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조작식품은 왜 표시되어야 하는가

오늘 아침 신문에도 유전자조작식품(Genetically Modified Foods)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2001년 4월부터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의무표시제를 시행하기로 한 일본의 식품업체 472개 중 90% 이상이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콩을 유전자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수퍼마켓 체인, 패스트푸드점, 동물사료회사 등이 유전자조작 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발적인 발표가 있어왔다. 또 차기 WTO 협상에서도 유전자조작 농산물 문제가 주요의제로 다루어질 예정이고 유럽을 비롯한 식량수입국들은 '의무표시제' (Mandatory labelling)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제 유전자조작식품 소식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1998년 11월 정기국회에서 '몬산토'사가 생산하는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조작된 콩이 국내에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 2월에는 농업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에서 벼, 양배추, 들깨, 토마토 등 8종의 유전자조작 작물 개발에 성공했다. 이 발표는 국내 생명공학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유전자조작 식품의 인체 및 환경 위해성에 대한 논란이 좀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전자조작식품은 원하는 특정형질을 발현시키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육종교배기술(Conventional breeding) 대신 유전자재조합기술(Recombinant DNA Technology)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을 말한다. 그 예로는 미생물의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들어간 콩, 옥수수, 면화 등이 있으며, 유전자재조합기술로 기존의 생물학적 종(種)의 개념은 더 이상 원하는 작물을 생산하는 데 장애물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이 놀라운 기술에 몬산토, 노바티스, 카길 등 굴지의 다국적기업들이 뛰어들어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개발하고 있고, 이들은 유전자조작 작물은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친화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영국의 자선단체인 크리스천 에이드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는 10대 초국적 농업·화학회사들이 거대 종자회사를 운영하고 있거나 종자회사들에 대한 자본참여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의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초국적 농업회사들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국정부의 자문위원회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사용하는 유전자조작식품이 뇌막염처럼 위험한 질병치료를 어렵게 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고, 과학전문지인 영국의《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지는 유전자조작 작물이 화학비료 사용량을 줄이지 않았다는 미농무성(USDA)의 조사결과를 보도하였다. 이외에도 유전자조작식품의 인체 및 환경위험성과 다국적기업에 의한 종자독점 문제는 여러 사례에서 밝혀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소비자운동, 농민운동을 중심으로 유전자조작 식품 반대운동을 하며 최소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의무표시제'를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작년에 표시제를 법적으로 규정하였고 유럽의 각국은 이에 맞춰 국내의 법률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은 9월부터 강력한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독일,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노르웨이 호주-뉴질랜드 등 유럽의 각국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존중하기 위해 표시제도가 시행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본 농수산성은 표시대상으로 후생성이 안전성을 확인한 바 있는 대두, 옥수수, 감자, 유채, 면실, 토마토와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으로 28품목을 표시의무가 있는 식품으로 들고 있다. 표시대상 품목 중 유전자조작 원료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제품은 '분별불가'라는 표시를, 유전자조작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표시가 불필요하나 "유전자조작 식품이 아님"이라고 표시가 가능하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으므로 의무표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미국도 현재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의 권리를 존중하여 자발적인 표시제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표시제는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 논의와 함께 진행되어 왔으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산하 식품표시분과위원회는 OECD의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실질적 동등성'은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된 새로운 식품이나 식품성분이 기존의 식품과 화학적 성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면 기존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의 전문가들은 이 방법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성분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할 수 없으며, 짧은 기간의 실험실연구에서는 독성학적 변화를 알아낼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한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의무표시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또는 개인의 종교적인 이유로 유전자조작식품을 선택하지 않을 소비자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국내의 경우 표시대상품목과 구체적인 표시방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7월부터 농림부의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의해 유전자조작 농산물에 대한 표시규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에 의하면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만 표시가 가능하고 가공식품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지난 8월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NON-GMO' 표시를 하겠다는 업체에 불법 판정을 내렸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가공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의 권리를 고려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효성있는 표시제를 시행하기 위해 식약청은 농림부와 공조체제를 이루며, 표시제도에 대한 공공논의를 활성화하여 일반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혜경 / 참여연대 과학기술민주화를위한연구모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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