들이 보건실(구 양호실)을 끊임없이 들락거린다.

가만히 보면 학교는 참 위험한 곳이다. 새로 뼈가 생기고, 근육이 생기면서 활기가 온 몸에서 뻗어나오는 아이들이 20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40분 넘게 “조용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쉬는 시간 종만 울리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그런 공간이 바로 학교다.

이런 “사고뭉치” “시한폭탄”들이 잔뜩 모여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일상적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가능성과 일어난 사고의 처리를 “사회적 통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가 다투었다고 해서, 양측 부모를 불러다가 합의하라고 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있으면 다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각 가정에 맡겨두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다. 이것을 국가가 “의무교육”이라는 “의무”를 지워서 학교로 나오도록 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의 안전 역시 국가가 져야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때리고 맞은 아이들의 책임도, 그리고 이것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할 수 없는) 교사들의 책임도 아닌, 학교라는 제도와 공간이 만들어낸 상황이라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보건교사가 부족하다

학교에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의 응급처치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마다 보건실이 있다. 그러나 보건실에 있어야 할 보건교사(구 양호교사)가 부족하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하면 18학급 이상의 초등학교에는 보건교사를 “두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나머지 학교에는 “둘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농어촌지역의 작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는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가 많다. 더구나 농어촌 지역은 병원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응급처치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보건교사를 배치하지 않고, 가끔 큰 학교에 있는 선생님이 보건행정업무를 처리하고 보건교육을 하기 위해서 월 1, 2회 들러갈 뿐이다.

작은 학교에도 10명도 안 되는 교사를 감독하기 위해서 교감은 배치하면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보건교사는 배치하지 않는다. 참 이상한 교육행정이다(사실 하루 종일 교무실에서 교사들만 쳐다보는 교감이라는 제도가 학교에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사고가 나면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유치원 교사가 난감한 일을 당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등원(유치원은 등교가 아니라 등원이다)한 상태에서 교무회의에 참여하라는 연락이 왔다. 사실 초등학교 교무실에서 열리는 교무회의에 유치원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유치원 교사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불안해했던 그 교사는 여러 차례 교장(유치원 원장도 겸임)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아이들과 함께 있고, 전달사항은 나중에 따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관료적인 교장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직원회의 참석 중에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아이를 안고 병원에 뛰어갔지만 상처가 심해서 오랜 동안 병원치료를 해야 했다. 놀란 부모들은 선생님의 멱살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학교장은 슬그머니 빠지면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것이 적지 않는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아이들 관리는 담임책임이라는 것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나이 어린 여교사는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천여만원의 치료비를 댔다. 이런 사건이 적지 않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정화조 뚜껑을 허술하게 만들어 덮어놓았는데, 아이가 호기심에 이걸 열어보다가 빠진 사건이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학교장의 책임이지만 이 사건 역시 담임교사가 상당부분을 부담했다.

구미에서도 야영장에서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책임을 당시 인솔교사가 대부분을 짊어졌다. 학교에서 사고가 터지면 제일 곤혹스러운 사람이 담임교사다.

<표>학생 사고 대응 순서(표 빠짐)

※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요구 사항

– 행정적 요구 – 징계

– 민사적 요구 – 배상요구

– 사법적 요구 – 수사. 형사처벌 요구

※ 부당한 합의요구에 대해서는 공동대응하도록

※ 시기를 놓치지 말 것

※ 학생에 대한 성추행 대응에 대하여도 비슷한 대응

안전공제회가 있기는 하다

학교안전공제회는 사단법인이다. 이 학교안전공제회라는 것은 서울시 교육청이 주도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안전공제회는 정말 이상한 조직이다.

우선 안전공제회의 회원은 교장이고, 교육청의 상층 간부들이 당연직 회원으로 가입한다. 그리고 이 회원들은 총회를 구성해서 이 공제회를 운영한다. 공제회라는 것이 회원들의 복지나 이익을 위해서 운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공제회의 비용을 회원들이 내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회원들이 부담하는 회비는 아이들이 내거나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학교의 학생복지예산에서 충당한다. 그리고 각 시도교육청이 1년에 수억원의 보조금을 부담하고 있다. 결국 학생들이 부담하고 모자라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한푼도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형식상 학교장이 회원이고, 결국 그 혜택은 학생들이 보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공제회의 운영과 사고 보상금의 책정, 보상절차, 보상액 등에서 아이들을 중심에 두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생이 다치면 학부모나 담임교사가 보상금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학교장만 보상금 신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안전공제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으면 다른 법령(국공립 학교에서는 국가배상법, 사립학교에서는 민법의 손해배상청구)보다 간편한 절차에 의해야 하는데, 제출하는 서류나 여러 절차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안전공제회에서 치료비를 받으려면 각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각서는 ‘이후로는 다른 민형사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 안전공제회는 학부모편에 서서 아이들의 치료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 아니라 회원인 학교장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해주기 위해서 학부모를 상대로 흥정하는 단체라는 말이다.

