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개혁은 좌초하는가

복지개혁을 위한 노력이 암초에 걸렸다. 국민연금의 도시지역 확대,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사회복지전달체계의 구축, 의약분업과 보험약가 인하 조정 등 주요 개혁 이슈들이 어느 것 하나 예외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이러한 복지개혁 추진의 현황과 근본적인 쟁점들을 검토하면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는 것이 특집주제의 목적이다.

현단계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복지개혁의 의미는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은, 보건복지제도들의 내면적 비합리성과 불공평성을 정비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미증유의 실업사태 하에서 민중의 삶을 보전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시급히 정비, 보완하는 것이고, 나아가 21세기에 우리가 건설해야할 새 사회의 비젼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서 세계 최초의 사회보장법을 제정한 미국의 경험이나, 2차대전의 전화 속에서 전후 새로운 사회 건설의 초석이 될 베버리지 보고서를 준비한 영국의 경험 등이 위기 속에서 미래 개척의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우리들의 과제에 희망적인 전거가 될 것이다.

복지개혁이 암초에 걸린 우선적인 이유는 정부의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예에서 보듯이 국민을 설득할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너무나도 소극적인 정부의 복지의식이며, 그 상징은 복지병에 대한 시기상조적 염려이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조차 제대로 안되어 있는 사회에서 가당치 않은 건강염려증인 것이다. 소극적 복지주의는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구호만을 가능케 하며, 그 결과 대부분의 실업자들은 아무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는 무상의 복지(welfare)보다는 일을 통한 복지(workfare)를 강조한다. 그래서 부작용 투성이인 공공근로사업의 확대를 선호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위축시키는 인턴제를 강조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한시적인 생활보호사업을 선택한다(물론 기존의 생활보호사업도 본질적으로 한시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workfare가 강조하는 근로동기의 유지는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명분이다. 근로동기를 상실하고 복지병에 걸리는 것을 염려할 정도로 우리의 복지수준이 높다는 말인가?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상황에서 wokfare는 근로자의 의무가 아니고 정부의 의무라는 점이다. 충분한 일자리를 확보하고 노동의 질을 높이는 일이, 근로동기를 거론하기 이전에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고용대책과 실직자의 생활대책은 구분되어야 한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권리인 인간다운 생활에 대한 보장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누려야할 권리이며, 그 바탕 위에서 고용정책이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경우에만 고용정책 자체도 실효성있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로동기는 절망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대한 안정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젼을 가질 때 비로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개혁이슈들 중 국민연금의 도시자영자 확대 계획만 예정대로 강행될 예정이고 나머지는 모두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이제는 적극적 행동이 필요할 때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으며, 관건은 국민적 관심과 참여일 것이다.

이영환 편집위원/성공회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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