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 시비의 진실

최근 의료보험료 인상을 계기로 의료보험 통합을 둘러싼 논쟁이 재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학자들과 노조, 보수 언론 등이 최근의 보험료 인상을 의료보험 통합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증거인 양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의료보험에 관련된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주장 1 :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 미비로, 소득이 노출되어 있는 근로자만 일방적으로 보험료 부담을 더 하게 된다.

의료보험 통합의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가입자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있다. 도시 자영자의 경우 25% 정도, 농어촌주민은 57% 정도만 소득자료가 있기 때문에 소득이 노출되는 근로자들만이 더 많은 보험료 부담을 내야 한다.

1) 소득파악의 미비가 통합의 반대이유일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소득파악은 조합방식이든, 통합방식이든 동일하게 부닥치는 문제이므로 의료보험 통합을 반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자영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를 위한 소득파악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자영자의 경우 본인이 매월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소득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매월 소득을 신고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행정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낭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담능력을 간접적으로 추정하든 직접적으로 파악하든 그 기준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합리적인 것이면 된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조합방식으로 운영되던 때부터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소득과 상관성이 높은 연령, 성별, 재산 정도 및 자동차 소유 등을 기준으로 소득을 추정하여 보험료를 부과해 왔다. 따라서 지역가입자에 대한 소득파악의 미비와 추정소득 산정방식을 이유로 의료보험 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기존에 적용하던 방식조차 부인하는 자가당착이다.

물론 보험가입자, 특히 자영자 소득 파악의 문제는 상존해 있으며,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의료보험을 분리운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덮어두고 키우는 것이다. 소득파악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국무총리 산하의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 활동을 강화하여 고소득 자영자의 소득을 철저히 파악하고, 현재 사문화된 금융실명제를 강화하여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실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논의만 무성한 4대보험 통합을 현실화시켜 재정관리와 보험료 부과 및 징수의 효율화를 도모해야 한다.

2) 직장가입자의 일방적인 부담 증가는 사실이 아니다

통합 의료보험에 의해 직장가입자의 전체 부담이 현재보다 훨씬, 그리고 일방적으로 늘어나리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논리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다. 다른 변수의 변화가 없다면, 어떤 이유로 직장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

물론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에 대해서도 소득이 있는 경우 보험료를 부과하면 일부 직장가입자(정확하게는 세대)의 보험료 부담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각 개인별로 소득에 따른 부과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가난한',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지역의보의 적자분을 직장의보가 보전하는 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또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에 대한 문제도 정확하지 않은 이해에 근거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최근 직장의보 노조에서는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한 부과체계 적용시 보험료가 49% 증가하게 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현재 직장의보 가입자의 평균 보수월액은 17만 8천 원이지만 상여금 등 각종 수당 등이 포함되면 보수총액이 160만 6천 원으로 49%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평균 보험료도 3만 2,344원에서 4만 8,165원으로 인상된다는 것이다(《동아일보》 99.5.3). 그러나 이는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만을 고려한 계산이며, 보험료율의 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의보가 '자체충족적' 수준으로 보험재원을 마련한다면 현재 기준으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은 3.27%에서 2.29%로 약 43% 낮아질 수 있다.

현재로서는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 소득에 따른 새로운 부과방식의 적용 등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보험료 부과방식의 연장선상에서 보험료 수준의 증가 혹은 감소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험료 부과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소득수준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 경우 전체 소득에 따라 직장가입자 혹은 해당 세대의 보험료는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뭉뚱그려서 직장가입자만 일방적인 부담을 할 것이라는 우려(?)는 말 그대로 근거없는 우려일 뿐이다.

3)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부과

보험료 부담 측면에서 또 다른 시비거리는 직장보험 가입자의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문제이다. 일부에서는 피부양자에 대해서도 새로 보험료를 부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직장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득이 있는 곳에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사회보험의 원칙을 확립하는 측면에서 당연한 변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지역가입자의 경우에는 그 세대 구성원 중 소득과 재산이 있으면 보험료가 추가로 부과되는 데 반해, 직장 가입자는 세대구성원이나 본인이 근로소득 외에 아무리 많은 다른 소득이나 재산이 있어도 추가로 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같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보험조직의 종류에 따라 부담이 달라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접근이라고 할 것이다.

직장가입자에 한정하고 보면, 그 동안 피부양자의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보험료를 내던 직장인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하는 반면, 그 동안 피부양자의 소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로 많은 혜택을 보던 사람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이 제고되는 것이다.

4) 직장가입자 사이의 형평성도 향상된다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은 기존 조합 방식보다 통합 방식에서 더 잘 이루어질 수 있다. 현행 체제에서 직장조합의 경우 표준보수월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여비 지급 비율이 높은 고소득 근로자의 총보수 대비 보험료 부과비율은 50% 내외이지만 저소득 근로자는 그 배에 가까운 90%를 넘고 있다. 직장의료보험 자체 내에서조차 보험료부담의 형평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료보험 통합시 적용될 보수총액에 따른 보험료 부과는 고소득 근로자의 보험료는 올리고, 저소득 근로자의 보험료는 내려가게 해서 직장 근로자간의 보험료 부담 형평성을 향상시킨다.

