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자 소득파악,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의 심각성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세부담이나 사회보험료의 부담이 실제소득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득의 노출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흔히 '유리알 지갑'이라고 불리는 근로소득자의 소득은 거의 100% 가까이 파악되는 반면, 자영사업자의 소득파악율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에 의하더라도 50%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번에 국민연금 확대실시에 의해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사실 세금문제에서는 자영업자의 탈세에 대해 오래 전부터 많은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그러나 눈앞의 인기에만 신경을 쓰는 정치권과 무소신한 관료들 때문에 근본적인 세제·세정의 개혁은 계속 미루어져 왔고, 오히려 자영업자의 탈세를 부추기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96년 4·16 총선 직전에 간이과세제도를 만들어 상당수 자영업자들을 간이과세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면서 소득을 탈루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현 시점이 자영사업자 소득파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반면에 만약 이 기회에 자영사업자의 소득파악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세부담의 불평등 문제에 덧붙여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험 분야에서까지 근로소득자와 자영사업자 간의 수평적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 문제는 자영사업자와 근로소득자간의 갈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민적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국가의 조세정책, 사회보장 정책 자체가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소득분배상황이 도리어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

먼저 국민연금과 관련한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에 대한 기본 접근방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국민연금 담당부서가 국민연금 부과모형을 부분적으로 개선하고, 임시방편적인 설득작업에 의해 신고소득을 상향조정하는 정도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자영자의 실제소득 자체가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부과모형을 부분적으로 개선한다고 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임시방편적인 설득작업에 의해 일부 자영사업자의 신고소득이 상향조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방법은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뒷받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국민연금 제도를 망쳐 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영자 소득파악에 문제가 발생한 근본원인을 손보는 것이다. 이번에 국민연금을 확대 실시하면서 소득파악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자영사업자의 소득을 파악하고 있어야 할 국세청이 자영사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97 귀속 과세자료를 근거로 하여 신고 권장소득을 산출하면서, 일률적으로 자영사업자의 업종별 실제 평균신고소득에 2배수 가량을 곱하여 업종별 기준소득을 산출했다. 이렇게 업종별 실제평균신고소득에 2배수 가량을 곱한 이유는 자영사업자가 국세청에 신고한 신고소득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산출된 업종별 기준소득을 이용하여 가입자별 신고권장소득을 산출하다보니, 많은 자영사업자의 경우에는 국세청에 신고하는 소득보다 많은 금액이 신고권장소득으로 통지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고, 일부 자영사업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소득이 객관적으로 파악된 자료가 없다는 것을 악용해서 문제점을 더 크게 부각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국세청에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과세자료가 없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국세청에 신뢰할 수 있는 과세자료가 있다면, 이를 근거로 하여 국민연금 가입자의 표준소득월액을 산출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의가 있는 사람은 과세자료나 그에 준하는 객관성 있는 자료를 통해 자신의 실제소득을 입증하게 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은, 국세청이 자영사업자의 실제 소득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세제·세정개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세청이 과세자료를 집중관리하고, 사회보험기관이 국세청의 보유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공유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러 기관에서 분산적으로 소득파악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해 앞으로는 국세청이 사회보험료를 부과ㆍ징수하는 기능을 맡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자영자 소득파악을 위한 구체적인 개혁과제

■ 세제·세정개혁의 근본 개혁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차피 자영자 소득파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제와 세정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자영자들로 하여금 소득신고를 실제대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흔히들 세무조사를 철저히 하면, 자영사업자들의 탈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재의 세무공무원 인력으로는 매년 전체 자영사업자의 1%를 세무조사하기도 힘들다. 어느 나라보다 탈세가 힘들다는 미국에서도 세무조사를 하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세무조사는 탈세를 막는 보조적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탈세를 막는 만능의 무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사업자를 세무조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세제·세정개혁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것은 자영사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소득을 제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는 엄청난 불이익이 가해지도록 해서, 세금을 제대로 내는 것이 경제주체의 합리적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필요한 세제·세정개혁의 구체적 과제는 무엇일까. 나열적으로 제시한다면, ①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간이과세제도 폐지, ② 신용카드이용 확대를 위한 신용카드 소득세 공제제도 도입, ③ 금융소득자료의 국세청 통보 및 금융소득종합과세 부활, ④ 전문직 사업자의 소득파악을 위한 보완대책 마련(직종별 특성에 맞는 보완책이 필요. 예를 들어 변호사의 경우 개인의뢰인에 대해서도 세금계산서 발행을 의무화하고 변협을 경유한 수임자료 제출을 의무화한다든지 하는 장치가 필요함) ⑤ 세무조사의 강화 및 조세범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힘들 것으로 생각되는 과제는 부가가치세 과세특례, 간이과세제도의 폐지이다.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나올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세제에서 가장 시급하게 손봐야 하는 부분이 과세특례, 간이과세제도이다. 본래 영세사업자를 보호하자고 만든 것이 과세특례, 간이과세 제도인데,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이를 악용하여 한달 매출이 수천만 원 이상이면서도 과세특례, 간이과세자로 남아 있으면서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과세특례, 간이과세자가 세금계산서 수취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도매업자, 제조업자들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무너진 지 오래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과세특례, 간이과세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 자영자 소득정보의 국세청 통합관리

국세청이 자영자에 대해 소득파악을 하는 것을 좀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현재 각 정부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과세자료들이 국세청에 의무적으로 제출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국세청이 추진하고 있는 세정개혁특별법의 제정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사회보험 부과ㆍ징수업무의 국세청 이관 및 정보공유시스템의 구축

세금 따로, 국민연금 따로, 의료보험 따로 이루어지는 소득파악 체계는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리고 각각 별도로 신고·납부를 해야 하는 국민도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사회보험료의 부과·징수업무가 국세청으로 이관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또한 사회보험 부과·징수업무가 국세청으로 이관되기 전에는 국민연금, 의료보험과 같은 사회보험기관이 국세청으로 집중되어 관리되고 있는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이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 국민연금법 제101조의 2 제1항은 "공단은 국가·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 등에 대하여 국민연금사업과 관련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으며, 자료의 제공을 요청받은 국가·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단체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자료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의 범위가 애매하므로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많이 있다. 따라서 관련법에 국세청의 사회보험기관에 대한 자료제공을 의무화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결론에 대신하여 : 자영자 소득파악 실태에 관한 정보공개의 필요성

현재 추진되고 있는 세제·세정 개혁 작업이 또 다시 정치권의 정치논리에 밀리게 되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자영자 소득파악 실태에 대해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통계자료들이 공개되어야 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국세청은 새로운 통계자료들을 생산하여 공개하여야 한다. 국세청이 지금처럼 자료들을 내놓지 않으면, 자영자들의 탈세실태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하여 드러나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제·세정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어렵게 된다.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통계자료의 공개는 현행 국세기본법의 납세자비밀보호조항이나 정보공개법에 저촉되지 않으므로 국세청은 세제·세정개혁을 촉발하기 위해서라도 자영자 소득파악의 실태에 관한 통계자료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할 것이다.

하승수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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