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소개–의료기 납품비리 사건을 통하여 본 의료법 개정의 방향

머 리 말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합의부에서는 전직 지방 모 대학교 총장 및 병원장 등 3인에 대하여 그들이 재직중 의료장비 납품관련 리베이트 수수에 따른 배임수재사건 등에 관하여 실형 2년 6월 등의 중형을 이례적으로 선고하였다. 의료계는 제약업체와의 약품거래와 관련한 이른바 '랜딩비'관행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잘못된 관행들과 아울러 의료계 전반적인 문제로서의 과잉진료행위 ― 특히, 과잉약물투여 등의 행위들에 대한 냉혹한 비판에 직면하였고, 이에 대한 의료계의 자성의 목소리도 더욱 커져 왔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시민사회단체와 의·약업계를 중심으로 의약분업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어 왔는데 이는 국민들의 약물 오·남용에 따른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험을 예방함과 아울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료보험 재정의 운용 등을 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약분업체계가 현실화될 경우, 현재와 같은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잘못된 관행 중 상당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수준을 넘어선 명백한 형사상의 범죄행위로까지 평가될 수 있는 것이고, 의료계 스스로가 자정(自靜)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에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에 비추어 볼 때, 엄격한 직업윤리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의료법의 전면적인 개정이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의료법의 운영실태

현행 의료법은 철저하게 의료인과 의료업계의 소극적인 보호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현행법은 소수 엘리트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던 7,80년대까지의 의료업계의 상황에 적합할 수 있을는지 몰라도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고 수만 명의 의료인들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는 너무나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료인들의 수적인 팽창과 의료보험 수가제도에 의한 가격통제는 결과적으로 의료인들에게 생존을 위한 상업성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야기하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당수 의료인들의 비리와 부정을 정당화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상당수의 의료인들의 경우 너무나 쉽게도 자신의 직업윤리를 팽개치면서까지 경제적인 보상을 목적으로 한 상업서비스 위주의 의료행위를 전개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료인들의 경우 과거에는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상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형태의 비리 ― 예컨대 진료행위도 하지 않은 사항들에 대한 허위 또는 부당 보험급여청구라든지, 각종 허위진단서의 발급행위, 불필요한 과잉진료 및 약물투여행위, 교통사고 피해자 등 응급환자들을 대가를 지불하고 알선받는 행위 및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적절한 의료행위 등등 ― 를 최소한의 양식마저 버린 채 자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부 의료인들의 잘못된 의료관행들은 결과적으로 의료계 전체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의료의 질을 저하시켜 온 것이 사실임에도, 이와 관련하여 이러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일부 의료인들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최근 의료계 정화가 사회문제화되기 이전까지는 정부의 형사 사법권의 발동에 의한 처벌의 선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감독기관의 면허취소 또는 자격정지 등 일련의 행정처분 역시 실효성 있게 작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른바 '관용주의'가 팽배하여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법원에 대한 불복절차를 통하여 대부분 구제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의료법상의 의료인의 직업윤리 구체화와 금지, 처벌규정의 강화

무엇보다도 현행 의료법에서 의료인들의 의료행위와 관련하여 요구되는 윤리규정들을 구체화하고, 이를 법적으로 강제하기 위한 세분화된 금지규정과 처벌규정들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는 최근 국회에 계류중인 변호사법 개정법률안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의료법 제51조, 52조, 53조에서 정하고 있는 면허 취소, 자격정지, 허가 취소 등의 요건은 너무 추상적일 뿐 아니라 너무 관대하게 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의료법 제25조 제3항에서 의료인의 환자 유인행위에 대한 명문의 금지규정을 두고 제67조에서 그 처벌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의 위임규정을 통하여 "영리를 목적으로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려는 환자를 그가 종사하거나 개설한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유인하게 하는 행위"(령 제21조 제1항 제6호)를 자격정지의 재량처분을 할 수 있도록 의료법 제53조 제1항 제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등, 자격정지에 관한 법 제53조와 대통령령 제20조, 제21조의 규정은 의료법을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는 문제의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위와 같은 면허취소처분과 자격정지 등 징계처분에 대하여 의료법 제52조 제1항, 제53조 제1항에서는 각기 "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심각한 위법행위를 범한 의료인에 대한 자동적인 퇴출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으며, 단지 '재량처분'에 의하여 이를 정하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행법령의 규정은 의료인들에게 현실적인 규범력을 상실함으로써 의료계 내부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감독기관 스스로도 위와 같은 의사들의 직업윤리 강화 차원의 감독책무를 제도적으로 포기 또는 방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료법의 제반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상당수 의료인들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내팽개치더라도 사실상 퇴출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의료계 전체의 사회적 평가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최소한 의료계와 비교될 수 있는 대표적인 전문직인 변호사들에 대하여 규율하고 있는 변호사법의 내용들과 개정방향의 수준 정도라도 의료법이 개정됨이 마땅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의료계의 직업윤리를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변호사법 개정방향과 궤를 같이 하여, 의료법을 의료행위의 공공성에 부합될 정도로 대폭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의 자격정지 요건에서 정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유들은 그 경중 여하에 따라 면허취소까지도 하여야 할 중대한 사안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이와 같은 구분을 폐지하고, 적어도 변호사법 제5조(결격사유 :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받고 그 기간 경과후 1년이 경과하지 아니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기간 중에 있는 자), 제13조(등록취소: 결격사유 발생시 당연 등록취소하도록 정함), 제71조(징계사유 : 변호사법위반, 변협, 지방변호사회 회칙위반, 직무의 내외를 막론하고 변호사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로 정함), 제72조(징계의 종류 : 제명, 2년 이하의 정직,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견책을 정하고 있다) 등의 수준까지라도 등록취소 및 징계처분 근거규정을 대폭 정비할 필요가 있다.

맺는 말

의료계의 정화 및 공공재로서의 의료서비스의 정상화를 위한 현 단계에서의 출발점은 의료계 스스로의 자기 통제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의료법의 전면개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자정 노력이 선행될 때, 의료서비스를 왜곡하고 있는 의료보험상의 비현실적으로 낮은 진료수가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한 의료전달체계 및 의료서비스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의료계가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전문직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계의 자발적인 제도개혁의 노력을 기대하여 본다.

이찬진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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