주장 2 : 의료보험 통합으로 인해 보험료가 올라가고 있다.

99년 3월 공교가입자의 보험료율이 4.2%에서 5.6%로 상향조정됨에 따라 공교가입자의 보험료가 최고 57% 인상되었으며, 5월에는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18.4% 인상되었다. 따라서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다수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내려 갈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으로 입증되었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위험분산효과의 증대와 관리운영의 효율화로 보험재정이 안정화되어 오히려 보험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줄어든다. 실제 작년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으로 새로 개발된 통합보험료 부과체계를 운영한 결과 보험료가 내려간 세대는 전체의 약 62%이고 보험료가 오른 세대는 38%에 그쳐 오히려 보험료가 내려간 세대가 더 많았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면 직장가입자 보험료의 경우 총보수를 기준으로 하고, 보험료율은 하향조정하기 때문에, 현재 고소득층은 지금보다 보험료 부과기준액이 상승, 보험료가 인상되고 저소득층은 60% 정도 보험료가 인하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작년 말 직장조합의 보험료 인상을 필두로 공교가입자,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차례로 인상되고 있으며 인상의 폭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의료보험 운영체계의 통합과 연관지어 거론하는 것은 명백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96년을 기점으로 의료보험 수입보다 급여가 더 많아져 보험재정은 당기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5년간 공교의보 월 평균 보험료 수입 증가율은 9.3%에 그친 반면 지급액 증가율은 19.3%에 달했다. 지급액의 급격한 증가는 의료보험 급여 항목의 증가, 보험급여 기간의 확대, 의료이용의 증가 등이 겹친 결과이며,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 근로자 보수의 동결 및 삭감으로 인한 보험료 수익의 감소가 더해져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재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민간중심적인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특성, 특히 행위별 수가제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과도한 제공과 이용이 조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89년 지역의료보험 시행 당시 정부가 약속했던 국고지원이 89년 50.4%에서 96년 30.5%, 98년 27%, 99년 23%로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 역시 보험재정 악화의 주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보험료의 인상은 의료보험 통합과는 무관한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의료보험 통합으로 인해 보험료가 오르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국민들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보험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따라서 보험급여 범위 및 급여일수의 확대, 과도한 본인부담금의 인하 등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을 명실상부한 의료보장제도로 만들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이며, 이를 위해 의료보험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적정부담, 적정급여'의 틀이 정착되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이다.

물론 '적정부담, 적정급여'의 틀 안에서도 보험재정의 안정은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의 '보험진료 관리'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반적인 보건의료체계의 개선, 특히 일차의료의 강화, 진료비 보수지불제도의 개선 등의 과제와 동시에 추구되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보건의료체계 전반의 과제이다. 단기적으로는 누차 지적된 바와 같이 의료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당초 약속한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 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해 시급하게 필요하다.

주장 3 : 근로자·공무원이 자영자 보험료까지 대신 낸다.

1998년 현재 재정안정공동사업을 통해 직장의보가 지역의보에 지원해 준 금액 2,4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재정지출이 없다면 직장의보는 보험료를 인상하지 않아도 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재정조정사업은 1991년부터 노인인구 구성비의 차이와 고액진료비로 인한 조합간 재정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안전장치로 도입되어 현재까지 실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약 8,714억 원에 이르는 직장의보의 돈이 재정공동사업을 통해 지역의보에 지원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조정사업의 의의를 부인하고 이를 직장가입자의 과중한 부담 혹은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지원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회보험의 기본원리를 부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 보험가입자의 현실에도 합당하지 않는 위험한 주장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이지만, 젊고 건강할 때 직장조합에 납부했던 보험료를 나이가 들어 직장을 퇴직한 후 지역에 가입하여 병들었을 때 재정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에도 재정조정사업의 일환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가입률에 따라 보험자간 재정조정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보험자간 재정조정분담이 70%, 국고부담이 30%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비단 노인뿐 아니다. 특히 경제위기 이후 수백만의 직장 실직자가 실직 전 소득이 있을 때에는 직장의보에 가입했다가 소득이 없어진 후에는 지역가입자로 편입되고 있다. 이들의 직장의보에 대한 기여를 고려하면 재정조정사업은 재정적으로 불안한 지역의보를 지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현재 이들에게는 보험료 감면 등과 같은 경제적 지원이 오히려 지역가입자들로부터 나온 재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의료보험은 사회보험의 하나로서 계층이나 지역, 연령 등을 넘어서 공동의 부담으로 사회구성원의 건강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적 연대의식의 산물이다. 이 점이 개인의 위험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가입자에 대한 재정지원(사실은 지원이 아니다)을 현행 의료보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의료보험의 기본 정신인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다.

김 창 엽 /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