이 단체의 정관과 운영과정을 분석해보면 이 단체가 왜 ‘공제회’인지를 알 수 있다. 이 단체의 시각에서 보면 “피해자”는 학교장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일까? 당연히 학생 사고를 빌미로 학교장에게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해오는 사고 당한 학생의 부모쯤 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혜자”는 누굴까? 이 단체의 정관에서 말하는 것처럼 안전공제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은 사고 당한 학생이다. 그래서 이 단체는 피해가 예상되는 학교장들이 모여서 “공제회”를 만들고, 이후 예상되는 피해로부터 보호받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로부터 회비를 걷고, 국가의 세금에서 막대한 보조금을 가져가는 것일까?

몇가지 대안을 정리해보자.

○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당하는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학교라는 곳이 미성년자들이 밀집하여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학교 교육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이들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사립재단에 의한 특별한 국민복지라는 측면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교교육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포괄적으로 학교설립자가 책임지는 것으로 하고, 이를 보상하는 체계를 정부차원에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교육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일반적인 손해배상 등에 관한 민법의 규정과 다른 별도의 법체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생 상호간의 장난이나 다툼에 의한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을 일방의 학생에게 묻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사고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치료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학교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 대해서는 고의가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학부모에게는 간단한 청구절차와 보상절차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 학생사고에 대한 재원은 전적으로 국가의 재정으로 감당하는 것이 옳다.

교육활동 중 일어난 사고의 경우 학생은 “보상의 수혜자”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해서 사고를 당한 “피해자”로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학생들의 안전공제회의 재원을 부담하는 것은 피해자의 돈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가 출연하는 학교사고보상기금 등을 마련해서 보상하는 것이 옳다. 학교의 학생복리비 예산은 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집행되어야 하며, 학생 사고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이 있는 국가가 이를 담당하여야 한다.

○ 학생사고에 대한 장치 – 분쟁조정기구와 청구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

학생사고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조정할 기구가 필요하며, 이 기구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상급심을 설치운영하며, 이러한 기구의 결정은 준사법적 기능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보상금 청구를 학부모와 교사 모두가 할 수 있도록 청구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자주 발생하는 소액보상의 경우에는 학교장 또는 교사의 확인서와 치료비 영수증을 첨부한 청구만으로 보상이 되도록 간소화하여야 한다.

보상금의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서 일반 국가배상법의 기준이 아닌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에 맞는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실상계 등의 기준을 완화하여 학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상금 액수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 대한 치료는 특별하게 다룰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 학생의 사고 뿐 아니라 학생의 건강보호를 위한 종합적인 체계가 필요하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학생 사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질병 등에 대한 진단과 치료 등에 대한 절차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질병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사고 예방을 위한 학교 시설에 대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고, 학생사고의 사례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학교 학생사고 예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학교 안전사고나 학교폭력에 의한 피해자에 대해서 우선 치료를 해주고, 이후에 그 책임자를 가려서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생의 치료가 우선이고, 그 책임추궁은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선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국가가 져야 한다.

이러한 모든 대안을 담아서 {학생사고예방및보상에관한법률} 같은 것을 제정해야 한다. 교육부는 학교안전공제회를 중심으로 두는 방식으로 법률을 제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공제회라는 사단법인은 해체되는 것이 옳다. 지금도 학생들에게 나가는 보상액보다 훨씬 많은 회비수입과 보조금을 모으면서 기금을 불리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기금을 불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안전공제회를 해체해서 국고로 받아들이고, 국가가 관리하고 책임지는 형태로 가야 한다. 그래야 교사와 부모가 마음을 놓는다.

송대헌 / 예천 용문중학교 교사, yesln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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