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기까지 (표누락)

지난 1999년 8월 12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어 내년 10월 실시될 예정이다. 이 법의 제정은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에서 전후를 구분짖는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이 국가의 의무이자 시민의 권리로 규정되었고, 노동능력이 있건 없건 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는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고, 생계급여를 통한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종전의 거택·자활보호의 구분을 없애고 근로능력 여부·연령 등에 관계없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모든 가구에 대하여 생계비를 지급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생계비 지급대상자가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그리고 주거급여를 신설하여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하였고, 긴급급여를 통하여 긴급 생계지원이 필요한 수급권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강화하였으며, 수급자의 근로능력·가구여건·자활욕구 등을 감안하여 가구별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자활지원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근로능력자에 대하여는 근로유인장치를 두어 근로의욕 감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고, 소득인정액 산정시 근로활동으로 발생하는 소득은 일부 공제함으로써 근로유인을 제고하였으며, 대상자 선정기준을 합리화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지역별·가구규모별 최저생계비를 계측하여 선정기준으로 활용함으로써 선정기준을 현실화·합리화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것은 외환위기에 따른 대량실업 상황, 적절치 못한 정부 대책, 그에 관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누구나 실업자와 빈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는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만 보호하는 전근대적인 제도였을 뿐이다. 따라서 노숙자, 결식아동, 생계문제로 인한 이혼율, 자살률이 급속히 증가하는 등 사회문제가 심각성을 더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공근로사업과 한시적 생활보호제도를 도입하는 등 아주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공공근로사업이 저소득 실직자 가정의 생계안정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나 공공근로를 한다고 하더라도 공공근로에 지속적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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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참여해서 임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난한(최저생계비이하의 가구소득을 보이는) 가구는 많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된다고 하더라도 학비와 의료보험료 면제(의료보호대상자가 되면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됨)이외에는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빈민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에서 이렇듯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것은 이 사회의 지도층 및 권력자들 중에 '복지에는 비생산적(낭비적) 복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주어야지 복지급여를 제공하면 그들이 일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량실업 상황에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실직자를 가장으로 둔 아동이나 노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란 말인가?

복지에는 비생산적 복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실직자 가정은 더욱더 파괴되어갔고, 국가로부터 기초생활도 보장받고 있지 못한 가구들은 많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려고, 그들의 피부양자(노인, 아동)를 방치해 두어서는 안되며, 일을 해도 그 보수가 적고, 피부양자가 많으면 기초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 뿌리는 생계보호기준 헌법소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2월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거주하는 노인부부가 생활보호급여의 적정기준 문제에 대하여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낸 일이 있다. 이들의 헌법소원의 청구취지는 복지부가 당해 연도 1월에 고시한 생활보호사업지침상의 생계보호기준이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기준에 못미치는 낮은 금액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80세가 넘은 고령인 노인부부는 1994년 현재 매월 65,000원의 생활보호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보호급여만으로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의 최저생계비를 충족하지 못하고 최저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가 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보장 의무이행을 현실화하기 위해 복지부의 사업지침이 위헌임을 심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재판은 직접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면 사회복지비 확충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일깨웠고, 이후 노령수당 미지급 관련소송 등 복지운동 차원의 공익소송의 효시가 되었다.

1996년 11월에 참여연대에서 생활보호법 개정을 청원하여 1997년 8월에 생활보호법이 개정되었다. 이후 1998년 4월에 생활보호법 전면개정 입법을 청원하여 그해 9월에 생활보호법이 개정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1998년 7월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입법청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동안 생활보호법 개정의 방향은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완화시키고, 대상자간의 형평성을 제고하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공공부조제도에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참여연대에서 보건복지부장관 직무유기 고발이다. 개정된 생활보호법에 따라 복지부장관은 매년 최저생계비를 공표하도록 되어 있으나 최저생계비를 공표하지 않아 고발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장관 고발사건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은 예전과 비교하여 독립적이고 개방적인 연구여건 속에서 최저생계비 계측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고, 그것은 2000년 4인가구 최저생계비 93만원이라는 복지부장관의 발표로 이어졌다.

이상과 같은 사회복지운동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전망은 밝지 못하다. 그것은 국회에서 통과를 앞두고 있는 내년도 기초생활보장예산이 올해보다 4.1% 삭감되어 있다. 정부는 실업자수가 감소추세에 있기 때문에 대상자수를 줄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실업자 규모가 감소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빈곤율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보호대상자 수의 축소를 전제로 예산을 대폭 감축한다는 것은 타당성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 현행과 같은 방식으로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수급자를 선정하게 되기 때문에 수급자수가 현행 생활보호대상자수보다 대폭 늘어나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적자재정, 균형예산 운운하며 기초생활보장예산을 늘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예산은 균형예산을 가져가기 위해 줄여야 할 예산이 아니다. 정부예산을 줄이려면 상대적으로 더 사치스럽거나 불필요한 예산을 줄여야 할 것이고, 재원이 더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 고소득층(특히 자영업자들)에게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은 국회에서의 예산 조정과, 내년 초에 있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는가이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출발점일 뿐이지 종착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허 선 /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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